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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목)

[숨]우리에겐 더 많은 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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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둘째 주 토요일 나는 태연한 척했지만 잔뜩 긴장한 채 무대에 올랐다. 한 시상식에 수상자로 초대받았다. 비밀스레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수상 소식을 전해듣기 전까지 이 상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다.

강원도 고성 아야진에 있는 출판사 온다프레스에서 펴낸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이하, 로컬씨)가 제8회 한국지역출판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책 만드는 사람들의 문화연대인 한국지역출판연대에서 지역과 지역출판의 가치를 이어가고자 2017년부터 매해 한국지역도서전과 함께 한국지역출판대상을 개최하고 있다. 서울과 파주를 제외한 지역 소재 출판사에서 전년에 발간한 책을 대상으로 지역성, 지역출판 도서로서의 정체성, 출판 기획과 작품의 우수성 등을 두루 평가하여 대상과 공로상을 선정한다. 행사는 전국 순회 형식으로 열리는데, 올해는 대전 유성구와 공동 주관하여 대전 유림공원에 판을 펼쳤다.

로컬씨는 작가, 출판사, 지역 문화기관, 세 주체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살고 싶은 도시’에 대한 고민과 상상을 구체화한 결과물이다. 먼저 춘천문화재단과 온다프레스가 구호나 담론이 아닌 실질적 삶터로 ‘로컬’을 이야기해 보자는 데 뜻을 모아 기획을 시작했다. 그리고 ‘30대, 1인 가구, 지역 출신 서울시민’이라는 인구학적 특성을 지닌 저자가 ‘서울 아닌 지역에서 내 거주지를 찾을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며 여러 조건을 아울러 후보지로 도시 춘천을 탐방하고 기록했다. 심사위원회는 “소위 잘나가는 로컬을 피상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걷고 감각하며 실체적 로컬을 찾는 목소리가 돋보였다”는 심사평을 남겼다.

로컬씨는 결코 주목을 적게 받은 책이 아니다. 여러 지면에 소개되는가 하면, 제64회 한국출판문화상 기획편집 부문 본심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도 저자인 나는 지난 1년 때때로 의기소침해졌다. 작년 이맘때 2000부를 제작한 초판 가운데 지금까지 애타게 독자를 기다리는 수량이 적지 않다. ‘어떻게 하면 지역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가 닿게 할 수 있을까?’ 더 고민하면서도 ‘지역의 이야기를 그러모으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들기도 했다.

시상식에 앞서 수상 작가들의 합동 북토크가 진행됐다. 공로상 4편의 면면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신용자 작가가 쓰고 춘천의 문화통신에서 출간한 <옛길에서 만나는 적멸>, 현정길·윤영삼 작가가 쓰고 부산의 산지니에서 펴낸 <부산 노동 운동사>, 이은하 작가가 쓰고 대전의 이유출판에서 발행한 <어딘가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맞춤복 거리가 있다>, 박태숙·강미 작가가 쓰고 대구의 학이사에서 만든 <동네책방 분투기 : 역세권보다 책세권>까지 책 제목만 봐도 저자와 출판사가 지역을 오랫동안 탐구하고 기록한 결과물임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한편 한국지역출판대상에는 천인독자상이라는 별칭이 있다. 지역의 문화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출판사와 저자를 응원하는 1000명(많다는 의미)의 독자가 십시일반 모은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명시한 것이라고 해 더 머리가 숙여졌다.

도서전에 참여하고자 전국에서 모인 지역출판사와 서점들은 또 어떻고. 그 며칠 전 노벨 문학상 발표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중에 열린 행사였다. 품귀 현상을 빚고 있던 한강 작가의 책을 열람할 수 있도록 따로 공간을 마련할 만큼 모두가 제 일처럼 기뻐하면서도 취약한 국내 출판 유통 체계에서 빠르게 쏠림 현상이 나타나 지역출판사와 서점들은 이미 크고 작은 타격을 받고 있다는 근심도 들려왔다. 그럼에도 지역이 매력적인 삶터로 지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바탕에 두고 우려보다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서로를 일으키고 있었다.

왜 연예인들이 시상식에서 ‘더 잘하라는 뜻으로 알고…’라는 소감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동시에 우리에겐 더 많은 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우열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들여다보는 계기로서. 관심과 격려, 축하가 흘러넘칠 때 우리가 보다 가까워지지 않을까.

경향신문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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