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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목)

[동아시론/차진아]실질적 檢 통제 강화의 첫걸음은 수심위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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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대안 없는 수심위 폐지론은 성급

법적 지위 격상-위원 전문성 제고 등 절실

객관성-공정성 높여 제 기능 발휘하게 해야

동아일보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권 교수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제도는 2018년 문무일 검찰총장 당시 검찰의 자의적 수사 및 기소재량권 오남용에 대한 통제 수단으로 도입됐다. 수심위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에 대한 수사 및 기소 여부를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결정한다는 점에서 찬성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으나 검찰의 책임 회피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특히 최근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건 관련 두 차례의 수심위가 서로 엇갈리는 권고안을 내놓으면서 수심위의 기능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까지 나오고 있다.

수심위는 법률상 근거 없이 대검 예규에 따라 구성되는데, 위원은 사회 각계의 전문가로 위촉되며 그 수는 250명 정도다. 미국의 기소대배심이나 일본의 검찰심사원이 일반시민 중에서 무작위로 추첨해 구성되는 것과는 달리, 수심위를 사회 각계의 전문가로 구성한 것은 수심위 권고의 내용적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수심위 결정의 객관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해 위원 중에서 무작위로 추첨해 15명의 위원을 그때그때 선임한다. 다만, 수심위 위원장은 고위 법관 출신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통해 수심위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충분히 확보될 수 있을까.

현행 수심위 제도는 몇 가지 근본적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검찰 내규에 따라 구성되기 때문에 법적 효력과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 논란이 많다. 법령에 근거한 제도와는 달리, 검찰 내규에 따라 검찰 내부 기관으로 구성된다는 것은 검찰의 입맛에 맞춰 얼마든지 구성과 존폐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검찰에 대한 통제가 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위원의 위촉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나 통제가 없다. 250명 중에서 무작위로 추첨한 위원들이 실제 개별 사건을 심의한다고 하지만 검찰이 위촉 과정에서 성향을 걸러낼 것이라는 의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셋째, 위원들 중에 법률전문가와 그렇지 않은 위원이 혼재돼 있는데 무작위 추첨에 따라 비법률전문가가 상당수 포진할 경우 배가 산으로 갈 위험성도 적지 않다.

넷째, 수심위 회부의 명확한 기준이 없다. 예컨대 명품백 사건에서 보듯이 동일한 사건과 동일한 쟁점에 대해 비록 당사자가 달라진다고 해도 재차 수심위를 여는 것은 불합리하다. 다섯째, 수심위 논의 과정에서 명확한 기준 없이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은 장점일 수 있지만 심각한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참여자가 계속 달라지는 회의에서 명확한 기준이 없을 때는 유사 사건, 심지어 동일 사건에서조차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수심위 권고의 신뢰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

최근 수심위 폐지론까지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사건을 이유로 수심위를 폐지하자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한 결론이다. 검사의 기소재량권 통제를 위해 다른 합리적 대안이 없는 현 상황에서는 오히려 지적된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선행돼야 하며, 그런데도 성과가 없다면 그때 수심위 폐지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 그러면 수심위 존속을 전제로 한 개선의 핵심 과제는 무엇인가.

먼저 수심위의 법적 근거를 검찰 내규가 아니라 법률이나 대통령령으로 격상시켜 법적 효력을 강화해야 한다. 안 그래도 수심위의 지위와 권한이 불안정한데 이런 상태의 수심위를 계속 유지하자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일본이 검찰심사원의 구성과 운영을 법률로 정한 것도 참조할 만하다.

다음으로 수심위 위원의 구성을 개선해야 한다. 수심위 대상 사건은 법 해석상 까다로운 쟁점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권고 내용은 법조인들이 볼 때도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수심위 권고 내용에 대한 신뢰성이 담보될 때 검찰이 이를 존중할 수밖에 없는 권위가 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원 수를 적정하게 줄이더라도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비법률전문가의 참여는 다양한 관점의 참조를 위해 필요한 정도에 그쳐야 한다.

또 수심위 회부 기준이 정비되어야 한다. 특히 이미 수심위 권고가 내려진 바 있다면, 동일한 쟁점의 사건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달라진다고 해도 새로운 증거 발견 등의 변수가 없는 한 재차 수심위를 소집하지 않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수심위 심의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 위원이 바뀔 때마다 기준이 달라진다면 그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수심위는 아직 그 성패를 최종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다. 제도의 개선 여부가 이를 판단하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 국민은 수심위 폐지보다는 수심위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해서 검찰에 대한 실질적 통제가 빛을 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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