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24 (목)

입소문 타고 오프런…'언어 장벽' 없앤 은행, '외국인 사랑방' 됐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MT리포트] 외국인 260만명, 다문화 금융의 시작 (下)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더이상 '한민족 국가'가 아닌 '다인종·다문화 국가'다. 체류 외국인이 26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5%를 넘어섰다.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지만 이들을 위한 금융서비스는 아직 걸음마 수준. 외국인을 위한 금융서비스를 점검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외국인 많은 지방…지방은행 '외국인 틈새시장' 선점한다

머니투데이

국내 체류외국인 추이/그래픽=이지혜



지방은행이 외국인 금융서비스에 잰걸음 중이다. 외국인 신용대출 상품을 내놓고, 전용 고객센터를 만들 정도로 적극적이다. 지방에서 외국인 근로자 비중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BNK경남은행은 지난 15일 국내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K 드림 외국인 신용대출'을 출시했다. 최대 3000만원 한도로 최저 5.93%에 최고 15%의 금리가 적용된다.

대출 신청일 현재 국내에 거주 중이면서 △체류 자격이 E-7(특정활동) 또는 E-9(비전문취업)으로 1개월 이상 재직 △체류기간 만료일자(근로계약기간)가 13개월 이상 △경남은행이 선정한 업체와 국적에 해당하는 자 등 조건에 모두 충족하는 외국인 근로자가 대상이다.

또 외국인 전용 입출금 통장도 1만좌 한도로 판매 중이다. 외화 송금수수료가 면제되고, 환율도 50% 우대해 준다. 경남은행은 중국 출신의 다문화 가정 직원이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 전용 창구'도 운영 중이다.

경남은행 관계자는 "본국 귀환 리스크 등을 줄이기 위해 노무관리가 안정적인 기업을 지정해 대출을 내주는 방식"이라며 "금리는 신용도와 대출 금액에 따라 변한다"고 설명했다.

BNK부산은행도 최근 화상상담 창구(디지털데스크) 지원 언어를 기존 4개(영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에서 우즈베크어, 네팔어, 벵골어 등을 추가했다. 일부 지점에 외국인 유학생 상담창구를 지정하고, 외국인 고객에게 특화된 화상상담 직원을 배치했다.

전북은행은 은행권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외국인 전용 상품을 운영 중이다. 2016년 12월 'JB브라보 코리아 패키지' 상품 출시를 시작으로 은행권 최초로 외국인 고객 대상 비대면 대출실행과 전자금융가입 서비스 등을 제공 중이다.

전북은행은 외국인 전담 창구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지난달 은행권 최초로 외국인 고객 전담 고객센터를 열었다. 국내 최다 외국인 거주 지역인 경기 수원에 자리 잡았다. 17개국 출신의 전담 직원 40여명을 채용해 대응 중이다. 대출, 예금, 체크 카드, 해외송금 등 종합금융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한다.

지방은행이 외국 공략에 나선 것은 늘어나는 외국인 비중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노동시장 구조 변화에 따라 은행 서비스도 변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등록외국인이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 가장 많지만 외국인 증가 속도는 지방이 빠르다.

5년 전과 비교해 전국의 등록외국인은 14.5% 증가한 데 반해 같은 기간 △전남 62.5% △전북 40.7% △경북 30.9% △경남 29.6% 늘었다. 지난 9월 기준 경기, 서울 다음으로 등록 외국인이 많은 곳은 경남(9만8242명)과 충남(9만5815명)이다.

저축은행 공세도 틈새시장을 공략 중이다. 지난 4월 웰컴저축은행이 출시한 '웰컴외국인대출'은 취급액이 4개월 만에 100억원을 넘어섰다. OK저축은행도 외국인 전용 대출 상품인 '하이오케이(Hi-OK)론'을 내놨고, KB저축은행도 '키위 드림 론(kiwi Dream Loan)'을 운영 중이다.


여기 한국 맞아?…"베트남어로 말해도 척척" 외국인 몰리는 특별한 은행

-외국인 전용 은행 점포 가보니

머니투데이

하나은행 평택외국인센터 내부 모습/사진=김도엽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9월 문을 연 하나은행 평택외국인센터점은 고객이 전부 외국인인 외국인 전용 점포다. 주말 아침이면 은행 업무를 보려는 외국인들로 '오픈런'까지 이어지고 있다. 평택시뿐만 아니라 인근 화성시, 아산시, 오산시는 물론 멀리 경북이나 경남에서까지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평택외국인센터점에 발길이 끊이지 않는 첫번째 이유는 일요일에도 문을 연다는 점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평일 은행 업무를 볼 시간이 많지 않다.

노병주 하나은행 평택금융센터지점장은 "평일에는 60명 내외, 일요일에는 100명 이상의 손님이 방문하고 있다"며 "태국, 베트남, 미얀마, 네팔 등 아시아 국가와 평택 미군부대가 위치해 미국 국적 손님들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점포를 찾은 평일에도 오전 9시 문을 열자마자 파키스탄 국적의 칸 세하르씨(28)가 비자 연장을 위해 은행 잔액 증명서를 받으러 왔다. 한국 생활 8년 차로 호서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파키스탄 국적의 칸 씨는 하나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이용 중이다.

칸 씨는 "하나은행은 외국인도 한국 사람과 똑같이 혹은 더 대우해주려는 게 느껴진다"며 "한국 생활 연차가 짧은 친구가 은행 업무가 필요하다고 해서 주말에 직접 평택외국인센터에 데려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하나은행 평택외국인센터 내부에 '외국인 사랑방'으로 활용되고 있는 공간으로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영감받아 외국인 고객에게 편안함을 주기 위한 공간으로 설계됐다. 은행 영업점과 분리되는 셔터가 작동된다/사진=김도엽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칸 씨의 말대로 이날 평택외국인센터에는 혼자 방문한 고객보다 2명 이상 같이 방문한 고객이 많았다. 노 지점장은 평택외국인센터가 '외국인들의 사랑방'으로서 '사막의 오아시스'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실제 점포 인테리어도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외국에 나가서 은행 업무를 해보면 얼마나 어려운지 역으로 체감할 수 있다"며 "외국인 고객들이 적어도 하나은행에서만큼은 금융거래는 물론 쉴 공간으로서 편안함을 느끼게 할 수 있도록 콘셉트를 구상했다"고 말했다.

평택외국인센터점의 공간 일부는 외국인 관련 기관에 커뮤니티 공간으로 제공되고 있다. 하나은행 고객이 아니어도 창구 직원에게 신청하면 언제든지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은행 영업점과 분리할 수 있어 주말에도 대여가 가능하다.

머니투데이

하나은행 평택외국인센터에서 한 베트남 국적 고객이 베트남어로 말하자 한국어로 번역돼 디스플레이에 표시됐다/사진=김도엽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평택외국인센터는 공간뿐만 아니라 운영 면에서도 외국인 고객의 접근성을 대폭 향상했다. 가장 큰 특징은 38개 국가의 언어 서비스를 지원한다는 점이다. 은행 창구에서 외국인 고객이 모국어를 말하면 은행 직원의 태블릿 PC에는 한국어로 번역한 내용이 나온다. 반대로 직원이 한국어로 답하면 고객의 화면에는 외국어로 자동 번역이 된다.

창구를 찾은 한 베트남 국적의 고객이 "베트남에 5000달러를 보내고 싶다"고 베트남어로 말하자 그대로 한국어로 바뀌어 디스플레이에 표시됐다. 이어 직원이 "여권과 외국인 등록증을 달라"고 한국어로 말하자 디스플레이에는 이를 베트남어로 표시한 문장이 나타났다.

대기하는 고객이 창구 상담 전 서류 작업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14대의 태블릿 PC도 비치했다. 해당 태블릿 PC에서는 영어·베트남어·러시아어·태국어·캄보디아어·미얀마어 등 6개 국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송금신청서 등 간단한 서류 작성 업무를 지원한다. 이날 방문한 외국인 고객들도 창구 호출을 기다리면서 태블릿 PC로 각자의 모국어를 선택해 서류를 작성했다.

머니투데이

국내 은행 외국인 근로자 특화점포 현황/그래픽=김지영



이날 평택외국인센터를 방문한 외국인 고객들은 하나같이 '외국인특화점포'가 늘어나기를 희망했다. 태국인 쏨분 씨는 "마치 태국 은행을 방문한 것처럼 통장 개설과 체크카드를 발급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며 "언어의 어려움 때문에 친구로부터 소개받고 오산시에서 왔는데 오산에도 외국인 특화 점포가 생기면 좋겠다"고 했다.

국내 은행의 전체 외국인 특화점포는 32곳이다. 이중 △하나은행이 16곳을 운영해 절반을 차지하며 이어 △국민은행 8곳 △우리은행 5곳 △전북은행 2곳 △기업은행 1곳 등이다. 대면 채널의 확대 등 외국인 친화 정책을 통해 하나은행은 지난 9월말 기준 5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올해 신규 외국인 고객 수 중 약 50%를 유치했다.

국내 은행들의 외국인 특화점포는 외국인 비중이 높은 경기도를 중심으로 포진됐다. 32곳 가운데 13곳이 경기도에 위치한다. 특히 외국인 특화점포가 집중된 지역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다. 단원구의 전체 인구 중 23.6%(3만7562명)가 외국인으로 단원구 내에서만 5곳의 특화점포가 운영된다. 하나은행 평택외국인센터가 위치한 평택시의 전체 등록 인구 중 외국인 비율은 7.5%(3만1651명)다.

하나은행은 향후 외국인 고객의 접근성 확대를 위해 특화점포 신설 계획도 검토 중이다. 김은영 하나은행 채널전략부 팀장은 "이번 평택외국인센터는 외국인 특화점포 1호점으로 시작했는데 고객들의 반응이 뜨겁다"며 "향후 점포를 늘릴 계획을 가지고 있고 여러 제반 사항을 검토해 점포의 위치를 결정할 예정"이라며 밝혔다.


보험도 영어·중국어·러시아어로 응대…"외국인 채널·상품 확충 필요"

머니투데이

손해보험 외국인 보험가입자 추이/그래픽=김지영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내국인만으로 성장에 한계를 느낀 보험사들이 외국인 시장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외국인 전용 상담 서비스를 확대하고 외국인 보험설계사도 늘리고 있는데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외국인 전용 상품과 특화 채널 확대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23일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장기체류 외국인은 약 191만3000명이다. 생명보험, 장기손해보험, 자동차보험 중 1개 이상 가입한 외국인은 69만4000명으로 보험 가입률은 41.1%(자동차보험은 인구 대비 가입률 적용)로 낮은 편이다. 상품별로는 장기손해보험 42만1000명, 생명보험 31만2000명, 자동차보험 22만4000명 순이다.

외국인의 보험 가입자 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특히 자동차보험이 빠르게 늘었다. 5개년 연평균 증가율 보면 자동차보험이 8.8%로 가장 높다. 이어 생명보험 4.6%, 장기손해보험 2.8% 순으로 집계됐다. 가입 채널은 대면 비중이 여전히 높다. 자동차보험의 경우 지난해 66%가 설계사, 대리점 등 대면 채널로 보험에 가입했다.

개별 회사별로 보면 삼성화재, 메리츠화재 등 7개 손해보험사의 외국인 가입자 수는 2018년 41만7857건에서 2023년 75만2442건으로 80% 늘었다. 생명보험사인 A사도 △2021년 말 5만8823명 △2022년 말 6만9331명 △2023년 말 7만8769명 △2024년 9월 말 기준 8만5750명으로 지속 증가세다.

외국인 대상 서비스도 확대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올해 3월부터 외국인 고객 케어 서비스를 실시했다. 계약을 체결한 외국인 고객을 대상으로 월 1회 다양한 보험 정보와 서비스를 해당 고객의 모국어로 제공한다. 신규 가입 고객 비율이 높은 중국어, 러시아어로 제공하고 향후 영어 등 안내 언어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생명은 외국인 고객을 전담하는 영업조직을 별도로 두고 있다. 글로벌영업단은 외국인 설계사로만 구성되며 올해 2월말 기준 607명이다.

삼성화재는 외국인 전용 금융(Expats)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대표 번호로 전화하면 가입 고객 뿐 아니라 대한민국에 입국한 모든 외국인이 무료로 금융상담을 받을 수 있다. 보험상담을 원하면 외국인 전담 설계사를 소개받을 수 있다. 영어와 중국어로 가능하며 자동차, 가족형 통합보험, 주택화재, 연금, 보상 처리 등 보험 관련 모든 금융 상담이 가능하다.

다만 보험업계 전체적으로는 외국인 전용 서비스와 상품, 판매 채널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보험 가입 특성상 건강보험 선호가 높고 설계사와 외국인 특화 채널 의존도가 높은 만큼, 젊은 층이 필요로 하는 상품과 외국인 친화 판매채널의 운용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코로나19 기간 중 잠시 주춤했던 외국인이 다시 증가 추세여서 외국인 대상 보험도 체류 목적과 보장수요에 맞는 상품 확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희우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언어적 장벽과 함께 문화적 장벽을 해소할 수 있는 외국인 친화 판매채널의 운용이 필요하다"면서 " 외국인 시장은 20~30대 젊은 층 비중이 높아 자기 주도적으로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채널 전략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김남이 기자 kimnami@mt.co.kr 평택(경기)=김도엽 기자 usone@mt.co.kr 배규민 기자 bkm@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