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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목)

“사람에 충성 않는다”던 尹을 韓대표가 따라하는건가[핫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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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에도 그렇지만 사람 사이에도 영원한 친구(우방) 관계는 없다. 각자 처한 상황에다 이를 상대방이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금세 친구도 되고 원수도 된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타인과 네트워킹 하는 시간에 개인 역량을 키우라는 등 가변적인 인간 관계에 매몰되지 말라는 조언이 담긴 영상들이 많다. 사람들 만나느라 바쁠 것 같은 유명 인사들도 동료, 선·후배 등 사람 자체에 지쳤다며 혼자가 좋다고 고백하는 영상들도 여럿 있다.

요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보면 인생은 결국 ‘각자도생’인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2020년 2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은 부산고검 차장으로 좌천돼있던 한동훈을 찾아가 따스한 눈길로 위로하며 윤·한(尹·韓) 간 최고의 밀월을 보여줬다. 이후 대통령이 돼서 한동훈을 일선 지검장·고검장을 뛰어넘어 현 정부 초대 법무부장관으로 발탁했을 땐 ‘윤·한 동주(同舟)’로 당연시 됐다. 젊은 한동훈을 고깝게 보는 야당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그를 최연소 장관에 앉힌 윤 대통령의 지조와 결단은 박수를 받았다.

매일경제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면담을 하고 있다. 2024.10.21.대통령실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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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랫동안 검사 생활을 같이 하면서 쌓아온 윤·한 간 신뢰는 이제 시효가 끝나가는 듯하다. 지난 21일 TV를 통해 모처럼 만의 윤·한 회동을 지켜본 국민이라면 이들 사이에 흐르는 냉기류를 똑똑히 지켜봤을 것이다. 한 대표를 향한 윤 대통령 얼굴에는 웃음기 대신 다소 싸늘한 표정이 가득했다. 시선은 한 대표를 피한 채 다른 곳을 보면서 혼잣말 하는 장면이 많았다. 면담장에서는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한 대표 옆에 앉혀두고서 한 대표가 대통령과 동급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듯 했다. 윤 대통령이 양 팔을 책상에 짚고 대화하는 모습은 아랫사람을 가르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다 보니 면담 결과는 각자 얘기만 하고 끝난 듯하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이번 정부에서 본인이 키워준 한 대표가 김건희 여사 문제 등을 쏟아내며 대통령실을 곤혹스럽게 하는데 대해 불만이 클 것이다. 비공개적으로 꺼내면 될 문제들을 한 대표가 외부에 들쑤시고 다닌다며 차기 권력을 노린 정치 술수로 보였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분노가 인간적으로 이해는 간다.

하지만 윤·한은 사적인 감정에 얽매일 위치가 아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라는 최상위 공적 지위에 있는 분들이라면 사보다 공을 앞세워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거야(巨野)의 파상 공세가 이젠 새로운 일도 아니지만 다음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선고를 전후해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윤석열 탄핵-김건희 특검’이라는 전대미문의 폭거를 앞두고도 대통령실과 여당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심각한 분열을 키우고 있으니 국민이 다 불안할 지경이다. 야당이 황당한 주장들마저 일관성 있게(?) 혼연일치가 돼서 내던지는 모습을 보면 누가 앞으로 승자가 될지 뻔해 보인다.

매일경제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4.10.21.대통령실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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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을 맨처음 전국적인 인물로 만든 것은 2013년 여주지청장 시절 국정감사에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이었다. 이후 그는 문재인 정부 때 소신 있는 검찰총장으로서 대통령이나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갈등을 빚었고,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 의원들과도 설전을 벌였다. 문 정부의 ‘내로남불’과 각종 정책 실기에 불만이 컸던 국민은 사람에게 충성 않는다는 윤석열식 고집에 환호했다.

한 대표 역시 본인 대의를 위해 윤 대통령을 마냥 따르지 않겠다는 점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역린’일지도 모를 김 여사 문제를 계속 건드리는 것은 ‘사람’ 윤석열에게 충성하지 않겠다는 묵언 맹세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 면담 이후 친한파 의원들과 회동하고 특별감찰관 추천 등 ‘마이웨이’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2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잠시 만난 한 대표의 표정은 예전보다 훨씬 밝아졌다. 과거 이 대표를 범죄자 취급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조만간 여야 대표 회담도 열린다고 한다. 당정은 파국중인데 대통령실 보란듯한 독자적 행보는 당내 분열을 키울 소지가 있다. 사람에 대한 불충성은 이해하지만 그 행위의 무게와 파장은 여주지청장 때와 정권을 책임진 여당 대표 간에는 차이가 크다. 보수 지지자들이 김 여사 건으로도 떠나지만 윤·한 갈등이 지겨워 이탈한다는 점도 한 대표는 알아야 한다. 그 책임에서 한 대표 역시 자유롭지 않다.

윤 대통령도 본인의 ‘불충성 발언’을 지금도 믿는다면 한 대표의 독자적 행보를 조금 포용해주면 어떨까 싶다. 혹시나 불충스런 한 대표에게 괘씸죄를 물으려 한다면 윤 대통령을 있게 만든 11년 전의 주옥 같은 발언 의미는 퇴색할 것이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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