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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목)

[장종회 칼럼] 금리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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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끔 내린 기준금리에 시장반응 미지근
긴축사이클 끝나도 미온적 조치론 한계
정책 공조 잘 해내면 부작용 축소 가능
관계 당국 간 적극적 소통 ‘정치력’ 긴요


매일경제

장종회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한국은행의 금리인하를 두고 설왕설래가 적잖다. 3년 넘게 끌던 금융긴축 사이클을 끝냈건만, 인하폭과 시기를 두고 ‘눈치보기’란 지적도 나온다. 민간·국책연구원 할 것 없다. 내수부진 위기감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늦기까지 했으니 그럴 만하다. 저간의 금리인상은 고육책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풀린 돈이 물가를 밀어올린 여파다. 물가가 1순위인 한은은 경기퇴조에도 불구하고 금리인하엔 부정적이었다. 가계부채 증가세와 집값급등 우려가 커서다. 그 새 가계부채에 브레이크가 잡힐 조짐이 보이고 물가도 주춤하니 더 과감해도 됐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찔끔 내린 금리를 “매파적”이라 표현했다. 시장에서 오독하지 않기를 바라는 의도였을 게다. 정책결정자는 가용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효과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한 때 고위관료들은 직접관계부처와 소통하며 미디어에 읍소하기도 했다. 정책환경이 변했으니 그대로 따라갈 건 아니나 뒷일은 알아서 하란 식은 미덥지 않다.

경제학 교과서에선 금리가 돈의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실제 시장에선 마찰과 여러 요인이 뒤섞여 예상을 빗나간다는 게 함정이지만. 금리인상기에 통화량이 줄기는커녕 더 느는 기현상이 벌어진 걸 봐도 그렇다. 요즘 한국은 통화량과 금리가 교과서적으로 움직이는 미국과 다르다. 유동성 함정이 말해주는 바다. 돈줄을 풀거나 조여도 시장금리가 꿈쩍 않는 덫이다.

이런 때엔 기대심리가 너무 떨어져 돈을 풀고 금리가 좀 낮아져서는 소비자·기업이 소비와 투자에 돈을 쓰지 않는다. 기준금리를 약간 조정한들 시장반응이 나올 리 없다. 경기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도 요원하다. 결국 ‘내렸다’는 사실보다 ‘찔끔’에 방점이 찍혀 경기부양 의지가 의심받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적잖다.

울고 싶은데 뺨까지 맞은 마당에 큰 폭 인하를 단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까닭이다. 최소한 당국의 단호한 의지가 드러나 소비·투자를 늘리는 마중물이 되지 않았을까. 아직도 가계는 소비를 미루고 기업도 투자나 고용확대 확신을 못하니 안타깝다.

그럼에도 금리인상 기조가 막을 내린 건 분명하다. 이젠 금리를 얼마나 더 또는 빨리 내릴지가 관건이다. 의사결정자들이 미적대며 눈치게임만 할 때가 아니다. 예상을 벗어난 변칙을 고민해야 한다. 물론 추가인하로 자산 거품이 생기거나 환율상승 위험이 없지 않다. 그래도 지금은 소비촉진·투자확대가 더 시급하다. 내수부진이 생각보다 깊다. 걱정하는 부동산시장은 금리에만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대출규제·주택수급·집값전망·시장분위기 같은 요인이 더 결정적이다.

공을 넘겨 받은 행정부로선 걸음을 잘 디뎌야 한다. 돌다리 두드리며 시간을 허비해선 안된다.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다간 산업경쟁력 저하는 물론 내수위축도 깊어져 험한 길을 가야 할지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금리인하와 부작용 제거를 동시에 노리는 ‘정책공조’가 시급하다. 당국자들이 제각각 의사결정하는 게 독립성 유지가 아니다. 경제살리기란 공통 목표를 위해 적극 소통하는 게 먼저다. 그럴 때 필요한 게 바로 ‘정치력’이다.

[장종회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0호 (2024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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