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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 (금)

[한삼희의 환경칼럼] 15년 전엔 빛을 못 봤던 ‘펀치볼 세렝게티’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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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포유류가 사라진

현재의 ‘생태적 진공’ 정상 아냐

조선시대만 해도 한반도엔

수백~수천 호랑이·표범 살아

半사파리 공원 형태의

생태 갈증 해소 구상 있었다

조선일보

P-22로 알려진 퓨마.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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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A 도심 그리피스 공원에서 ‘P-22′라는 학술 연구 번호가 붙은 야생 퓨마가 10년 넘게 살았다. ‘할리우드 언덕’에 이어진 공원이다. P-22는 2012년 2월 무인 카메라에 처음 포착됐다. 그로부터 2022년 12월 건강상 문제로 안락사될 때까지 LA 시민들의 각별한 관심을 받았다. P-22의 움직임이 노출될 때마다 언론의 뜨거운 취재 대상이었다. 2013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촬영한 P-22의 카리스마 넘치는 강렬한 사진은 미국인들을 매혹시켰다.

P-22는 산악 지대에서 두 개의 고속도로를 건너 도심 공원으로 왔다. 우리에 갇히지 않은 대형 포식 동물이 서울로 치면 남산 같은 곳에 살았던 것이니(그리피스 공원은 남산 8배 크기이긴 해도) 경이로운 일이었다. P-22에 자극받아 LA에선 번잡한 10차선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폭 50m, 길이 61m) 야생동물 이동 통로를 건설 중이다. 9000만달러(약 1200억원)가 드는 건설비 모금에 시민 5000명 이상이 참여했고, 머지않아 완공된다.

국내 비교 사례로는 지리산 반달가슴곰 ‘KM-53′을 들 수 있다. KM-53은 2015년에 태어나 지리산에 방사된 후 수도산(경북 김천), 가야산(경남 합천), 덕유산(전북 무주), 민주지산(충북 영동)을 누비고 다닌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2018년 5월엔 고속도로 교통사고로 12시간의 복합 골절 수술을 받았다. 그러다가 작년 6월 경북 상주 민가 인근에 출몰 후 마취총을 맞고 달아나던 중 계곡에서 굴러 숨졌다.

지난 15일은 2004년 러시아 연해주의 반달가슴곰 6마리를 들여와 지리산에 방사한 지 꼭 20년 되는 날이었다. 지리산 반달곰은 4세대까지 번식해 89마리로 늘었다. 안정적 확산이 가능한 규모라고 한다. 반달가슴곰 복원에 적지 않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한 것은 이 땅에서도 대형 포유류가 야생을 활보하며 인간과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픈 욕구에서일 것이다. 곰은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민족 상징 동물인데 멸종 위기로 몰렸다는 건 자라나는 세대에게 설명하기도 난감한 일이었다.

반달가슴곰 얘기를 들으려 이우신 서울대 명예교수(전 자연보전협회장)에게 연락했다가, 환경부가 2009년 강원도 양구군 펀치볼 지역에 야생 사파리 공원 조성을 검토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기저기 동물원이 있다지만, 동물원은 좀 슬프다. 당시 계산으론 3300억원을 투입하면 노루·고라니·대륙사슴·산양·멧돼지·영양·순록·몽골가젤 등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1250만평 규모 사파리 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고 한다. 관람객이 아주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할 수 있게 한다는 구상이었다. 10만평 크기의 별도 육식동물 우리엔 관람객들이 다닐 천장형 덱을 설치한다는 것이다. 펀치볼 사파리 공원은 통일 이후엔 DMZ로 연결되는 국제적 생태 공원이 될 수 있다. 펀치볼은 한국전쟁 때 미군들이 여의도 20배 크기의 분지 지형이 화채 그릇(punch bowl) 같다고 붙인 이름인데, 국제적 인지도에도 유리한 지명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뭣보다 지역의 71%가 국유지인 데다 거주 인구(당시 1400명)가 적다는 점을 감안했다는 것이다. 펀치볼 미니 세렝게티(탄자니아 야생 공원) 구상은 관련 기관의 여러 차례 논의 끝에 공론화도 못 해보고 일단 보류로 결론 났다. 수도권 접근성이 떨어지는 점이 제일 문제였다. 계획이 성사되진 않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시도해볼 만한 일이다. 독일엔 어린이들이 야생동물을 직접 접하는 야생 공원이 100군데 이상 있다고 한다.

생태학에 ‘기준점 이동 증후군(Shifting Baseline Syndrome)’이라는 용어가 있다. 과거엔 현관문 밖이 바로 세렝게티였는데, 그걸 본 일이 없는 현 세대는 지금의 생태적 진공 상황에 익숙해져 그걸 정상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엔 한반도에 사는 호랑이·표범이 5000마리에 달했을 수 있다는 주장을 담은 책(조선의 생태환경사·김동진·2017)을 읽고 놀란 적이 있다. 반달가슴곰만 해도 조선총독부 시절 1000마리 이상 포획했다고 한다. 고려를 점령했던 몽골이 우리 조정에 2만마리의 수달 가죽을 보내도록 요구했다는 역사 기록도 있다(수달연구센터 한성용 박사). 수백, 또는 수천마리의 호랑이, 표범, 반달가슴곰이 한국의 숲을 누볐던 과거가 있는 것이다. 그때로 되돌아가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생태 파괴로 사실상 상실해버린 대형 포유류를 부분적으로라도 회복시켰으면 하는 소망엔 의미가 있다. 그것은 지금의 생태적 권태를 초래한 데 대한 일종의 죄의식일 수도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경제 풍요를 이룬 다음 등장하는 윤리의 확장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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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희 환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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