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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 (금)

[논설실의 뉴스 읽기] “의석 3분의 2 동의로 헌법재판관 선출” 독일식 모델 검토해 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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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풀이되는 헌재 공석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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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3일 이종석 헌재소장(가운데)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헌법소원 사건 공개 변론을 위해 헌재 대심판정으로 들어선 모습. /사진=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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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관 3명 공석 사태가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법(23조 1항)에는 ‘재판관 9명 중 7명이 출석해야 사건을 심리할 수 있다’는 ‘심리 정족수’ 규정이 있다. 재판관 7명을 채우지 못하면 헌법기관인 헌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 헌재는 지난 14일 심리 정족수 규정 효력을 일시 정지해 마비 사태는 막았다. 국회가 탄핵 소추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재판관 정족수 부족으로 자신의 탄핵 심판이 정지되는 것은 부당하다며 낸 가처분 신청을 헌재가 받아들인 것이다. 헌재 마비를 막기 위한 일종의 ‘응급조치’다. 하지만 국회 추천 몫인 재관관 3명을 국회가 여전히 선출하지 않고 있어 공석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관 9명은 대통령 임명 3명, 대법원장 지명 3명, 국회 선출 3명으로 구성하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다. 이런 독특한 방식을 정한 데는 행정·입법·사법 권력이 서로 견제하라는 권력분립 이상이 담겨 있다. 이 중 대통령과 대법원장 지명 몫 재판관은 특정 성향이 문제가 된 적은 있어도 지명 자체가 늦어진 적은 거의 없다. 반면 국회 추천이 대부분 제때 이뤄지지 않아 재판관 공석 사태가 반복돼왔다. 2018년에도 국회 추천 몫인 이종석(자유한국당), 김기영(민주당), 이영진(바른미래당) 재판관에 대한 선출이 늦어져 한 달가량 헌재가 마비됐다. 그런데 이들 3명의 임기(6년)가 끝난 지난 17일까지 국회가 또 후임을 선출하지 못한 것이다. 명백한 직무유기다.

이번에 헌재가 마비 사태는 막았지만 재판관 공석은 여전해 파행 운영은 불가피하다. 이번 가처분 인용은 ‘의결 정족수’가 아닌 ‘심리 정족수’에 대한 것이어서 헌재가 위헌이나 탄핵 결정을 하려면 여전히 재판관 6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재판관 6명 전원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의결이 가능한 구조여서 사실상 결정 기능은 작동하기 어렵다. 만약 재판관 6명이 중요 결정을 내리면 ‘반쪽짜리 결정’이란 정당성 논란도 제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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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철원


◇헌재 공백 사태 왜 벌어지나

국회 추천 몫 재판관 선출 지연이 반복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재판관 추천 절차와 배분 방식에 대한 기준이 없는 탓이 크다. 여야 간 재판관 배분이 그동안 오락가락한 것도 이 때문이다. 1988년 1기 재판부 구성 때는 4당 체제에서 상위 3당이 재판관을 1명씩 추천했고, 1994년엔 야당인 민주당보다 의석수가 두 배가량 많았던 민주자유당(국민의힘 전신)이 2명, 민주당이 1명을 추천했다. 이후 2000년부터 20년가량 여야가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1명은 여야 합의로 추천하는 관례가 자리 잡았으나 2018년엔 자유한국당과 민주당, 바른미래당 등 3개 원내교섭단체가 각각 1명씩 추천했다. 그리고 이번엔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2명을 추천하겠다고 주장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 재판관 추천이 이처럼 여야 간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는 것은 ‘정치의 사법화’ 현상과 무관치 않다. 탄핵 심판, 권한쟁의 사건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 몰리면서 헌재는 이제 정쟁을 매듭짓는 종착지가 됐다. 그러면서 재판관 추천을 놓고 여야가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을 벌이게 된 것이다. 전직 헌법재판관은 “이젠 국회가 자율적으로 해결해주길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헌재가 이번에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후임 재판관 임명과 제도적 보완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국회의 문제를 지적한 것도 이런 상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헌재는 “재판관 임기 만료로 인한 퇴임은 당연히 예상되는 것인데도 재판관 공석의 문제가 반복해 발생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제도적 보완 장치도 전무하다”고 했다.

아무런 추천 절차가 없는 국회와 달리 대법원은 별도 절차 없이 재판관을 대법원장이 지명하다가 2018년 4월 내규를 마련해 위원회 방식의 추천 절차를 도입했다. 먼저 후보자 천거를 받은 뒤 ‘재판관 후보 추천위원회’가 적격 여부를 심사해 3배수 이상의 후보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최종 후보자를 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국회 추천의 경우 이 방식이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추천위원회를 두더라도 결국 후보자 배분에 대한 원칙이 없으면 지금과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일식 모델이 대안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법조인들 중엔 세계적 권위를 갖는 독일 헌재 구성 방식을 도입할 만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독일 헌재는 재판관 16명을 다 국회에서 선출한다. 연방 하원과 상원에서 각각 8명의 재판관을 임명하는데 가결 정족수를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으로 정해 놓았다. 과반수 찬성으로 하면 특정 정당이 독식하거나 정파 간에 야합할 수 있어 이런 장치를 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당들은 서로 납득할 수 있는 최선의 후보를 찾으려 노력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독일 하원은 12인으로 구성된 별도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초당파적으로 후보자를 찾고 검증한다. 이 위원회에서 후보자를 추천하는데, 추천도 12명 중 8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자연히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사람은 후보에서 배제된다. 위원회 추천부터 본회의 통과까지 모두 3분의 2의 ‘가중 정족수’ 규정을 둔 것이다. 헌재 관계자는 “독일 방식엔 재판관 선출이 국가적 과제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며 “우리 국회의 추천에도 이런 방식을 도입해 재판관 선출을 미리 준비하고 협의하는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강국 전 헌재소장은 이런 독일 방식으로 재판관 전원을 뽑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는 개헌 사항이라 당장 시행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회 추천 몫 3명의 재판관 선출에 대해선 국회 차원의 내부 규정만 마련해도 얼마든지 독일식 모델을 도입할 수 있다.

“6년이냐 재판관 남은 임기냐” 헌재소장 임기도 쟁점

헌법재판관 공석 문제에 가려 있지만 헌재소장의 임기 문제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2018년 10월 재판관으로 임명된 뒤 작년 11월 헌재소장에 임명된 이종석 소장은 재판관 임기가 끝나는 17일로 소장 임기도 끝났다. 11개월짜리 헌재소장으로 임기를 마친 것이다. 그런데 후임 소장도 임명이 안 돼 소장도 공석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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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 생긴 것은 헌법에 ‘재판관 임기는 6년에 연임이 가능’한 것으로 돼 있지만 헌재소장에 대해선 별도 임기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법은 헌재소장에 대해 ‘국회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재판관이 임기 중에 소장으로 임명되면 재판관 잔여 임기만 소장으로 지내야 한다는 ‘잔여 임기설’, 소장 임기 6년이 새로 시작한다는 ‘임기 연장설’이 맞섰다. 하지만 2013년 처음으로 재판관 재직 중 헌재소장이 된 박한철 전 소장이 재판관 잔여 임기 3년 9개월만 채우고 퇴임하면서 그것이 관행이 됐다. 이후 같은 방식으로 소장이 된 이진성·유남석 전 헌재소장도 각각 10개월, 5년 2개월의 잔여 임기 동안만 소장을 했다.

이는 소장 임기를 새로 6년으로 연장할 경우 ‘재판관 임기는 6년’이란 헌법과 배치될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고 사법기관 수장의 임기가 이렇게 짧아지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헌재소장의 잦은 교체가 반복되면 그 후보자군인 재판관들이 임명권자인 대통령 눈치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헌법재판소법에 소장 임기를 ‘대통령 임명을 받은 날부터 6년’으로 명시하자는 법안이 2016년과 2017년에 발의됐지만 위헌 논란 끝에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선 ‘재판관 재임 중 소장으로 임명되면 새로운 재판관의 임기가 시작되는 것으로 한다’고 규정하면 위헌 논란을 피해 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정교한 입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회는 이 문제를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최원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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