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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미술의 세계

자연·AI … 인간과의 공존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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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구기정 '미세기계생명배양장치'(2024).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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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건물 사이, 햇빛이 드리운 정원에 식물들이 하늘하늘 흔들린다. 누군가 식물을 돌보고 있는 걸까. 잠시 뒤 스테인리스 스틸로 이뤄진 호스가 식물의 줄기처럼 유연하게 움직이며 식물들을 감쌌다. 평범한 듯 보였던 장면은 순식간에 초현실적으로 바뀌었고, 금속의 줄기는 화면 밖의 실물로도 이어졌다. 새로운 개념의 미래 생명체를 그린 구기정의 다채널 비디오 설치작 '미세기계생명배양장치'(2024)다. 이 실험적인 작품은 인공과 자연, 인간과 비인간,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면서 지속 가능한 생태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서울시립미술관(SeMA)의 대규모 소장품 기획전 'SeMA 옴니버스'가 서소문 본관과 북서울미술관, 남서울미술관, 미술아카이브 등 4개관에 걸쳐 열리고 있다. 하나의 주제 아래 단편 영화 여럿을 엮은 옴니버스 영화처럼 서울시립미술관 소속 큐레이터들이 약 1년6개월간 머리를 맞대고 '따로 또 같이' 기획한 사상 최대 규모의 소장품 전시다. 올해 서울시립미술관의 의제(키워드) '연결'을 다각도로 반영했다. 작품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한편 인류가 지향해야 할 아름다운 공존을 그린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은 "1988년 개관 이후 수집해온 소장품 총 6158점을 찬찬히 연구해 새롭게 선보이는 전시"라며 "4개의 전시를 통해 소장품이 미술사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사회와 예술에 필요한 의미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미래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다음달 17일까지 이어지는 서소문 본관의 '끝없이 갈라지는 세계의 끝에서'는 현대사회에서 인간·비인간의 공존 형태와 예술 작품의 표현 매체가 갈수록 다층적으로 변하는 현상을 조명한다. 작가 38명의 작품 80점 가운데 약 82%(66점)가 소장품이고, 나머지 14점은 신진 작가들의 신작으로 구성됐다. 한국의 1세대 행위예술가 이건용의 퍼포먼스 사진 작품 '장소의 논리'(1975~2019)와 한국의 현대미술 운동을 주도한 실험미술가 이강소의 첫 비디오 작품 '페인팅 78-1'(1977), 최근 활발한 국제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불의 설치 작품 '무제'(2006) 등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매체로 읽는 SeMA 소장품'을 시작으로 연결성이 있는 구작과 신작을 병치한 '올드 앤 뉴', 젊은 작가 작품을 선보이는 '옐로우 블록', 복합 매체 작품을 모은 '레이어드 미디엄', 인공지능(AI) 같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표현한 '오픈 엔드' 섹션으로 이어진다. 일례로 커미션 신작인 한지형의 회화 'Tomorrow is not looking good either(내일도 좋지 않아 보여)'(2024)는 기술 발전에 따른 현대사회의 불안과 긴장에 주목한 작품으로, 인간 종이 겪게 될 변화를 상상한다.

초상화를 그리되 얼굴 인식 AI가 얼굴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그린 그림과 이를 위한 일련의 규칙, 작업 과정 등이 모두 작품의 일부인 신승백·김용훈의 '넌페이셜 포트레이트(Nonfacial Portrait·얼굴 없는 초상화)'(2018)는 대표적인 복합 매체 작품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세 가지 얼굴 인식 AI 알고리즘이 카메라로 그림을 비춰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그림에서 얼굴이 인식될 경우 모니터에 경고가 표시되는 식이다.

한편 북서울미술관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전시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를 오는 11월 3일까지, 남서울미술관은 인간 중심적 사고를 벗어 던진 전시 '제9행성'을 이달 27일까지, 미술아카이브는 소장품의 의미를 확장하는 전시 '아카이브 환상'을 내년 2월 2일까지 개최한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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