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26 (토)

[메아리] 검찰 수사심의위원인 게 부끄럽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명품백 수심위 참여 속앓이 어땠을지
소집 여부도, 의견 수용도 검찰 뜻대로
왜 수심위 필요한지 납득되는 설명을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심우정 검찰총장이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은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 대신 '내부 레드팀' 형식의 검토를 거쳐 사건을 최종 처분할 방침이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 위원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선뜻 내키지 않았다. 평소 심판자여야 할 기자가 운동장에서 직접 뛰는 걸 썩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무엇보다 수심위라는 기구 역할이 미덥지 않았다.

그래도 수락한 건, 실제 수심위원들이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는지 직접 체감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였다. 사법 정의를 세우는 데 미약한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어쭙잖은 마음도 살짝 있었다. 어느 날 집으로 수심위 운영지침과 함께 위촉장이 날아왔다.

검찰이 마지못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 관련 수심위를 열겠다고 했을 때도, 또 명품백을 건넨 최재영 목사의 강력한 요청으로 수심위를 열겠다고 했을 때도 해당 현안위원 선정 연락이 오지 않을까 조금은 기대했다. 250명가량의 수심위원은 직역별 4개 그룹으로 나뉜다. 변호사, 법학교수, 시민단체∙종교∙기타전문직, 그리고 언론인∙비법학교수∙퇴직공직자다. 수심위 소집이 결정되면 해당 검찰청 검찰시민위원 2명 입회하에 수심위원장이 그룹별로 마련된 4개 추첨기에서 공을 무작위로 뽑는 방식으로 현안위원 15명을 골라낸다고 한다. 로또 방식이다. 6% 확률이니 두 번 중 한 차례는 걸릴 확률이 12% 정도 되겠다. 높진 않지만 기대해볼 만했다.

선정 연락이 왔을 때 수락을 할지 말지 마음을 정한 건 아니었다. 수심위원 요청을 받았을 때처럼 역시 고민이 됐겠지만, 이 또한 수락했을 공산이 크다. 기왕 경험을 해볼 거라면 사회적으로 관심이 큰 사안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정말 로또처럼 뽑는 게 사실일까 하는, 전혀 근거 없는 의심도 살짝 한다. 어느 그룹에서 몇 명을 뽑는지부터 모든 과정이 다 ‘깜깜이’여서 그렇다.)

알다시피 두 차례 수심위 결론은 엇갈렸다. 김 여사 수심위는 위원 전원이 무혐의 불기소 의견을, 최 목사 수심위는 8대 7의 근소한 차이로 기소 의견을 냈다. 검찰은 김 여사 수심위 권고는 따랐고, 최 목사 수심위 의견은 내쳤다. 명품백을 준 사람만 기소하고 받은 사람은 불기소하는 형평성 논란을 자초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내가 현안위원 중 한 명이었다면 어땠을까. 김 여사 수심위에 참여를 했다면 나는 그들과 다른 판단을 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검찰이 제공한 편협한 정보와의 싸움에서 두 손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회의에서 추가 답변을 요구하고 반론을 냈어도 그냥 묻혀버렸을 것이다. 해당 수심위 참여 사실도, 누가 소수의견을 냈는지도, 회의록도 철저히 비공개니까. 그러니 그저 아무런 부연도 없이 불기소 의견을 낸 수심위의 일원으로만 남았을 테다.

최 목사 수심위 현안위원이었다면 자괴감은 더했을 것이다. 8시간 넘는 격론 끝에 기소 의견을 모아서 냈는데 결국 불기소라니. 이럴 거면 수심위는 왜 하느냐, 정말 들러리에 불과한 것이냐 비분강개했을 것이다. 지금 두 수심위에 참여했던 위원들 상당수가 누구에게도 말은 못 한 채 이런 심정으로 끙끙 속앓이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도 수심위 소집 요구가 많았다. 이번에도 참여 기대는 어그러졌다. 검찰은 수심위 대신 내부 ‘레드팀’에 그 역할을 맡겼다. 부담스러우면 소집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의견이 다르면 무시하면 그뿐인 게 수심위였다.

아직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음에도 수심위원이라는 그 자체가 부끄럽다. 이대로면 향후 다른 사건에서 추첨에 뽑히더라도 선뜻 수락할 마음이 생길 리 없다. 같은 생각을 하는 수심위원들이 많을 것이다. 수심위 폐지론이 들끓는다. 검찰이 수심위 제도를 유지해야겠다면 적어도 수심위원들에게 납득될 설명은 해주는 게 도리가 아니겠는가.

이영태 논설위원 ytlee@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