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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토)

[매경춘추] 직원의 CEO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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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작년 10월, 회사가 어려울 때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했다. 매출이 2년 연속 감소하고 있었다. 10년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목표하에 "조폐가 산업이 되다"라는 어젠다를 세웠고, 화폐 제조 과정의 위·변조 방지기술과 압인·세공기술을 활용해 정보통신기술(ICT)·문화·수출기업으로 사업 전환을 서둘렀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소통을 강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항상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가?"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공기업은 1년에 한 번 정부의 경영평가를 받지만 그것으로 CEO에 대한 충분한 피드백을 받을 수 없었고, 직원들과의 다양한 라운드테이블에서도 듣기 좋은 이야기나 건의 사항이 주를 이뤘다.

그런 고민이 있을 때 공사의 전 간부에 대해 상사·동료·부하직원 모두가 참여하는 다면평가를 전면 실시했다. 간부들의 역량 제고에 기초자료로 활용하는 한편 조직 내 갑질 예방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또한 직원들의 오랜 불만이었던 인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정량적 평가에 더해 장단점을 기술하는 정성적 평가에는 MZ세대의 솔직한 피드백이 담겨 있었다. 평가 결과 전체를 본인에게 주기는 어려워 요약본을 통보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전문성과 소통능력 제고에 활용하게 했다. 민간기업의 경우에는 흔한 사례였지만 공공분야에서는 최초 시도였다.

간부들의 역량평가 과정을 지켜보면서 CEO에 대해서도 전 직원들의 평가를 받기로 결정했다. 담당 실무자는 여기에 더해 평가 결과까지 공개할 것을 건의해 그렇게 하기로 했다.

직원들의 CEO 평가는 전례 없는 일이다. 부작용을 우려해 지인들은 말렸지만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도전하기로 했다. 평가 결과는 역시나였다. 경영 방향은 맞는데, 3가지를 개선하라는 것이었다. 새로운 사업이 많이 생겨 힘들고, 임원들과의 소통이 부족하며, 전통 사업과 시니어 직원이 소외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 직원에게 보내는 CEO레터에서 앞으로는 벌여 놓은 일을 추스르는 데 집중하고, 임원들과도 더 열심히 소통하는 한편, 전통사업을 수행하는 사업장과 시니어 직원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내년에는 더 나은 CEO 평가를 얻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직원들 평가를 받아보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또 다른 소통의 장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상사가 직원을 평가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거꾸로 직원이 CEO를 평가하고, 그 결과를 경영에 반영하는 모습이 아직까지는 낯설다.

그러나 CEO가 조직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좋은 제도이고 필요한 혁신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다양한 혁신 노력을 통해 우리 공사가 건전한 조직문화를 바탕으로 전통 제조업에서 ICT·문화·수출기업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

[성창훈 한국조폐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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