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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토)

한때 세계 1위 반도체 기업 인텔의 몰락 관료적 조직문화·AI오판이 결정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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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미국 인텔의 주가가 하루 만에 26% 폭락했다. 실적 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회사가 대규모 해고 계획을 발표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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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시대에 반도체 시장을 호령했던 인텔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윈도우즈를 개발한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1990년~200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인텔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시작된 모바일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며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실 인텔의 위기는 인텔의 부진이라기보다 신흥 강자의 등장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 PC보다 훨씬 작은, 한 손에 들수 있는 스마트폰은 새로운 반도체 폼팩터를 요구했고 작지만 빠른 속도와 발열이 적은 모바일용 칩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PC와 노트북 칩의 최강자였던 인텔은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며 퀄컴과 Arm과 같은 경쟁사들에게 빈틈을 허용했다. 또 최근 1~2년 사이 급성장한 인공지능(AI) 반도체 수혜기업 엔비디아의 등장은 기존 CPU 중심의 반도체 시장을 GPU 중심의 고성능 칩 시장으로 바꾸며 기존 질서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기존 경쟁력에 안주했던 인텔 스스로의 실책도 문제로 지적된다. 2010년부터 연구개발(R&D) 인력을 포함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감행해 경쟁사로 핵심 인력들이 유출됐고 원가 절감을 통해 단기 성과에 집착했던 2010년대의 주요 전략이 지금의 패착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2016년 인텔은 전체 인력의 10%인 1만2000여 명을 해고했고 당시 회사를 떠난 주요 연구·개발 인력이 AMD 등 경쟁사로 이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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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 인력 경쟁사로 이직
뿐만 아니라 한국·일본·대만·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반도체 경쟁력이 치솟으며 설계와 생산, 그 어디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7년 2분기 처음으로 인텔보다 더 많은 영업이익을 얻으며 인텔의 자존심을 구긴 바 있다. 같은 해 파운드리(수탁 반도체 생산) 기업 TSMC 역시 처음으로 인텔의 시가총액을 뛰어넘었다. 현재 전세계 반도체 기업 중 시가총액 1조달러를 넘은 기업은 엔비디아와 TSMC 등 2곳뿐이다.

심지어 올해 3분기 매출 예상치에서 인텔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SK하이닉스보다 낮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주가 역시 이러한 시장 우려가 반영되고 있다. 10월 첫째 주 기준 인텔 주가는 22달러로, 최고점이던 2020년 초 대비 70% 가까이 하락했다.

사실 인텔에게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의 설계와 생산까지 모든 전 과정을 미국에서 진행해야 한다며 ‘아메리카 퍼스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로 인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직접 인텔의 생산 공장을 찾고 인텔의 반도체 웨이퍼를 직접 손에 들고 흔들며 전폭적인 지지에 나섰다. 지난 5월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 지원법상 인텔에 최대 85억달러, 한화 11조원이 넘는 직접 자금 투자를 약속하며 인텔의 재기를 지원하고 있다. 결국 미국 기업이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이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미 정부의 생각이 인텔의 재기와 맞물려 기회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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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은 2021년 미국 정부의 ‘반도체 굴기’에 발맞춰 파운드리 사업에 재진출했으나, 떨어지는 기술 경쟁력과 대규모 투자 출혈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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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인텔의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수년간 수조원을 쏟아부으며 파운드리 사업에 도전했던 인텔의 성적표는 처참했다. 수율을 내지 못하고 고객사 확보에 실패하며 결국 파운드리 정리·매각설까지 나온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TSMC가 성장함에 따라 2021년부터 파운드리 사업에서 매년 50억달러(약 6조 7200억원)가 넘는 손실을 기록중이다. 2023년에는 영업손실이 70억달러(약 9조 4000억원)까지 커졌으며 올해 상반기 누적 적자는 53억달러로 계속해서 쌓이고 있다.하지만 인텔은 이러한 사실을 부인하며 당분간 파운드리 사업을 계속해나갈 것을 천명했다.

현재 파운드리 시장에선 TSMC가 50%가 넘는 점유율을 보이며 시장 지배적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삼성전자가 타도 TSMC를 외치며 사업을 집중하고 있지만 최근들어 삼성전자와 TSMC의 시장 점유율 격차는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10%대의 시장점유율을 가진 삼성전자 뒤를 쫓고 있는 기업이 바로 인텔이다. 인텔은 우선 전세계 최대 반도체 소비시장을 갖고 있는 미국에서 최대한 고객을 확보해 나가겠단 계획이다. 하지만 파운드리 사업 특성상 수년간의 기술 경쟁력과 생산 노하우가 축적돼야 해 시간은 아직까지 인텔의 편이 아니라는 분석이 많다.

기존 효자 사업이던 PC 반도체칩 시장이 부진한 가운데, AI칩 시장에선 엔비디아를 뒤쫓는 신세인 데다 파운드리 사업까지 지지 부진하며 현재 인텔은 역대급 위기에 처한 것이다. 결국 인텔은 1만 5000여 명가량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로 발표하며 사업 재편과 인력 조정 등의 강수를 두고 있다.

현재 업계에서는 모바일 반도체칩 강자 퀄컴에서 인텔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빗발치고 있다. 퀄컴이 미국 대선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인텔 인수를 추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뒤바뀐 양사의 모습에 많은 반도체업계 관계자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PC시장과 모바일 시장을 양분하는 양사의 합병에는 독과점 이슈 등 걸림돌도 많다는 평가다. 과거 브로드컴이 퀄컴을 인수하려 했으나 미 당국의 반대로 결국 무산된 바 있다. 엔비디아 역시 2021년 Arm을 인수하려 했지만 미국 연방거래위원회에 의해 제소당하며 결국 무산됐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9월부터 인텔이 경영난에 시달리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을 통한 극복에 애쓰고 있다”며 “실적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새로운 시장 강자와 맞설 뾰족한 무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물음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현재의 위기가 최악의 상황인 것은 맞지만 처음 있는 일은 아니라는 측면에서 신중하게 봐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1968년 세워진 인텔의 초기 주력 제품은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장악한 메모리반도체였다. 1971년 메모리반도체 사업부문에서 첫 흑자를 기록했고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PC의 핵심칩인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에 성공하며 메모리반도체와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성장의 양대축으로 자리한 것이다.

인텔의 첫 시련은 일본으로부터 비롯됐다.1980년대 버블경제로 호황을 누리던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미래 먹거리 발굴에 나서며 메모리반도체를 전략 산업으로 육성키로 결정했다. 일본 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NEC, 도시바, 후지쯔 등 일본 반도체기업이 전략 육성됐다.

이게 바로 반도체업계에서 본격적으로 알려진 첫 ‘치킨게임’이 됐다. 1980년대 수익 대신 생존을 택한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가격 인하를 경쟁적으로 단행하며 시장 혼란을 일으켰고 기존 메모리반도체 강자였던 인텔은 일본의 가격 공세를 버틸 수 없었다. 결국 1984년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40% 폭락하며 인텔은 원가조차 회수하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최종적으로 인텔은 1985년 메모리 사업 철수를 선언한다. 2만 4000명이던 당시 직원은 1만 8000명으로 줄었고 인텔은 CPU 시장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몰렸다.하지만 울며 겨자먹기식의 선택이 결국 1990년대를 이끈 PC 시대의 핵심 칩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된 셈이다.

동맹 다각화 통해 출구전략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인텔은 동맹 다각화를 통해 출구 전략 마련에 나서고 있다. 오랜 기간 라이벌 관계를 이어왔던 AMD와 손을 잡은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10월 15일(현지시간) 워싱턴주 벨뷰에서 열린 중국 IT 기업 레노버의 ‘테크 월드 2024 콘퍼런스’에서 두 회사는 ‘x86 아키텍처’ 자문 그룹(advisory group)을 결성한다고 밝혔다.

이 자문 그룹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메타, 브로드컴, 델, 오라클 등도 창립 멤버로 참여한다. 반도체칩 설계 표준을 함께 마련하기로 약속하며 영국 반도체 설계자산 기업 Arm(암)과 전면전을 예고한 셈이다.

‘x86’은 인텔이 40여년 전 개발한 반도체 설계 표준으로 AMD가 인텔로부터 ‘x86’의 라이선스를 받아 반도체를 개발해왔다. 하지만 영국기업 Arm의 기술 경쟁력이 높아지며 기술 표준 맹주의 자리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면서 이번 동맹이 성사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수십 년간 PC와 서버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잡으며 안정적인 수익 창출원이 됐던 설계 표준 리더십까지 빼앗길 경우 인텔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 전세계 최대 스마트폰 제조사 애플은 오랜 기간 인텔 칩을 사용해오다 수년 전부터 Arm 기반 칩으로 전환했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 전용 칩을 만드는 퀄컴 역시 대표적인 제품 스냅드래곤을 인텔이 아닌 Arm의 표준에 기반해 제작한다.

이번에 결성된 자문 그룹은 이를 위해 x86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개발자들로부터 조언을 구하고 개발자와 제조업체가 인텔과 AMD의 제품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 규칙이나 지침도 만들기로 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는 “우리는 수십 년 만에 x86과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의 정점에 있다”며 “x86은 여전히 건재하다”고 밝혔다. 리사 수 CEO도 “x86이 개발자와 고객이 계속 선택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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