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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술(IT)업체 ㄱ사에서 근무하던 ㄴ씨는 2021년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ㄴ씨는 8명이 맡아야 할 프로젝트를 홀로 감당해오다, 추가 프로젝트까지 맡게 되면서 업무량이 늘었다. 마감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발주기관의 항의를 받으면서 스트레스는 더욱 커졌다. 가족과 동료들에게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감, 불안, 죄책감 등을 호소했던 ㄴ씨는 대표이사에게 사직의사를 밝혔고 이튿날 목숨을 끊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심각한 우울장애에 부합하는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게 됐다”며 ㄴ씨의 자살을 산업재해(업무상질병)로 인정했다. 그러나 ㄱ사는 2022년 고용노동부의 평가를 거쳐 ‘청년친화강소기업’에 선정됐다. 노동부가 선정 때 결격사유로 최근 3년간 산재 ‘사고’ 사망만 따질 뿐, ‘질병’ 사망은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부가 정부 지원사업이나 구인·세무조사 등 혜택을 받는 ‘청년친화강소기업’을 선정하면서, 노동자 안전보건과 관련한 산업재해 관련 취소·결격 요건을 부실하게 운영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1∼2023년 청년친화강소기업(이하 강소기업)에서 발생한 사망 산재(출퇴근 산재 제외)는 모두 6건이지만 이 가운데 1곳만 자격이 취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과로자살이 발생한 ㄱ사를 비롯해, 떨어짐, 부딪힘, 사업장 외 교통사고 등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해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로 인정한 기업 4곳도 자격이 유지됐다. 노동부는 매년 일·생활균형, 임금, 혁신역량 등이 우수한 기업을 강소기업으로 선정하는데, 2021~2022년 1200여곳, 지난해 1천곳, 올해 533곳을 선정했다.
사망 산재가 발생한 기업도 강소기업에 선정되거나 자격이 유지된 것은 부실한 기준 때문이었다. 노동부는 지난해까지 3년 이내에 산재 사망 사고만을 강소기업 선정 취소·결격사유로 삼았다. 사고가 아니라 ‘질병’에 해당하는 ‘과로 자살’ 산재 발생 기업도 강소기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노동부는 선정기업 모니터링 부실로 지난해 6월 사망사고가 발생한 두 곳에 대해선 자격을 취소하지 않았다.
노동부는 올해 선정 때부터 취소·결격 사유를 ‘최근 2년 이내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산업재해 발생 건수 등 명단 공표 사업장’으로 바꿨지만 이 역시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망재해자가 연간 2명 이상 발생했거나, 같은 규모·업종에 비해 사망만인율이 높은 사업장 등이 명단 공표 대상이 되는데, 지난해 말 기준 명단 공표 사업장은 494곳뿐이다. 이 때문에 청년노동자 1명이 일하다 숨져도 자격은 원칙적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강소기업에서 발생하는 산재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출퇴근 산업재해를 제외하고,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가 승인된 건수는 2021년 190건, 2022년 203건, 2023년 260건에 달한다. 지난해 기준 1천곳 가운데 153곳에서 산재(출퇴근산재 포함)가 발생했다.
박해철 의원은 “산재 발생 기업을 청년들에게 친화적인 노동 환경을 제공하는 기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본래 취지에 걸맞게 운영되기 위해선 국민 눈높이에 맞는 결격 요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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