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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화)

[朝鮮칼럼] 수월성이냐 평준화냐… 개별 학교가 결정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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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결정 단위가 커지면

자율적·창의적 시도 어려워

시군 단위에서도 경쟁 꺼리게 돼

평준화 강요도 안 되지만

수월성 교육도 모두에겐 필요 없어

교육 개혁, 왜 하나의 답 주려 하나

내 자녀가 다니는 학교

선택권을 당사자에게 주자

조선일보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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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다수당 지위 확보에 실패하고 서울시 교육감 보선에서도 패한 정부가 연금, 교육, 노동 3대 개혁에 의료까지 얹어서 개혁을 계속하겠다고 하니 가상한 일이다.

개혁이 어려운 것은 대개 기득권과의 싸움이기 때문인데 교육 개혁은 조금 성격이 달라 보인다. 아주 단순화하면 교육에서 시험과 경쟁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과 시험도 경쟁도 없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념의 차이가 문제일 뿐, 교육 공급자의 기득권을 포기하게 해야 할 일은 없다는 말이다. 이번 서울시 교육감 보선 결과를 보면 국민의 선호는 49.7대50.2로 팽팽한 것 같다.

전 정부가 국가교육위원회라는 교육부보다 위상이 높다는 조직을 만들어 교육 개혁안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고 이 정부도 이 위원회에서의 합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구성원을 여야가 추천하도록 한 결과 각각 정반대의 교육철학을 가진 교육 공급자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여당은 수월성 추구와 경쟁의 불가피성을 믿고 있고, 야당은 학생들의 부담 경감과 경쟁의 최소화를 지향하고 있으니, ‘대타협’이라는 것이 된다 한들 어느 쪽도 만족할 수 없는 어정쩡한 절충이 될 것이 뻔하다.

수요자 입장에서 보면 교육은 미래의 더 좋은 일자리와 소득을 위해서 지금의 소비를 희생하는 전형적인 투자 행위이고 지출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경제 행위다. 한 나라 경제의 경쟁력이 점점 더 과학기술 수준에 좌우되고 있으니 나라 단위에서 보면 더 명백한 투자 행위다. 무제한의 국제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교육 수요자는 경쟁의 불가피성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데, 교육 공급자들은 왕왕 교육에 있어서 경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학생이 경쟁에 노출되면 교사도 얼마나 잘 가르쳤는지 평가받게 되기 때문에, 경쟁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그 동기가 의심스러울 때까지 있다.

교육 수요자는 사교육, 해외 유학 등의 장에서 무한 경쟁을 하고 있는데 공교육은 경쟁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어서는 교육 개혁이 될 리가 없다. 사교육비, 해외 교육비의 증가는 더 나은 교육을 위해 돈을 더 쓸 각오가 되어 있는 국민이 그만큼 있다는 증거다. 이 돈이 얼마인지, 이 돈이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 자기 자녀가 더 나은 교육을 받게 하는 데 쓰인다는 걸 확실하게만 해 주면 이 돈을 공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교육부가 전국의 교육 재정을 획일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으로는 국민이 자발적으로 더 투자하게 만들 수 없다. 중앙정부가 주는 재원은 고르게 나누어 줄 수밖에 없다. 학교별로, 지방별로 더 거두어 다른 학교, 다른 지역보다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경쟁을 할 수 있게 하자. 돈을 더 내서 더 나은 교육을 받는 선택을 할 자유를 교육 수요자에게서 박탈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오래전 필자가 미국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을 때 지방 교육 당국에서 돈을 더 거둘까, 아니면 지출을 줄일까를 묻는 주민 투표를 한 적이 있는데 주민이 후자를 선택하자 바로 가차 없이 학급 통폐합, 교사 감원, 도서관 운영 시간 단축을 단행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가급적 작은 단위로 자치하는 것이 교육 개혁의 최선의 방법일 성싶다.

지금은 손자, 손녀가 미국, 영국에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미국의 손자는 숙제도 시험도 없는 공립학교를 골라서 보내고 있고, 영국의 손녀는 저렇게 어려운 것을 벌써 가르쳐도 되나 싶게 공부를 시키는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다. 엄마들의 생각이 다른 것이다. 경쟁의 필요성과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정반대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각자 원하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학교 단위 교육 자치를 최대한 확대하는 것이 가장 많은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교육 개혁이 아닐까? 어정쩡한 절충을 선택하는 학교도 물론 그 학교의 선택이다.

의사 결정 단위가 크면 자율적, 창의적 시도를 기대하기 어렵다. 시도 단위는 물론 시군 단위의 결정도 평준화, 경쟁 기피로 가기 십상이다. 내 자녀가 다니는 학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정하라고 할 때만 돈을 더 내서라도 더 좋은 학교를 만들자는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평준화를 모두에게 강요하면 안 되지만 수월성 교육을 모두에게 강요할 필요도 없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모두가 감당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 외치면서 시작한 정부인 만큼 국민의 선택의 자유를 넓혀주는 그런 교육 개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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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원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 이사장·한국고간찰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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