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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화)

[기억할 오늘] 파스테르나크의 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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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닥터 지바고'의 하루
한국일보

숨지기 1년 전인 1959년 무렵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위키피디아


1955년 소비에트 작가동맹은 "소비에트를 악의적으로 중상하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890~1960)의 ‘닥터 지바고’의 출간을 불허했다. 하지만 그 무렵 소련을 방문한 이탈리아 공산당 소속 한 언론인이 우연히 그 원고를 본 뒤 작가에게 해외 출간 의사를 타진했다. 혼외 연인이던 이빈스카야(Ivinskaya)가 망설이던 작가를 적극 설득했다고 알려져 있다. 책은 57년 이탈리아어로 처음 출간됐고, 소비에트 당국과 동맹 소속 작가들의 집요한 비방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 덕에 더 빨리 영어와 불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2000년대 공개된 미국 비밀 문건 등에 따르면 미 중앙정보부(CIA)도 개입했다. CIA는 책을 다량 구입해 각국 대사관을 통해 현지 문단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에게 배포했다. 58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국제박람회에 참가한 소련 대표단에 배포된 러시아어판 제작 비용을 CIA가 댔다는 설, CIA가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를 겸하고 있는 스웨덴 한림원에도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건 한림원은 58년 10월 23일 그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했고, 파스테르나크는 한림원에 보낸 첫 전보에 “고맙고,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우면서도 당혹스럽다”고 썼다. 하지만 그의 수상 소식은 소비에트와 작가동맹의 재앙이었다. 29일 그는 두 번째 전보를 보냈다. “노벨상이 내가 속한 사회에 미칠 영향과 의미를 고려하건대, 나로선 (…) 그 상을 거부해야 한다. 나의 자발적인 거절 의사를 불쾌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그는 출국할 경우 다시 귀국할 수 없다는 협박을 받았다. 아들 예브게니(Yevgeny)는 그날 저녁 아버지가 “피로와 고통 어린 표정”으로 가족에게 “'이제 아무 문제 없을 거야. 그 상을 거절했어'라고 말했다"고 훗날 전했다. 그는 2년 뒤 숨졌고 상은 89년 예브게니가 대신 수상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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