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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 (수)

“북한은 중국의 잠재적 적” 하지만 헤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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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의 차이나 퍼즐] 09 _북중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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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4월18일 김일성 북한 국가주석이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마오쩌둥 중국공산당 주석과 만나 손을 맞잡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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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북한은 중국의 잠재적 적이고, 한국은 중국에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중국 학자의 공개 강연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강연자는 북중관계와 한국전쟁 연구의 대가로 손꼽히는 선즈화 화동사범대 교수였다. 그는 다롄외국어대에서 한 강연에서 “중조(북중)는 과거에 분명 벗이었고 맹우였지만, 그것은 마오쩌둥과 김일성 등 옛 세대 지도자들이 맺은 일종의 특수한 우호관계였을 뿐”이라며, “현재 중국과 북한의 근본 이익은 서로 어긋나고 동맹의 기초는 무너졌다”고 단언했다. 그는 특히 북한의 핵 개발이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고 중국 주변을 불안하게 하는 근본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조선(북한)이 한번 핵실험을 하면 미국은 동북아에서 군사력을 한층 더 증가시키고 미국의 군사 압력은 또다시 조선이 핵실험을 하게 한다. 가장 큰 압박과 피해를 보는 것은 중국과 한국이다.”



그때, 한반도와 중국의 관계는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었다. 2015년 9월3일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70주년 행사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란히 천안문(톈안먼) 망루에서 열병식을 참관했던 한중관계의 ‘호시절’은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흔적도 없이 지워져 버렸다. 중국은 북한 핵실험 이후 한국의 협조 요구를 거부했고, 한국은 2016년 7월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로 나아갔다. 중국은 외교와 경제적 보복으로 한국을 압박했다.



북중관계도 깊은 위기에 빠져 있었다. 2012년 11월 시진핑 주석이 집권한 직후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친중파’ 세력을 제거하고, 핵·미사일 개발의 길로 질주했다. 김정은은 2013년 중국과 협력하면서 경제 개발을 추진해온 고모부 장성택을 냉혹하게 숙청하고, 중국이 관리해온 이복형 김정남을 2017년 2월 말레이시아에서 공개적으로 암살했다. 2016년에는 4~5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거침없이 벌였다.



중국 내에서는 북한의 행태에 대한 분노와 비난이 터져 나왔다. 김정은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중국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7년 2월에는 자발적으로 북한에 원유를 비롯한 석유제품 수출을 중단했다. 하지만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2017년 9월3일 6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중국은 군사연습이라며 탱크부대를 압록강 변에 배치해 북한을 압박했다.



하지만, 결국 중국은 북한을 포기할 수 없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겨냥해 무역전쟁의 신호탄을 쏘면서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됐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으로 나아가자, 중국은 북한이 자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에 나섰다.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3월 베이징에서 처음 만났다. 2011년 김정은이 집권하고, 2012년 11월 시진핑이 중국 최고지도자가 된 이후 이때까지 정상회담 한번 하지 않을 정도로 냉랭했던 관계가 갑자기 뜨거워졌다. 2018년 3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은 4차례 만났고, 2019년 6월에는 시진핑 주석이 평양을 방문해 5번째 정상회담을 했다. 2021년 양국은 1961년 체결된 북-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을 20년 더 연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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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 펑더화이(왼쪽)가 김일성 북한 조선인민군 사령관과 대화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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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지난 75년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겉으로는 혁명과 전쟁에서 동지로 함께 싸운 “선혈로 응고된”(鮮血凝成) 혈맹이었지만, 상호 불신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김일성은 1950년 6·25 남침을 소련 스탈린과 상의해 결정했고 마오쩌둥에게는 나중에 통보했다. 마오쩌둥이 북한을 지원해 한국전쟁에 참전한 이후에도 중국인민지원군과 북한군의 지휘권 문제와 38선 이남 진격 문제 등을 두고 북-중은 사사건건 부딪쳤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김일성은 친중 세력인 연안파를 숙청했다. 문화대혁명 초기인 1966~1969년 홍위병들은 김일성을 비난하고 북중 국경지대에서 ‘조선 수정주의’를 공격하는 선전전을 벌였고, 김일성도 공개적으로 마오쩌둥을 비난하는 등 북-중은 ‘원수’처럼 대립했다.



1992년 한중수교를 북한은 중국의 배신으로 여겼고 이후 핵 개발의 길로 질주했다. 북한은 2006년 첫 핵실험과 2009년 두번째 핵실험 당시 직전까지 중국 정부에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례 기간, 중국은 천안문 광장에 조기를 게양하지 않았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천안문 광장에 조기를 게양했던 북중관계는 더 이상 없다는 신호였다. 김정은의 3대 세습을 비난하는 여론은 중국 인터넷에서 확산했다. 김일성 시대 북한과 중국 사이에선 이견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이념과 인맥이 이어져 있었으나,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다. 중국 후진타오 지도부는 북중관계를 혈맹에서 보통의 국가관계로 전환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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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고모부이자 북중 경제 협력의 핵심 인물이었던 장성택이 2013년 12월 처형되기 직전 특별군사재판 법정에 서 있다. 노동신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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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수교 75주년인 올해, 북한과 중국이 다시 냉랭해진 모습이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고, 급기야 파병까지 하면서 중국을 긴장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김정은은 러시아와의 밀착을 최대한 활용해 전략적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중국에 대한 절대적 의존에서 벗어나려 한다. 1990년대에 덩샤오핑이 김일성에게 중국식 개혁개방을 따를 것을 설득하기 시작한 뒤 40년 가까이 북한은 ‘중국의 길’로 나아가기를 주저하고 거부했다. 이제 김정은은 푸틴과 손을 잡고 ‘러시아의 길’로 가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중국은 점점 더 대담하게 중국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김정은이 주변 정세를 더 불안정하게 만들까 우려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북-중 냉기류는 1992년 한중수교나 2016~2017년 상황과 달리 근본적 갈등이 아니다. 중국에 현재의 ‘주요 모순’은 미국과의 대립과 패권 경쟁이다. 미-중 갈등 속에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훨씬 커졌다. 러시아와 함께 미국에 맞선다는 중국의 장기적 전략을 고려할 때, 북한이 무기와 병력을 제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우위를 유지하게 돕는 것은 미국의 패권을 흔드는 측면도 있다. 북한이 러시아로 급속히 기울면서 중국이 쥐고 있던 북한에 대한 절대적 영향력이 감소하는 것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중국은 북-러 밀착에 대해 반대도, 찬성도 하지 않는 애매한 태도를 유지할 것이다. 중국은 자국 경제 회복을 위해 유럽·미국 등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어 ‘북-중-러’ 구도로 보이지 않도록 거리를 두지만, 미국과의 ‘롱 게임’에서 러시아, 북한과 함께 간다는 전략도 바꾸지 않았다.



지금 북한은 중국이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를 준수하면서 북한 노동자들의 비자 발급을 늦추는 상황 등에 반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때문에 유엔 안보리에서 채택한 제재를 무시하라는 북한의 요구는 사실상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라는 뜻이다. 러시아는 이미 ‘북한 비핵화는 끝난 이야기’라며 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오랫동안 한반도 비핵화, 평화 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한반도 정책의 3대 원칙으로 강조해왔지만, 최근에는 ‘한반도 비핵화’ 발언이 사라졌다. 미-중 갈등 속에 한국이 미국, 일본과 군사협력을 강화하면서 ‘한·미·일’의 대중국 포위망을 공고화하는 만큼 중국도 북한 비핵화에서 멀어져 갈 것이다. 한국이 안보의 필요에 따라 미·일과 협력하더라도 최전선에서 앞장설 것인가, 중국과 외교의 여지를 남길 것인가가 극도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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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6월2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평양 5.1경기장에 들어서고 있다. 10만 평양 시민이 북한과 중국 국기를 흔들며 시 주석을 맞이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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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중국 모두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지만,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 북중관계의 지난 역사를 고려하면, 헤어질 수 없다는 마지노선도 분명하다. 중국의 최우선 순위는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지는 것을 막고, 북한 정권의 혼란스러운 붕괴를 막는 ‘한반도의 안정 유지’다. 한국이 북한을 흡수 통일해 주한미군이 중국과의 국경 가까이에 주둔하게 되는 상황에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한반도의 안정 유지’라는 중국의 절대적 목표에서 북한이 핵을 위험한 방식으로 사용하거나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을 억제하는 것은 한-중이 협력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한국이 허황된 북한 붕괴론이나 흡수통일론에 빠지지 않고, 북한이 위험한 도발과 핵 위협에 나서지 않도록 신중하게 억제하고 관리하는 것은 중국과의 외교에서 중요한 목표이자 접점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는 거꾸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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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2007~2008년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통일외교팀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세계와 외교에 대해 취재하고 쓰고 있다. ‘중국 딜레마’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보이지 않는 중국’ ‘롱게임’ 등의 책을 번역했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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