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모욕죄 법리 오해" 원심 파기
서울 서초구 대법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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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대화방에서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장을 비난한 조합원이 모욕죄로 기소됐지만,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았다. 조합원과 같은 입장의 회원들만 속한 채팅방에서 위원장의 불법 행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한 발언이라는 점을 인정한 판단이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모욕죄로 재판에 넘겨진 김모(75)씨에게 벌금 15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8일 돌려보냈다.
김씨는 2019년 12월부터 2020년 4월까지 경기 평택시의 지역주택조합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단체대화방에서 위원장 A씨를 비난하는 글을 13차례 게시해 모욕한 혐의를 받는다. 김씨는 A씨에 대해 "도적X" "흑심으로 가득한 무서운 양두구육의 탈" "법의 심판을 통해 능지처참" 등의 표현을 했다. 당시 비대위는 A씨가 조합원들에게 회계 관련 서류를 공개하지 않고, A씨 배우자가 대표로 있는 업체가 사업과 관련해 과도한 이익을 취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조직된 상태였다.
1심과 2심은 모두 김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구체적인 행태를 논리·객관적인 근거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굳이 기재할 필요 없는 모멸적 표현을 반복 사용해 비난했다"면서 "정당행위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는 형법상 모욕의 의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모욕죄를 판단할 때, 상대방 개인의 주관적 감정이나 기분이 나쁜지 등 명예감정을 침해할 만한 표현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당사자들의 관계, 해당 표현에 이르게 된 경위, 표현 방법 등 제반 사정에 비춰 상대방의 외부적 명예를 침해할 표현인지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김씨가 작성 경위에 대해 "비대위 회원들에게 피해자의 불법 사실 등을 널리 알리고 대응 방안을 설명하려는 취지였다"고 주장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해당 글은 A씨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나 감정이 담긴 경미한 수준의 추상적 표현 또는 무례한 표현이 담긴 글에 해당할 뿐"이라며 "외부적 명예를 침해할 표현이 포함된 글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이근아 기자 ga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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