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아 콤테의 개인전에 설치된 용암 카펫과 대리석 조각 연작. K&L 뮤지엄 |
미술관의 화이트큐브 전시장이 검고 붉게 변했다. 주변을 검게 태운 붉은 용암이 발밑에까지 흘러온 듯하다. 그을린 돌 위에는 죽은 물고기, 바닥엔 땅 밑에서 솟아오른 것 같은 털매머드의 상아 조각이 보인다. 활화산의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모든 생이 끝난 것 같지만 곳곳에서 나무와 벌새, 이구아나 같은 동식물 조각이 등장한다. 화산 지대에서 살아남은 생물을 표현한 것이다. 이들은 삶과 죽음, 파괴와 회복이 반복되는 자연의 섭리를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 보인다.
스위스 작가 클라우디아 콤테의 개인전 '재로부터의 부활: 재생의 이야기'가 오는 12월 28일까지 경기 과천 K&L 뮤지엄에서 열린다.
미술관 3개 층 전 층을 아우르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신작 조각과 대형 흙 벽화, 바닥에 카펫처럼 설치한 컴퓨터그래픽 작품이 하나의 작품처럼 공간을 구성한다. 이 같은 몰입형 설치 작업을 통해 관람객이 작품 속에서 인류세 시대의 복잡성과 역설을 경험할 수 있도록 꾸몄다는 설명이다. 이는 기후변화와 생태계 보존에 대한 작가의 탐구 결과다.
이번 전시의 핵심 작품이자 다른 작품들의 배경이 되는 용암 카펫은 3개 층이 계단식으로 연결된 미술관의 전시 공간에서 영감을 얻고 공간에 정교하게 맞춰 제작한 작품이다. 콤테는 "미술관 전시 공간의 형태를 보고 용암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말했다. 컴퓨터 3D 시뮬레이션을 통해 만든 그래픽 작업을 재활용 어망으로 만든 카펫에 인쇄한 것이다. 극사실적인 용암의 흐름을 나타냄으로써 활화산 지대의 자연경관과 문화, 환경에 대한 담론을 응축적으로 표현했다.
전시장 벽면의 흙으로 만든 벽화는 생동감 있는 곡선으로 용암의 빨강·주황으로 물든 바닥과는 상반된다. 'From Where We Rise'(2024)가 대표적이다. 형태적 요소는 자연에서 유래한 기하학적 문양을 재해석한 것으로 평화로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은 풍경과 잔잔한 물결을 떠올리게 한다. 용암 카펫과의 병치를 통해 작가는 창조와 파괴가 끊임없이 순환하는 자연의 생태학적 특성을 강조하는 한편 인간을 압도하는 지질학적 힘과 생태계 회복력 사이의 섬세한 균형을 이야기한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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