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감히’에 쓰인 ‘감’은 한자로 ‘敢’이다. 중국 갑골문에 새겨진 그림글자를 보면 사람이 맹수의 꼬리를 손으로 잡는 모습을 본떴다. 호랑이에게 살금살금 다가가 꼬리를 덥석 잡을 수 있을까? 아서라, 배가 부른 맹수라도 아량을 베풀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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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는 누구를 향하느냐에 따라 두가지 의미로 나뉜다. ‘어디서 감히’ ‘감히 뉘 앞이라고’에서처럼 상대방을 향해 쓰면 말이나 행동이 건방지고 주제넘고 ‘선을 넘었음’을 지적하는 말이 된다. 이 말을 쓰는 순간,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어버리고 얼굴은 굳어진다. 좁혀질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멀어지면서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입는다.
‘감히’라는 말은 신분제 사회 질서가 남긴 발자국이다. 점원이 손님에게, 학생이 선생에게, 평민이 귀족에게, 직원이 사장에게,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에게, 다시 말해 아랫것이 윗것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하면 이 말이 튀어나온다. ‘빈부귀천이 엄연히 있고, 말에도 위아래가 있는 법!’ 뼈다귀만 남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의 밑바닥에 신분제 사회 질서가 바위처럼 웅크리고 있음을 확인하는 발언이다.
하지만 ‘감히 한 말씀 올립니다’에서처럼 말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향해 쓰면 상황은 달라진다. ‘송구스럽습니다만’ ‘미천한 신분입니다만’ 정도의 공손함을 표하면서도, 기어이 발언을 하겠다는 뜻이 된다. ‘아랫것’인 줄 알지만 용기를 내어 말하는 것이다. 비난과 불이익을 무릅쓰고서라도 말하겠습니다!
‘감히’는 차별을 의식하되 차별에 맞선다. 사회가 망가지면 망가질수록 맹수의 꼬리를 잡아채듯이 ‘감히’를 무수하게 시도해야 한다. ‘감히’에 용기를 조금 보태면 ‘용감히’가 되나니, 감히 외쳐본다. ‘그만하라.’ 용감히 외쳐본다. ‘물러나라.’ 혹시 모르지, 호랑이가 잡힐지도.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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