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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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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목사는 정치 평론가, 예배당은 ‘극우 유튜브’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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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0월27일 개신교계 임의 단체인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 조직위원회’가 동성결혼 합법화와 차별금지법 제정의 반대를 촉구하며 연 서울광장 집회. 이날 집회에는 경찰 추산 23만명이 운집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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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나라 권력 영광



미국 정치 심장부에서 벌어지는 복음주의자들의 권력 게임



팀 앨버타 지음, 이은진 옮김 l 비아토르 l 3만8000원



도널드 트럼프의 입이 거칠어지고 있다. 지난달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후보 카멀라 해리스를 조금 앞서가는 모양새가 되자마자다. 해리스의 40년 전 맥도널드 근무 경력이 증명이 안 된다며 조롱 퍼포먼스를 벌이고, 아널드 파머의 성기 크기를 언급하거나, ‘그가 건드는 모든 것은 ○이 된다’ 식으로 질문해 청중의 입에서 욕을 이끌어내는 식이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사실 그러지 않으면 트럼프가 아니다. 그런 이를 대통령으로 뽑아 4년을 겪었고 탄핵까지 고민했던 미국은, 어쩌면 다시 트럼프를 선택할지도 모른다.



부동산 부자이면서 티브이(TV) 리얼리티 쇼에서 “당신은 해고야”라는 발언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트럼프가 2015년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을 때, 그가 대통령이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라 권력 영광’의 저자 팀 앨버타는 이런 극적인 변화를 일구어낸 뒷배가 ‘복음주의자’라고 말한다. 트럼프는 ‘백인 복음주의 유권자’ 표의 81%를 받았다. 이전에는 ‘둘 중 그나마 나은 쪽’에 표를 준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면, 트럼프 등장 이후로는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 ‘정치적 거래’ 대신 ‘신념적 지지자’가 되었다.



간음하고 거짓말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대신 혐오하며, 기본적인 성경을 읽는 법도 모르는(‘후서’를 ‘세컨드’ 대신 ‘투’로 읽었다) 그를 기독교인은 왜 지지할까. 책은 저자가 교회와 대학, 선거자금 모금 투어 등을 따라다니며 보고 들은 것을 분석해 서술하고 있다. 주기도문의 “아멘” 앞 문장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에게 영원히 있사옵나이다”에서 책 제목과 장의 이름이 나왔다.(1장 나라, 2장 권력, 3장 영광)



복음주의란 ‘좋은 소식’이란 뜻의 ‘복음’에서 유래한 말로, 가톨릭교도와 구별해 개혁파 프로테스탄트를 이르는 말이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복음화’한다는 신념을 공유하는 것 외에 성경·십자가 중심주의를 표방한다. 1980년대 보수화 분위기에서 나타난 모럴머조리티를 통해 정치적 성향을 띠는 운동으로 되어갔다. 현재는 ‘보수 기독교인’ ‘공화당을 지지하는 보수주의자’와 등치되어 쓰인다.



저자는 공화당 텃밭인 미시간주 브라이턴이라는 보수적인 백인 마을의 교회에서 자랐다. 목사 아버지는 2018년 젊은 목사 와이넌스에게 교회를 물려주었다. 2020년 “출애굽에 버금가는 대탈출”이 벌어졌다. 코로나19 시기 보건 당국의 권유대로 교회를 닫은 것에 교인들이 반발하며 빠져나간 것이었다. 같은 해 5월에는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뒤 또 한 번 대탈출이 벌어졌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인권운동에 대한 반대를 천명하라는 압박에 별다른 응대를 하지 않아서다. 2020년은 트럼프가 재선 운동을 하던 때로, 그가 불어넣은 코로나19에 대한 무수한 유언비어와 음모론은 ‘복음주의 교회’에 그대로 내리꽂혔고, 기독교인은 ‘너는 어느 쪽이냐’ 물으며 ‘극우’가 되어갔다.



와이넌스 목사는 교인을 잃는 것이 자신의 설교에 ‘국가’가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복음주의자는) 미국을 숭배하죠. 미국이 성경적 개념으로 세워졌다고 믿는 사람이 많아요.” 2021년 1월6일 가장 과격한 모습으로 드러난 트럼프 지지자들도 비슷한 말을 했다. “우리는 성경 혁명의 상속자이므로 혁명적인 국가다.”(조시 홀리 상원의원) 와이넌스의 교회를 떠나 교인들이 선택한 곳은 건너편 ‘부흥 중심의 교회’였다. 저자가 방문했을 때 교회에는 십자가는 보이지 않고 미국 국기만 나부꼈다. 연단 뒤 스크린에도, 나눠주는 책자에도 국기가 선명했다. 그곳 교회 목사는 마스크 착용 반대, 백신 의무 접종 반대 등을 분명히 했다.



공화당 지지를 피력하지 않으면 교인을 잃는 일은 미국 전체에서 벌어졌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과정은 빨랐다. 교인이 두 배로 늘고 헌금이 세 배로 늘자 목사들의 입은 더욱더 거칠어졌다. 목사들은 ‘정치 평론가’가 됐고 교회 예배당은 ‘폭스뉴스 스튜디오’가 되었다.



절박함의 배후에 시대가 있다. 교회의 인기가 줄어들었다. 1991년 미국인의 90%가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밝혔지만 30년 후 63%로 줄었다. 종교가 없다고 답한 사람은 5%에서 29%로 증가했다(퓨리서치센터). 2011~2016년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시기 인권운동의 신장 역시 복음주의자들의 위기감을 조장했다. “절박한 시기에는 (설사 좀 수치스럽더라도) 절박한 조치가 필요했다.”



나라 전체에선 기독교의 인기가 떨어지고, 기독교 안에서는 끈끈해진다. 1975년 미국인의 3분의 2 이상이 ‘교회를 대단히 신뢰한다’고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 임기 말에는 36%에 불과했다. 반대편에서 공화당 지지자의 61%가 미국 정부가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공식 선언하는 것을 지지한다. 복음주의자는 78%에 이르렀다. 미국의 복음주의자 의도대로라면 미국은 ‘신정 국가’가 되고 싶다. 그리고 그 국가의 수장은 트럼프다.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 빌 클린턴의 여성 문제로 그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던 ‘도덕적인’ 복음주의자들은, 2016년 ‘액세스 할리우드’ 테이프에서 여성을 모욕한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트럼프를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결함 있는 인물을 사용하는 전통을 잇는 새로운 인물”로 탈바꿈시켰던 것이다.



트럼프의 재선 패배 뒤, 이 모든 상황은 ‘로마의 박해를 당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와 같은 ‘탄압 국면’을 연출하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복음주의자들은 ‘미국 회복 투어’ 행사장에서 “우리는 지금 나라를 빼앗기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일어나야 합니다”라고 외친다. 코로나19 시기 “미국 정부가 예배할 권리를 박탈”당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도둑질당했다”고 말한다. 행사장은 트럼프식 유언비어와 극우 유튜버의 음모론 교환장이다. 매대의 책은 지금 사지 않으면 “금서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에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책의 후반부는 2023년 들어 교인을 회복한 와이넌스 교회 등 희망 섞인 전망으로 넘어가지만, 2024년의 미국은 ‘어게인 2016’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복음주의는 한국 극우 교회의 교과서 역할을 했다. 코로나 시절 방역 반대 시위를 벌인 보수 교회는 국민의힘의 원내대표를 뽑는 데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10월27일 전국에서 23만 명이 모인 것은 기독 단체가 주관하는 차별금지법 반대 혐오집회였다. 선거운동은 선거 때만 하지만, 매주 어떤 교회에서는 ‘극우 선거운동’ ‘혐오 집회’가 열린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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