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베이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김현성 | 작가
대한민국의 저출생은 혼인율 저하와 거의 동의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 신생아 중 혼외자녀의 비중은 겨우 2%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출산이 결혼 제도와 매우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회이고, 출산을 원하지만 결혼 제도에 종속되지 않은 이들에게는 사회가 그 어떤 경로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 닫힌 사회의 결말 중 하나가 한국 사회의 대책 없는 저출생 흐름이라고도 우리는 볼 수 있다.
최근 배우 정우성의 혼외자녀 출생 소식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당사자의 유명세도 한몫했지만, 최종적으로 자녀의 어머니인 모델 문가비와 서로 혼인하지 않기로 했다는 결정이 이 사건의 이슈화에 더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본다. 그만큼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전통적인 결혼제도의 위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태어난 아기에 대한 축복보다는 부모의 선택에 대한 비난에 집중한 반응이 제법 눈에 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이다.
지난 22일 출산 소식과 함께 아이와 찍은 사진을 올린 모델 문가비. 문가비 인스타그램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출산율이라는 수치와 상관없이, 세상을 새롭게 만나게 된 아기는 우선 축하와 함께 잘 자라야 한다는 축복을 받아야 함이 마땅하고, 이 아기가 잘 자랄 수 있게 사회가 보호를 해야 하며, 그 와중 미처 정리되지 않은 성인 남녀 간의 관계는 그 사이에서 폭력이나 위계에 의한 위력이 작동하지 않는 이상 양자의 합의하에 각자가 알아서 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법률이 보증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권장하는 상식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연예인이라는 사소한 사실 하나로 인해, 우리 사회의 보증과 시대가 권장하는 상식보다는 오늘치 도파민을 위한 비난과 사생활 파헤치기가 더 소중해지는 이들이 있는 듯하다. 한쪽에서는 이들이 결혼이라는 결말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점을 비난한다. 하지만 출산이라는 것이 결혼 제도에 반드시 구속되어야만 탄생할 수 있는 결실이 되는 사회는 이제 더 이상 유지가 불가능하다. 물론 생물학적 부모가 응당 가져야만 하는 책임이 있겠지만, 그 책임에 결혼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결국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한부모 가정을 결손가정으로 몰아붙이는 정도의 결론밖에는 다다르지 못한다.
실제로 우리가 이 지점에서 더 나아가 논의를 해야 하는 것은, 자녀가 있음으로써 발생할 수밖에 없는, 오랜 기간 지속되어야만 하는 상당한 양의 돌봄 노동과 이에 수반되는 가사 노동을 과연 이 책임 범위 내에서 어떻게 배분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유명 연예인은 가진 자원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배분도 쉽다. 자원을 활용하여 타인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명인의 사례 뒤에 숨은 수많은 평범한 이들의 사례는 이러한 방식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사례들처럼 여성이 돌봄 노동을 전담하고 남성은 양육비라는 경제적 지원에서 그치는 것은 결국 기존의 성역할이 분리만 된 상태로 그대로 유지되는 결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늘 이런 핵심적인 문제는 지나가기 일쑤다. 일각에서는 과거 당사자의 사회적 발언을 거론하며 ‘역시나 위선자’로 몰아가려 시도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생물학적 자녀에 대한 책임이 반드시 결혼이라는 제도하에서만 유지되는 것도 아니며, 당사자들 사이의 양육 조건은 내밀한 그들 사이의 합의로 이루어졌을 것이 분명하므로 제3자가 사생활의 영역이 확실한 이 부분에 굳이 돋보기를 들이댈 이유도 없다. 즉 이 내밀한 합의를 알더라도 굳이 비난할 이유가 없는 일이지만, 과거 누군가의 정치적 성향에 맞지 않는 사회적 발언을 했다고 해서 그의 위선성을 들춰내겠답시고 경찰관 행세를 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의 생각에는 밀과 가라지를 구별하듯 위선자를 구별하는 대단한 지혜인 양 느껴지겠지만 그저 세상을 새로 만난 아이를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인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빈한한 성품만을 드러내는 일이 되는 것이다.
낮은 출산율뿐만 아니라 높은 자살 통계 역시 출구가 없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주는 하나의 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유독 다양한 규제와 표준으로 개인의 선택을 옭아매는 측면이 있으며, 조금이라도 유명세가 있는 이에게는 더더욱 많은 제한이 가해진다. 이제 여기서부터라도 그만할 때가 됐다. 그저 축하해주면 될 일인 것을.
▶▶세상의 모든 책방, 한겨레에서 만나자 [세모책]
▶▶핫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