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박준의 마음 쓰기] (14)
일러스트=유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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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시작에서 완간까지 34년이라는 긴 시간이 담긴 대하소설. 바로 김주영 작가의 ‘객주’입니다. 1979년 6월부터 1984년 2월까지 신문에 연재한 이 작품은 완재 직후 아홉 권으로 출간됐고,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한 작품 속 주인공의 행적을 이어 그린 열 번째 책이 2013년에 나오며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객주’는 경상도 일대를 유랑하는 보부상을 중심인물로 내세워 조선 후기의 시대상과 인간 군상을 세밀하게 그려냅니다. 작가는 녹음기와 카메라를 들고 전국의 크고 작은 장터를 찾아다녔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숱한 이와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취재했고요. 오래전 읽은 ‘객주’를 다시 생각한 계기는 제가 지금 머물며 글을 쓰고 있는 곳이 김주영 작가의 고향이자 객주문학관이 있는 경북 청송이라는 점입니다. 게다가 크고 작은 문화 행사가 유독 많은 가을을 지나며 마치 제가 보부상처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부상은 보상과 부상을 한데 부르는 말입니다. 보상은 봇짐, 즉 보자기를 이고 지며 장사하던 상인. 비단이나 종이, 패물, 수공예품 등 비교적 가벼운 물건을 다뤘으며 여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보상들은 시장이나 난전은 물론 방문 판매의 원조 격으로 대갓집 안채까지 넘나들었는데 이 까닭에 혼사의 중매에 나서는 일도 많았다 합니다.
반면 부상은 등짐, 주로 지게를 지고 다니는 상인입니다. 소금, 젓갈, 옹기, 가죽 등 비교적 무게가 나가는 물건을 취급했습니다. 이들의 손에는 오늘날 등산 스틱처럼 생긴 물미장이라는 작대기가 늘 쥐여 있었고 대나무를 잘게 쪼개 엮은 패랭이라는 모자를 썼습니다. 두 동그란 목화 뭉치가 달린 이 모자는 조선을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보부상처럼 짐을 가득 진 것은 아니지만 저는 오늘 하루만 해도 참 먼 길을 지나야 했습니다. 구미에서 시작한 일정이 경산을 지나 청송까지 이어졌습니다. 저녁이 돼서야 이곳에 도착했고 내일은 새벽부터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탓에 아쉽지만 객주문학관은 가지 못했습니다. 주왕산국립공원의 단풍도 예년에 비해 늦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청송을 찾은 보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먹어본 음식 덕분입니다.
식당 메뉴판에 큼직하게 적힌 ‘사고디’. 이 낯선 글자를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는 제게 식당에 동행한 분들은 사고디가 다슬기의 경북 방언임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러고는 한번 맛을 보라며 주문해 줬습니다. 혼자였다면 시도하지 않았을 제 나름의 모험이기에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얼마 후 나온 사고디 냉국. 빙수처럼 살얼음과 고명이 수북이 쌓여 있었는데 무엇보다 푸른 옥빛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슬기와 다슬기 우린 물을 활용한 오이냉국이라 말할 수 있겠으나 이런 정의만으로는 그 담백하고 깊은 맛, 그리고 영롱한 빛깔을 담아내지 못합니다.
음식과 이에 얽힌 저마다의 이야기 덕분에 식사 자리는 마치 다슬기를 주식으로 삼는 반딧불이처럼 빛났습니다. 이 세상에는 내가 아직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있다는 사실, 물론 이보다 설레는 일은 내가 처음 만나야 할 다정한 타인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누구든 어디에 있든 말입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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