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무능한 아마추어가 정권을 잡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우린 지금 최악의 상황들을 골라서 경험하고 있다.
외교 안보 문외한 윤석열 대통령은 '물컵 외교'를 발명했다. 실패한 미국의 대북 정책 '전략적 인내'의 '윤석열 버전'이다. 상대가 물컵 절반을 채우길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외교. 북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북한을 비난하면 저절로 일이 해결될 것이라 믿는 사고.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다는 건 평범한 진리에 속한다. 아인슈타인은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걸 '미친 짓'이라 정의했다.
문제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어떻게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지 윤석열 정부가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염소를 노려보는 것으로 염소를 죽이려던 미국의 초능력 부대원들처럼, 윤 대통령이 빈 물컵을 노려보고 있는 사이에 벌어진 일들을 열거해 보자.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론'으로 한국과 결별을 선언했고, 러시아와 동맹을 강화했다. 특수부대를 이역만리 전선에 파병하고 그 대가로 무기 기술을 전수받을 것이다. 풍계리 핵실험장에선 7차 핵실험 준비가 끝났다는 정보 당국의 보고가 이어지고, 대통령실 상공엔 오물 풍선이 날아다닌다.
바이든만 바라보고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내달려온 윤 대통령이 마주한 현실은 어떤가. '친구' 기시다 전 총리는 불명예퇴진했고, 자민당 정권은 총선에서 참패했다. 미국에선 '러우 전쟁을 끝내겠다', '김정은과 잘 지내겠다'는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돼 김정은과 만나겠다고 하면 윤 대통령은 달려가서 말릴 실력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뉴라이트와 호전광들에 둘러인 대통령의 외교 안보 철학이 '제로' 상태니, 외교 안보의 기본이 돼야 할 정보 기관들이 점점 망가지고 있다.
북한군 러시아 파병설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현지 언론에서 먼저 나왔다. 북한 병사들이 러시아에 갔다는 사실을 일부 보수 언론에 간간 흘리던 우리 정보 당국은 지난 18일 국정원 명의로 북한이 러시아에 특수부대를 파병했다는 내용의 상세한 보도자료를 뿌렸다. 하지만 미국과 나토는 같은 날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의 공식 반응은 정작 닷새 후인 23일에야 나왔다.
닷새간의 온도차는 꽤 많은 걸 설명해 준다. 한국과 미국의 정보 평가 내지는 공개 시점에 대한 합치된 견해가 없었다는 걸 추정케 한다. 국방부에서조차 국정원의 발표 하루 전날인 17일 "우리는 (북한이) 병력이 아니라 인력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있다"(김선호 국방부 차관)고 말했다. 국방부와 국정원 사이에도 온도차가 있었다.
한미간 완전히 조율된 정보 평가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국정원이 팩트를 먼저 '지르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국정원이 보도자료를 내기 3일 전인 15일은 북한이 경의선과 동해선을 폭파 해체했다는 보도가 대대적으로 이뤄지면서 북한에 대한 비판 여론이 증가하고 있을 때였다. 국회 국정감사 진행되면서 온통 언론에선 명태균, 김건희 이름이 도배되고 있었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18일 갑자기 NSC가 긴급 회의가 열렸고, 이번 정보 공개를 국정원이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즉, 대통령실과 국정원이 '북한군 러시아 파병설' 공개 결정의 중심에 있었다는 말이다.
어설프기 짝이 없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증거라고 공개한 위성 사진에는 정보를 제공한 민간 업체의 워터마크가 그대로 찍혀 있다. 김정은 몸무게가 140킬로그램을 넘었다느니, 김정은이 새로운 당뇨 치료제를 구하고 있는 중이라느니 하는 민감한 '휴민트' 정보들을 마구잡이로 공개한다. 북한 최고 통치자의 신변 상황 변화를 알 수 있는 사람이 '남한 요원'에 포섭돼 있다고 광고하는 꼴이다. '러우 전쟁'에 공식적으로 심문조를 파견하겠다며 "절호의 기회" 운운한 건 어떤가. '기밀'이란 개념이 아예 없으니 이쯤되면 국가정보원이 아니라 국가전쟁홍보원인가 싶을 정도다. 획득된 정보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있으니, 1년 농사 지어 수확한 나락을 새 모이로 주는 셈이다. 과연 국방 안보 정책이란 게 있긴 한 건가.
과거엔 국정원이 본연의 임무를 팽개치고 내국인과 야당 정치인을 사찰해 문제를 일으켰다면, 윤석열 정부 들어 국정원은 본연의 임무에서조차 무능함을 사사건건 노출하고 있다. 검사 출신 국정원 기조실장이 돌연 사퇴한 데 이어 파벌 싸움이 외부로 적나라하게 중계된 건 서막에 불과했다. 지난 1월 조태용 국정원장 체제가 출범한 이후에도 국정원 요원이 미국의 북한 전문가(수미 테리)를 상대로 공작을 벌이다 미 수사 당국에 사진까지 찍히는 망신을 당했다. 최근엔 국정원 고위 간부가 공작비를 유용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군 정보사령부가 중국 정보 요원에 돈을 받고 기밀을 빼돌리는 일도 발생했다.
국민의힘은 '북한이 저지른 일이니 북한을 비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사태가 이지경까지 온 데 대해 정부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 앞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열창하고 있을 때, 김정은이 "존경하는 푸틴 동지"를 외치며 술을 따라줄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면 무능한 것이다. '물컵 전략'은 한반도 주변 정세를 악화일로로 내몰고 있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어떻게 더 위험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이 외교 안보에 아무런 경험이 없으니, 극우 세력에 휘둘린다. 평생 '윗선'의 말만 들어온 관료 출신을 국정원장에 앉히고, 대통령실 외교 안보 컨트롤타워에는 '즉강끝'을 외치던 호전적 인사를 들였다. 뉴라이트 성향의 안보실 1차장은 미국 민주당의 해리스 부통령이 만약 대통령에 당선되면 "제가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극우세력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 안보 정책에 '선악'의 잣대를 댄다는 것이다. 북한은 '악'이고 침략자 러시아도 '악'이라는 이런 인식은 20여년 전 미국의 대외 정책을 주도했던 종교적 네오콘들과 유사하다.
이런 인물들 틈에 껴 있는 대통령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대책이라고 내놓은 게 "우크라이나 살상 무기 지원 검토"다. <조선일보>의 이데올로그 김대중 씨조차 살상 무기 지원에 반대하는 칼럼을 쓰고 있는 판이다. 살상무기 지원은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는 일이다. 우크라이나 편에 서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는 일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다. '비살상 무기 지원 원칙'은 한국이 북한에 대해 우위에 서 있는 '명분'이다.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위협에 처한 것도 아닌데, 이 원칙마저 버린다면 '러우 전쟁' 이후 외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 문제나 정치 문제에선 무능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교 안보 문제에서 무능하면 국민의 생명이 위험해진다. '북괴군을 폭격해 심리전에 써먹자'는 말에 맞장구 치는 국가안보실장, 이 장난같은 현실이 지금 대통령 참모들의 수준이다.
지금 호전적 참모들에 둘러싸여 폭주하고 있는 무능력한 대통령을 제어하는 일이 시급하다.
▲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국군의날 시가행진 중 세종대왕상 앞 관람 무대에서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 2024.10.1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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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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