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일, 밸푸어 선언 생성
벨푸어 선언문. (출처: Shmuel Ben David (Davidov) Israeli, born Bulgaria. 1884-1927 עברית: שמואל בן דוד (דודוב), יליד בולגריה, פעל בארץ-ישראל , 1927-1884., 이미지(1917),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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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17년 11월 2일, 영국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가 로스차일드 백작에게 보낸 편지 한 통이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 신호탄이 됐다. 이것이 유명한 '밸푸어 선언'이다.
밸푸어 선언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건설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선언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발표됐으며, 당시 영국은 오스만제국으로부터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었다.
벨푸어 선언은 그동안 고대 유대인의 땅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독립 국가를 세우려는 시온주의 운동에 큰 힘을 실어줬다. 유대인들은 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고, 이는 이후 이스라엘 건국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하지만 밸푸어 선언은 동시에 중동 지역의 복잡한 역사를 시작하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팔레스타인에는 이미 아랍인들이 살고 있었고, 밸푸어 선언은 이들의 권리를 무시한 채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후 아랍-이스라엘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이 됐다.
밸푸어 선언은 국제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 지역의 지배권을 둘러싼 열강들의 경쟁이 심화했고, 밸푸어 선언은 이러한 경쟁의 한 축을 이뤘다. 또한 밸푸어 선언은 식민지 해방 운동에 영향을 미치며 자결권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는 특히 팔레스타인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히며, 아랍 세계와 이스라엘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된다.
영국의 역사적 책임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밸푸어 선언을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부당한 대우의 시작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밸푸어 선언을 통해 이루어진 이스라엘 국가 건설의 정당성에 대한 논쟁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밸푸어 선언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오늘날까지도 중동 지역의 평화를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 중 하나로 남아 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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