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인도는 특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며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관계가 발전해 나가고 있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인도가 전쟁 종식 협상을 도울 수 있다."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가 수장이 최근 동시에 인도를 향해 구애했다. 미국, 유럽 등 서방 국가의 압박에도 러시아와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모디 총리를 설득하기 위한 행보다. '인구 대국'이자 '경제 대국'인 인도는 전쟁이 진행 중인 지난 2년 9개월여간 서방 국가의 각종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러시아에 반도체 등 기술력이 진입하는 루트로 활용됐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에서 만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사진 왼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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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만난 모디 "평화롭게 전쟁 해결돼야"
모디 총리는 최근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대면했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방러한 모디 총리를 향해 푸틴 대통령은 크게 미소 짓고 악수, 포옹하며 반기는 모습을 보였다. 모디 총리는 우정을 표한 푸틴 대통령에 감사하다면서 협력이 확대되고 BRICS가 발전하고 있는 점에 대해 극찬했다.

동시에 모디 총리는 이 자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발언도 내놨다. 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발생하는 지속적인 갈등에 대해 끊임없이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며 "평화적인 수단을 통해 이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기에 평화와 안정이 자리하길 바란다"며 "인도는 가능한 한 모든 지원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모디 총리의 이러한 발언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양측과 모두 대화를 나누고 있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모디 총리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의 핵심 동맹국으로 남아있는 상태다. 그동안 미국, 유럽연합(EU)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푸틴 대통령과 회동하는 등 친분을 이어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EU가 원유 수입을 중단하자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매입했고, 미국·EU의 고위관계자가 직접 인도를 방문해 러시아와의 밀월을 중단하라고 압박했으나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상태다.

지난 8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만난 볼리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사진 오른쪽)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이미지출처=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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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인도 매체인 타임스오브인디아와의 인터뷰에서 인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모디는 인구, 경제, 영향력 측면에서 거대한 국가인 인도의 총리"라며 "그러한 국가는 그저 전쟁 종식에 '관심이 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모디 정부가 러시아의 경제와 저렴한 에너지 자원, 방위 산업 단지를 막아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푸틴에 AI 반도체 가져다주는 인도 제약사…러 제재에 수익↑
이처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모디 총리 설득 전에 나서면서 인도가 러시아를 어떻게 돕고 있는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인도가 제재를 뚫고 러시아로 수출하는 대표적인 제품 중 하나가 바로 반도체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은 인도의 한 제약회사가 러시아의 인공지능(AI) 반도체 공급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로 최첨단 반도체가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이러한 시도에도 허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뭄바이에 본사가 있는 인도 제약회사 슈레야라이프사이언스는 지난 4~8월 중 델테크놀로지스의 최첨단 서버 1111대를 구입해 러시아로 보냈다. 슈레야가 직접 매입해 러시아로 수출한 델 파워엣지 XE9680은 엔비디아, AMD의 AI 특화 최첨단 프로세서를 보유하고 있는 서버다. 이 중 일부는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반도체인 H100가 장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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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레야는 대부분 델의 서버를 말레이시아에서 매입하고, 이후 이를 러시아로 수출했다. 올해 1~8월 중 델의 서버 1400대 이상이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로 수출됐고, 같은 기간 슈레야가 러시아로 1100대 이상을 또다시 수출했다는 것이다. 러시아로 수출된 델 서버 규모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3억달러(약 4178억원) 수준이다. 블룸버그는 슈레야 측에 인터뷰 요청을 하고 사무실을 방문했으나 관련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델과 엔비디아, AMD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한 2022년 2월 이후 러시아에 제품을 판매하거나 수출하는 것을 통제하고 있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1995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설립된 뒤 2001년 8월 인도 타다그룹에 인수된 슈레야는 인슐린, 항생제, 위장약 등 제네릭의약품을 위한 제조 공장을 보유한 회사다. 하지만 2022년부터 IT기기 운송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인도 제약회사가 러시아로 AI 반도체를 유통하는 창구가 된 건 이 회사의 재정적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러시아 연계 사업을 했던 슈레야는 2014~2015년 크림반도 합병 사태로 큰 손실을 보았고 그 전후로 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자본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후 슈레야는 계속해서 러시아 금융기관의 도움으로 대출 상환 시점을 미뤄왔다. AI 반도체를 유통하고 IT기기 운송 사업을 시작한 시점도 이와 맞물린다는 것이 블룸버그의 분석이다. 슈레야는 2022년 9월 러시아 무역 회사인 랜프린트에 컴퓨터 하드웨어를 수출했다. 해당 무역 회사는 이후 미국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슈레야 사례로 볼 때 인도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활용해 수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군사용으로도 사용 가능한 최첨단 기술에 러시아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서방 정부가 노력하고 있는 것에 대한 허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쟁이 장기화하자 슈레야가 최첨단 기술 수출 사업으로 큰 수익을 거두고 있다"고 전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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