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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3 (일)

“태어나 보니 양반, 머슴…누가 정했나 염병할 신분”…심금 울리는 이날치의 운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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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14∼2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서 신작 ‘이날치전’ 선보여

조선 후기 8명창 이경숙의 삶 조명…양반집 머슴으로 태어나 줄광대와 고수 거쳐 명창 반열 올라

줄광대 시절 ‘날쌔게 줄을 잘 탄다’고 해서 ‘이날치’로 불려

“드라마 ‘정년이’보다 더 깊이 있는 소리 감상할 수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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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보니 양반/ 태어나 보니 머슴/ 태어나 보니 첩실/ 태어나 보니 백정/ 태어나 보니 무당/ 누가 정했나 염병할 신분/ 누가 없앨까 염병할 신분/ 누가 누가 없애나 염병할 신분/ (중략) /그 지랄염병하는 신분!/ 양반의 마음을 빼앗고 훔치는 광대가 되어 끊어내 보겠다!/ (중략) / 백성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광대가 되어 보겠다!…”

31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국립창극단 연습실. 창극 ‘이날치전’에서 이날치 역을 맡은 국립창극단 김수인의 소리가 심금을 울렸다. 신분제가 흔들리던 조선 후기, 양반집 머슴으로 태어나 줄을 타는 광대였던 이날치가 ‘백성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소리꾼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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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이날치전’에서 이날치 역을 맡은 국립창극단 소리꾼 김수인(왼쪽)과 이광복. 국립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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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은 14∼2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조선 후기 8대 명창 중 한 명인 이경숙(1820-1892)의 삶을 조명한 창작극 ‘이날치전’을 선보인다. 머슴으로 태어났지만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 줄광대와 고수를 거쳐 조선 최고의 명창으로 거듭난 이경숙의 삶이 극적으로 펼쳐진다. ‘날치’란 별명은 줄광대였던 시절 ‘날쌔게 줄을 잘 탄다’고 해서 붙여졌다.

국립창극단은 이경숙의 행적을 기록한 사료가 많지 않은 탓에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팩션 창극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극본을 쓴 윤석미 작가는 이날 인터뷰에서 “사료가 많지 않아 고민하다가 새로운 이날치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극본을 썼다”며 “이날치가 양반계급이 무너져 내리는 시기에 머슴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예인의 길을 가면 신분을 바꿀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진 인물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날치가 죽기 살기로 해내는 모습이 지금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이날치 역은 김수인과 이광복이 번갈아 맡는다. 둘은 이날치를 연기하는 것에 부담감을 내비치면서도 영광스럽다고 했다. 이광복은 “이날치가 새소리를 내면 실제로 새가 날아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소리의 이면을 잘 표현했기 때문에 이런 속설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며 “이날치 명창을 감히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소리의 이면을 깊이 생각하면서 고집스럽고 힘 있는 소리로 우리 전통소리의 정수를 표현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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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치 역을 맡은 김수인의 연습 장면. 국립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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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치 역을 맡은 이광복의 연습 장면. 국립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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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인은 “전설과도 같은 분을 제가 감히 연기하게 돼 영광스럽다”며 “이날치 명창의 시대를 그대로 옮기면 사극이 되겠지만, 지금을 사는 이날치를 연기하면 현실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치 삶의 여정에 따라 줄타기와 풍물, 탈춤, 사자춤 등 다양한 전통연희 무대가 마련된다. 연출을 맡은 정종임 창작집단 ‘타루’ 예술감독은 “판소리를 중심으로 우리 전통예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도록 신명나는 놀이판을 펼치겠다”고 했다. 특히 명맥이 끊기다시피 해 만나보기 어려운 ‘줄타기’를 첫 장면에 배치하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판소리의 주요 눈대목이 두루 담겨 전통 소리의 매력도 물씬 느낄 수 있다. 극 중 명창들이 소리 실력을 겨루기도 한다. 정 감독은 “한때는 스승이었지만 라이벌(경쟁자)이 된 박만순 명창과 이날치가 같은 대목을 불러 겨루는 장면에서 랩 배틀처럼 서로 소리를 주거니 받거니 한다”며 “전통 판소리에는 이런 형식이 없지만 이번에 한번 만들어 봤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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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이날치전’과 관련한 기자간담회에서 정종임 연출이 얘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광복, 윤석미 작가, 유은선 국립창극단 단장, 정종임 연출, 김수인. 국립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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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선 국립창극단 단장은 “(국극 여성 배우들의 삶을 그린 tvN 드라마) ‘정년이’를 본방사수하고 있다. 이 드라마로 인해 창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아 고맙다”며 “‘이날치전’은 재미에 더해 깊이 있는 예술성까지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장담한다”고 말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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