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신주쿠에 있는 마약 중독자 재활공동체 ‘일본 다르크’ 전경. 지난 9월 20일 이곳을 찾았다. 도쿄|김송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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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중독 치유 대명사, 일본 다르크
지난 9월20일 일본 도쿄의 대표적 번화가인 신주쿠에서 도보로 20분 떨어진 한 주택가. 구글 지도에 ‘일본 다르크’를 검색해 도착한 3층짜리 건물 입구에는 ‘DARC(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약물중독재활센터)’라고 적힌 간판이 걸려 있었다. 한국에선 중독 재활시설들이 혐오시설로 받아들여지는 탓에 공식 명칭에서 ‘중독’을 빼거나 간판을 내세우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1층 자판기 앞에 모여 왁자지껄 웃던 입소자들은 주변 눈치를 보거나 건물에 드나드는 것을 주저하지도 않았다.
일본에는 총 94개의 다르크 시설이 운영 중이다. 1985년 마약에 중독됐다 회복한 당사자인 곤도 쓰네오가 도쿄에 설립한 이후 일본 전역으로 확장했다. 한국에도 2012년 일본 다르크와 협약을 맺은 서울 다르크가 처음 문을 연 다음 경기·인천·김해 등에 잇따라 다르크가 생겼다. 한국의 마약 중독자나 재활 필요자가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 다르크는 단 한 곳만 남았다.
일본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마약 중독 회복 효과를 입증한 다르크의 운영 상황을 이틀간 살펴봤다.
한 건물 내에서 ‘원스탑 지원’…“재활 효과 체감”
일본 도쿄 ‘일본 다르크’에서 지난 9월20일 만난 입소자 렌(가명)이 다르크 입소 계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도쿄|유경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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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풍경부터 달랐다. 주거시설과 프로그램 활동이 한 공간에서 이뤄지던 한국의 ‘경기도 다르크’와 달리 이곳 일본 도쿄의 ‘일본 다르크’는 입소자들의 주거공간이 10여㎞ 떨어진 도쿄 시내 곳곳에 따로 마련됐다. 3층에서 만난 입소자 렌(52·가명)도 매일 대중교통으로 이곳을 찾아 프로그램에 참여한다고 했다. 일본 다르크 주거시설을 이용하는 이는 약 15명, 자기 집에 살며 낮 시간대만 다르크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이들은 40여명이었다.
이날 렌을 비롯한 이용자 10여명은 회의실에 모여 회복 12단계를 다룬 교재를 낭독하고 있었다. 일일 사회를 맡은 렌은 30세 때 처음 각성제 투약을 시작해 2번 수감됐다고 했다. 일본 다르크는 렌이 3번째로 찾은 재활시설이다. 2010년 ‘시즈오카 다르크’에서 생활하며 9년 동안 ‘단약’에 성공했던 그는 재발한 뒤 ‘혼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시 다르크를 찾았다. 렌은 “다르크에서 같은 문제를 회복하려는 멤버들과 얘기하다 보면 공감할 수 있고, 왜 각성제를 투약했는지 근본 원인을 돌아보게 된다”며 “‘다시는 약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은 오히려 불안을 키워 재발하는 악순환이 생기는데 다르크에선 누구도 서약을 강요하지 않아 재활 효과가 훨씬 크다”고 말했다.
약물 중독자만 모인 한국과 달리 이곳에는 약물·알코올·도박 중독자가 한데 모여 있었다. 도박 중독으로 어려움을 겪은 다케시(40·가명)는 “처음엔 다른 유형의 중독자들과 같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거북했다”면서도 “지내다 보니 약물이든 도박이든 대상만 다를 뿐이지, 무언가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모두 같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렇기에 서로 더 위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도쿄 ‘일본다르크’ 건물 입구에 ‘다르크’와 ‘아파리’ 간판이 걸려있다. 지난 9월20일 이곳을 찾았다. 도쿄|김송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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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층에는 ‘APARI(아파리·아시아 태평양지역 중독연구소)’ 사무실과 아파리 클리닉이 각각 자리했다. 다르크가 중독자들의 자조공동체라면, 아파리는 이들이 전문가 집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비영리법인이다. 2000년 설립된 아파리는 법률·의료·복지 전문가들이 각각의 영역에서 중독자들을 돕는다. ‘원스톱 지원’을 제공한다. 중독자 한 명이 치료·자조·법률자문을 위해 서로 다른 곳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2층 클리닉에는 의료진 4명이 상주한다. 여느 병원처럼 접수대와 진료실도 있지만, 성소수자 중독자들과 여성 중독자들이 각각 모일 공간을 따로 마련한 것이 눈에 띄었다. 주를 이루는 남성 중독자들 외에도 다양한 젠더의 중독자들이 좀 더 편하게 모이도록 신경을 쓴 듯했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두 방에선 밝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일본 도쿄 ‘일본 다르크’ 입소자들이 지내는 거주공간. 도쿄|김송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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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 탈피한 역피라미드가 핵심”
회복 당사자 요우지 미우라가 지난 9월 21일 일본 도쿄 다르크 거주공간에서 다르크를 소개하고 있다. 도쿄|김송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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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크를 생각할 때 역피라미드를 떠올려야 해요. 먼저 왔다고 더 잘난 게 아니라 나중에 들어온 막내를 지지해주는 역할을 해야죠.”
회복 당사자 미우라 요우지(61)는 1994년 일본 내 7번째로 만들어진 오키나와 다르크 설립 당시부터 참여한 고참이다. 일본 다르크 대외협력 업무를 맡은 그는 다르크의 핵심은 ‘역피라미드 구조’라고 거듭 말했다. 단약을 먼저 시작했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라거나 완전히 회복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하고 항상 겸손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입소자들끼리 서로 동등하게 지지하는 것을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다르크가 어려움을 겪은 주된 이유는 시설장 1인 체제 때문이다. 한국도 시설장은 회복 당사자가 맡았다. 체계적인 시스템이 보편적인 철학 없이 시설장 한 명의 지휘대로 운영한다. 시설장은 과도한 부담과 위계가 동시에 주어진다. 시설 운영 업무부터 중독자 관리까지 한 명이 맡게 되니 업무 과부하에 걸린다. 다르크 내 악습이나 부패가 생기는 것을 막을 관리·감독이 부재했다.
미우라가 강조한 ‘역피라미드 구조’는 한국의 시행착오를 막을 방법으로 보였다. 미우라는 “일본에서도 한국 다르크와 비슷한 문제가 있던 곳들을 폐쇄한 경험이 있고 관련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며 “일본에선 하나의 다르크를 신설할 때 다르크 최소 3곳에서 ‘운영자를 신뢰할 수 있다’는 추천장을 받아 설립하도록 한다”고 했다. 한 시설 안에 스태프 여러 명이 운영을 도맡을 수 있도록 스태프 교육을 철저히 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른 지역의 다르크를 돌아보며 연수를 받은 뒤 ‘다르크 상담 자격증’을 발급하거나 JCCA(일본 가톨릭 중독 협회) 등 외부 단체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연수를 받도록 하기도 한다.
스태프 교육 책자를 보면 일본 다르크가 약 40년간 어떤 경험을 축적해왔는지 엿볼 수 있었다. 교육은 ‘수사기관으로부터 입소자 문의 전화가 왔을 때 대응 방법’ ‘지역주민들과 있었던 에피소드 및 배려 방법’ ‘입소자 개인정보 보호 방법’ 등 다양한 상황에 대한 대응법을 아우른다. 미우라는 “일본 지역사회에서도 다르크 신설을 반대하는 일이 있었다”며 “약물 중독도 노력하면 치료·개선이 가능하다고 주민들에게 설득하는 동시에 실제로 회복된 사람들을 직접 보여주며 지역사회의 신뢰를 얻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엄벌주의·분절된 정부 대책은 여전한 과제
지난 9월20일 일본 도쿄 아파리 사무실 한쪽에 다르크 설립자 곤도 쓰네오의 사진이 놓여있다. 도쿄|유경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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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0년에 걸쳐 전국에 자리 잡은 일본 다르크도 여러 과제에 직면해 있다. 회복 당사자들 중에서 다르크 스태프로 일할 인력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원활한 운영을 위해 엄격한 기준으로 운영진을 뽑아야 하는데 절대적인 회복자 수가 적다 보니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간 다르크를 이끌어왔던 설립자 곤도가 숨진 후 다음 세대들이 다르크를 어떤 모습으로 이끌어갈지도 미지수다. 한국처럼 치료보다 엄벌로 투약사범을 대하려는 기조도 걸림돌이다. 미우라는 “법무성과 후생노동성 양쪽 부처가 서로 경쟁하듯이 검거 실적 올리기에만 바쁘다”며 “경찰들은 다르크에서 일하는 스태프든 이용자든 ‘결국 다 범죄자’라는 관점에서 불심검문을 하기도 한다. 다르크에서 몇십년을 일했어도 마약 투약 이력이 있으니 소변검사를 하자고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부처들이 약물 중독에 대해 통일된 관점으로 대응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며 “여러 부처가 참여하는 하나의 팀을 만들고, 다르크처럼 회복 당사자들이 모인 조직도 참여하도록 해 통합적으로 관리하려고 노력해야만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경향신문 ‘다만 마약에서 구하소서’ 시리즈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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