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8000억원 규모의 국내 삼푸 시장에서 모다모다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상품으로 평가받는다. 10여 차례 사용하면 별도의 염색 없이 흰머리가 흑갈색으로 변한다. 폴리페놀이 주성분으로, 사과나 바나나가 공기 중에 노출되면 갈색으로 변(갈변·褐變)하는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배형진(53) 모다모다 대표는 “염색약의 대체재이자 탈모나 두피 손상 우려가 없는 세계 최초의 혁신 제품”이라고 자랑했다.
━
“생산량 늘려 달라” 항의받기도
시장 반응은 뜨거웠다. 2021년 8월 초 제품을 론칭하고 나서 5개월간 매출이 320억원, 수익은 130억원이었다. 롯데홈쇼핑에서는 5분 만에 20억원어치 판매라는 기록을 세웠다. 초당 16개가 팔렸다. 1시간 편성을 했는데 “모다모다입니다”라고 소개를 하고 하니 준비된 물량이 모두 소진됐다. 미국 아마존에서도 하루 만에 완판(완전 판매)을 기록했다.
“원료와 설비가 부족해 하루 최대 3000개를 생산하던 시절입니다. 대형마트에선 문을 열자마자 손님이 몰려드는 오픈런이 빚어지고, 온라인 몰도 30분 만에 매진됐어요. 회사로 찾아와 ‘왜 생산을 늘리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손님도 꽤 있었어요.”
대박의 단꿈을 꾸는가 싶었는데, 신제품 발표 20일 후 식품의약품안전처 소속 공무원 3명이 서울 송파구 석촌동 본사로 들이닥쳤다. 밤 11시까지 조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 ‘4개월간 제품 광고 중지’라는 행정명령이 날아왔다. “기능성 화장품으로 허가받은 제품이 아니어서 소비자가 오인할 수 있다”는 게 사유였다.
■
기업의 매출과 수익은 항상 우상향하는 게 아니다. 경기가 꺾이든,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든, 규제 장벽을 만나든 하루아침에 고꾸라질 때가 있다. 2021년 말 그대로 ‘혜성 같이 나타났던’ 모다모다가 그렇다. 불과 3~4개월 새 염모 샴푸의 대명사로 불렸으나 하루아침에 존재감이 약해졌다. 인체 유해성 논란이 불거지면서다. 하지만 배형진 모다모다 대표는 보란 듯이 새 제품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이번 ‘기업人사이드’에서는 회사 사옥까지 팔아가며 재기에 올인하는 젊은 경영인에 주목했다.
배형진 모다모다 대표가 거울을 바라보며 머리 감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스쿠터 타고 다니면서 10배 실적
모다모다의 출발엔 ‘맡았다 하면 10배’ 실적을 올렸던 제약 영업맨 배형진이 있다. 그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신풍제약에 취업했다. 평점 4.35, 복학 후엔 연거푸 1등을 하던 그를 눈여겨본 지도교수가 입사 추천을 해준 것. “미팅에서 만난 아내와 대학 3학년 때 결혼을 했어요. 곧바로 부양할 아이가 생겼고요. 공부하지 않으면 살길 찾기가 어려웠어요(웃음).”
신입사원 입문교육을 받는데 생물이나 화학 관련한 제약 전문용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수업은 듣고 있었지만 “완전히 ‘까막눈’”이었다. “테스트에 불합격하면 (직장을 소개해준) 교수님께 누가 될까 봐” 교육 기간 2주일 내내 거의 밤을 새워 가면서 공부했다. 신입사원 중 수료 성적 1등이었다.
경기도 성남지역에서 영업을 맡았다. 그는 월 2000만원이던 매출을 서너 달 후 2억원으로 올려놓았다. 비결은 간단(?)하다. “자동차를 버린 것”이란다.
“성남은 도시 지형이 굴곡이 심하고 도로 사정도 좋지 않아요. 자동차를 끌고 다니면 주차하는 데만 30분이 걸립니다. 그러면 해법은 나와 있잖아요? 자동차 대신 스쿠터를 타고 병·의원을 찾아다녔어요. 다른 사람이 5명 만나고 다닐 때 저는 10명, 20명 만날 수 있었어요. 가는 곳마다 약장을 채워주고, 재고 관리를 해주면서 환영받았지요.”
이런 식으로 부서가 바뀔 때마다 인상적인 영업 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사회 초년생이 아이 둘을 키우기엔 수입이 부족했다. 사업을 해볼 요량으로 사직서를 내고 다른 길을 찾기도 했다. 그때마다 “형진이 어디 있냐”며 고참들이 다시 불렀다. 사표 내고 재입사하기를 세 번 반복했다.
모다모다 샴푸 사용 전후를 비교한 사진. 사진 모다모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용기 개발 기간 1년, 금형에만 10억 투자
그러다 의약품 도매회사 ‘서화’를 차렸다. 짧은 시간에 제법 자리를 잡았다. 이후 이해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좌교수와 함께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염모제 활성화 방안’ 사업에 응모하면서 모다모다 사업이 첫발을 뗐다.
이즈음 정부는 염모제와 탈염·탈색제, 탈모방지제 등이 의약외품(치약이냐 손 소독제처럼 위생이나 질병 예방을 위한 상품)에서 기능성 화장품으로 전환했다. 기존의 까다로운 규제를 풀어 신제품 개발을 유도하고, 시장을 확대해 보자는 구상이었던 것. 이때가 2017년, 배 대표는 ‘비에이치랩’(현 모다바이오)이라는 법인을 새로 만들었다.
“오랫동안 헬스클럽 사우나에 다녔는데 새치 때문에 고민하는 어르신들을 많이 뵀어요. 셀프 염색하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사우나에서 시장조사를 한 셈이지요.”
시장에 내놓기까지는 4년이 넘게 걸렸다. 신제품 연구개발에 투자한 금액은 누적 45억원가량. 서화의 당시 연 매출은 100억원 남짓이었다. 갓 창업한 중소기업이 해마다 10억원대 자금을 투입한 것.
모다모다는 출시하자마자 화제였다. 특히 중장년층에게 인기를 끌면서 사재기까지 등장했다. 미국·일본으로 수출도 시작했다. 2022년 7월엔 세계 최고 권위의 뷰티 시상식 ‘코스모프로프’에서 우승했다. 효능과 기술, 안전성, 디자인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히트 행진을 하는 와중에 THB의 위해성 논란이 확대됐다. 식약처는 2021년 말 모다모다 샴푸에 들어간 ‘1,2,4-트리하이드록시벤젠(THB)에 대해 사용금지를 행정 예고했다. THB에 대해 잠재적 유전독성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 유럽 소비자안전성과학위원회(SCCS)에서 사용을 금지한 게 발단이었다. 과학계는 “낡은 규제가 신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대표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슈가 커지면서 배 대표는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출석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맞섰지만 소용없었다.
배형진 모다모다 대표가 지난 2022년 10월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
매출이 하루아침에 급락했다. “한순간에 지옥에 떨어진 느낌, 사형 선고받은 기분이었지요. 식약처와 소비자단체의 최종 결론은 ‘독성이 있다는 걸 배제할 수 없다’였습니다. 미국 식품의약국 화장품원료검토위원회(CIR)는 ‘함량 2~3%면 독성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모다모다는 (THB 함량이) 소수점 아래여서 문제될 게 없거든요. 아쉬움이 크지요.”
━
‘날개 꺾은’ 식약처에 먼저 찾아갔다, 왜
그렇다고 모다모다 브랜드를 버릴 수는 없었다. 아니, 더 과감해졌다. 새 제품 개발과 브랜드 알리기에 몰두했다. 배우 이정재를 모델로 TV와 서울 시내버스 광고를 집행했다. 1년간 60억원이 들었다. 옥외 광고판도 유지했다. 지난 2년간 마케팅과 연구개발 투자에 쏟아부은 돈이 130억원이 넘는다. 자금 사정이 빠듯해지자 배 대표는 지난달 석촌동 사옥을 팔았다. 매각 대금은 110여 억원. 2008년 사업을 시작한 후 차근차근히 모아 직접 세운 건물이었다. 지금은 세 들어 산다. “모다모다에 올인했습니다. 이왕 시작했으니 제대로 꽃 피워야지요.”
그러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논란을 잠재우자, 그러려면 THB 성분을 빼야 한다-. 독성 규제를 통해 ‘날개를 꺾었던’ 식약처부터 찾아갔다. 안전 가이드라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문을 구했다.
(계속)
결국 모다모다는 안전 검증 기관·연구소에서 유전독성 테스트를 통과해 최근 3세대 제품을 선보였다. 배 대표는 “한밤 중 실험실 배수구가 거품으로 넘쳤다. 화장실 바닥을 청소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는 비화도 밝혔다.
망한 줄 알았던 ‘염모 샴푸’ 모다모다가 다시 기적을 일으킨 비결, 아래 링크를 통해 더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6835
〈기업人사이드-더 많은 기사를 만나보세요〉
누런 변기 닦다 망한 ‘청소왕’, 10원 깡통서 시작된 2조 대박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1868
250억 들인 특목고에 울다…청계천 '난닝구 멜빵남' 풍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3327
하루 1200만원 벌어도 망했다…순댓집 여사장 ‘오뚝이 신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8570
“여공 야반도주 지켜만 봤다”…‘866억 장갑’ 회장님의 회상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7579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