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율 가정 제각각…실적 뻥튀기 등 부작용 우려
당국, 가정치 낮춰 보수적 운용 → 중소형사 비명
금융당국이 올해 연말 결산부터 고(高)환급형 무·저해지보험 해지율 가정을 하향한다. 보험사들이 무·저해지보험 해지율 추정을 의도적으로 낙관해 부채를 축소하고 새 회계제도(IFRS17)상 수익성 지표인 보험계약서비스마진(CSM)을 부풀리는 등 회계 왜곡을 가져오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문제는 대형·중소형사 할 것 없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본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소형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향후 이어질 금리인하로 요구자본 증가가 예상되는 가운데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수익성과 건전성 지표가 모두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수적인 해지율 가정에 따라 보험소비자들은 소비자들 대로 보험료가 오르는 불이익을 당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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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4일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제4차 '보험개혁회의'를 열고 무·저해지보험에 내제된 리스크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도록 연말부터 신지급여력제도(K-ICS·킥스) 해지위험액을 정교화하는 개선안을 발표했다.
무·저해지보험은 보험계약을 해지할 때 지급하는 해지환급금이 아예 없거나 절반으로 낮추는 대신, 기존 대비 30%가량 싼 보험료를 장점으로 내세운 상품이다. 2015년 금융당국의 주도로 도입돼 지난해부터 불티나게 팔렸다. 올 1분기 보험업계 전체 장기보험 매출 중 무·저해지보험 비중이 50%를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관련기사 : 골칫덩이 무해지보험…싼 보험료에 혹한 금융당국 '책임론'(2021년 7월22일)
고환급형 무·저해지보험에 적용하는 대량해지 최적해지율 가정을 분리적용해 일부 낮추는 게 개선안 골자다. 고환급형 상품(해지시 순자산 증가상품) 1차년도 최적해지율에 0.6(1-40%)을 곱해 하향 충격을 주는 방식이다. 10년 내 환급률을 130%까지 끌어올린 무·저해지 단기납 종신보험이 주된 타겟이다. 이런 무·저해지보험을 많이 팔고 해지율을 낙관적으로 측정한 회사일수록 부정적 영향이 크다. 이에 비례해 CSM 감소 및 부채(최선추정부채·BEL) 증가 → 자본 감소 → 킥스 비율 하락 → 배당가능이익 감소로 연결될 전망이어서다.
해지위험액 산출 개선안 요약/표=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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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저해지 해지율, 뭐가 문제?
IFRS17 도입으로 주요 계리적 변수를 회사 자율로 하게 되면서 일부 사들이 무·저해지보험 해지율 가정을 높여 회계상 이익을 부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무·저해지보험이 많이 깨진다고 계산하면 보험사는 초기에 많은 이익(CSM)을 잡을 수 있고, 킥스와 연동해 쌓아야 할 책임준비금(부채)도 줄어든다. 해지율이 높으면 미래에 줄 보험금이 줄어 보험료도 낮출 수 있다.
납입 초반이나 중도 해지하면 보험사가 계약자에게 돌려줘야 할 돈이 '0'원에 가깝고 약속한 보험보장을 안 해줘도 되기 때문이다. 보험료만 챙기고 끝이라 손해 볼 게 없다. 계약자가 보험료를 다 낸 20~30년 뒤 해지해도 보험사에겐 이득이다. 받을 보험료는 다 받았는데 납입 후반부 돌려줄 환급금마저 적게 설정해 놔서다. 보험이 깨져 나갈 보험금도 없다. 이에 대량 해지 시 되레 순자산이 증가하는 사례도 발견됐다.
금융당국이 의구심을 품은 부분이다. 무·저해지보험을 판지 10년이 채 되지 않아 해지율을 계산할 충분한 경험통계가 쌓이지 않은 상태다. 데이터를 구축하지 못한 계약구간에서 가입자들이 보험을 빨리, 쉽게, 다 깰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냐는 것이다. 특히 해지율은 경제 및 사회 환경 변화에 따른 계약자 행동에 영향을 받아 금리위험이나 사망·장수·질병위험 등 보험위험보다 훨씬 예측하기 어렵다.
이제라도 해지율 가정을 더 보수적으로 조여야한다(하향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 이유다. 금융당국은 "향후 예상치 못한 해지 행태가 나타나면 보험사 건전성이 저하돼 장래 보험료 인상, 지급불능 등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실제 미국 펜 트리티(Penn Treaty)는 장기간병보험 판매 확대를 위해 무리하게 높은 예상해지율을 사용했다가 재무건전성이 악화돼 2017년 파산했다.
중·소형사 "이러다가 다 죽어"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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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안에 대해 대형사와 중소형사 간 미묘한 온도차가 느껴진다. 자본력 등 가지고 있는 대응 카드가 많은 대형사보단 중소형사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배당은 차치하더라도 마진 감소와 킥스 비율 하락 이후 자본 확충 등 수습해야 할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다. 매각을 추진 중인 손보사 한 곳은 CSM이 최대 30%가량 급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사는 지급 여력 추락으로 존폐 기로에 몰릴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 6월 말 기준 경과조치를 적용한 보험사의 킥스 비율은 217.3%로 전분기(223.6%) 대비 6.3%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1분기(-8.6%포인트)에 이어 두 분기 연속 하락한 것으로, 2022년 12월 말 205.9%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선행된 금융당국의 경제적 가정 변경과 금리 하락 이중고가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태준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무·저해지보험 해지율 조정에 이어 내년 최종관찰만기 연장이 도입되면 킥스 비율에 재차 충격이 가해진다"며 "결국 자본력이 낮을수록 우려가 누적되는 셈"이라고 했다.▷관련기사 : 코앞 금리인하에 자본건전성 어쩌나…보험업계 '빨간불'(10월9일)
금융당국의 보수적인 가정에 따라 해지율 가정치가 지금보다 떨어지면 일부 무·저해지보험 보험료가 오를 전망이다. 과거 저성장·저금리 장기화로 보험료 상승이 예상돼 이런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무·저해지보험이 도입된 점을 감안하면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금융당국이 IFRS17 개선안을 내놓을 때 마다 회계 변동성을 키우면서 투자자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기업가치제고) 프로그램에도 배치되고 있다는 지적이다.▷관련기사 : [확 달라지는 무해지보험]②가성비 보험 역사 속으로(2021년 10월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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