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이동통신 3사의 판매장려금과 거래 조건 등에 대해 담합 혐의를 제기하며 조사에 착수했다. “정부(방송통신위원회)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는 통신사들의 항변에 대해, 공정위는 “행정지도가 있더라도 사업자 간 별도 합의가 이뤄진 경우 담합으로 제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관치가 빚어낸 이번 딜레마는 기업과 소관 부처, 규제 기관 모두에게 불편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과거 사례를 찾아보면 행정지도를 따랐다는 기업의 항변이 그럴만 했다고 인정받은 경우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2005년의 시내전화 요금 담합 사건에서 KT와 하나로텔레콤은 정보통신부의 요금 안정화 지침에 따라 요금을 조정했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는 두 회사가 지침을 넘어 자율적으로 요금을 맞추는 합의를 한 것으로 보고 각각 1134억원, 2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대법원은 ”정보통신부의 행정지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손실 방지와 이익 극대화를 위해 자발적으로 추진된 합의는 담합으로 볼 수 있다”며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2007년 손해보험사 담합 사건에서도 금융당국의 할인·할증률 조정 방향에 따라 다수의 보험사가 부가율 조정폭을 매년 합의해 결정하자 공정위는 담합 혐의로 과징금을 부과했고, 대법원에서도 공정위 전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반대의 사례도 여럿이다. 소주 값, 오리고기 가격, 해상 운임 등에 대한 담합 사건에서는 공정위의 처분에 대해 법원이 무죄로 판결하기도 했다.
이런 일이 자꾸 발생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정부가 가격에 간섭하는 일이 많아서다. 가격에 대한 간섭은 시장 비효율을 초래한다. 그런데도 각 부처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행정지도라는 명목으로 가격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지침을 따르는 것이 어디까지 인정받을 것인가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기업은 정부 지침을 핑계로 얼마든 추가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예컨대 정부가 가격을 100원이 넘지 않도록 하라고 지도했다는 것을 명분으로 모든 사업자가 99원을 받기로 한다면 경쟁은 사라지고 결국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물론 통신사들의 억울함도 이해는 간다. 이들은 예측 가능한 규제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자율적인 경쟁을 통해 시장을 활성화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며, 방통위와 공정위의 시각 차이가 시장 불확실성을 가중하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공정위는 정부 지침을 따르는 것이 모두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10여년 전에 밝힌 바 있다. 공정위가 2007년에 만든 ‘행정지도 개입 담합에 대한 심사지침’을 보면 타 부처의 지침이 있더라도 법적 근거가 없거나 명확히 허용된 합의가 아닌 경우에는 담합으로 규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정부 말을 들었는데 정부가 채찍을 들었다고 기업이 반발하는 상황은 이제 그만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각 부처가 가격에 개입하는 일을 최소화해야 한다. 정부의 규제가 생기면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들은 이를 피해 갈 방법을 찾기 마련이고 결국 시장의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공정위도 규제일변도의 행정을 펼치기보단 논란을 사전에 막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방통위가 이통사에 가격 지도를 하는 것은 이미 알려졌던 사실이다. 공정위가 가이드라인을 주고 불법행위를 사전에 막으려고 했다면 담합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을 것이다. 뒷짐 지고 바라보다가 문제가 보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벌을 주려는 지금의 모습이 책임 있는 부처의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을 공정위가 알았으면 한다.
세종=김민정 기자(mjki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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