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이번 홍수는 人災” 분노
일부는 진흙 이어 돌까지 던져
국왕, 그 와중에 다가가 위로 건네
스페인 현지 매체에 따르면 펠리페 6세는 이날 레티시아 왕비, 페드로 산체스 총리 등과 함께 발렌시아주 파이포르타를 찾았다. 지난달 29일 벌어진 50여 년 만의 대홍수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이다. 하루 새 4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자 인근의 건천이 순식간에 범람, 마을 대부분이 물과 진흙에 잠겼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 217명 대부분이 발렌시아주에서 나왔다.
국왕은 수재민과 구호 인력을 직접 위로·격려하려 이곳을 찾았다. 경호팀 일각에서 “민심이 좋지 않다”고 말렸으나 그는 방문을 고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려한 대로 국왕과 총리 일행을 목격한 주민들은 분노를 쏟아냈다. “살인자들” “당장 꺼져라” “창피한 줄 알라”는 비난이 날아왔다. 일부 시민은 진흙과 돌을 던졌다. 경호원들이 급히 우산을 펼쳐 막아섰지만 국왕의 얼굴과 옷 곳곳에 진흙이 묻었다. 펠리페 6세는 이 와중에도 주민들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성난 주민들도 먼저 손을 내미는 국왕을 뿌리치지는 못했다.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이 3일(현지 시각) 분노한 수재민과 대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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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파이스 등 현지 매체들은 “이번 홍수가 ‘인재’란 인식이 주민들의 분노를 불렀다”고 전했다. 스페인 기상청이 지난댤 29일 오전 일찌감치 ‘폭우 적색 경보’를 내렸으나, 주정부는 약 10시간 후인 이날 오후 늦게야 주민들에게 긴급 재난 안전 경고를 했다. 이미 폭우가 쏟아지고 하천이 범람의 조짐을 보일 때였다. 이후 수색·복구 작업도 느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펠리페 6세는 이날 파이포르타 일정을 중단하고, 일정을 모두 취소한 채 수도 마드리드로 돌아갔다. 지역주의가 강한 스페인의 중앙집권을 상징하는 존재인 왕가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왕실 존속에 대한 논란이 더 커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보르본 왕가’인 스페인 왕실은 프랑스 부르봉 왕가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합스부르크의 왕가인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2세가 후사 없이 사망한 뒤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손자였던 펠리페 5세가 1700년 스페인 국왕에 즉위했다. 왕실을 일컫는 ‘보르본’은 ‘부르봉’의 스페인어 발음이다. 이후 나폴레옹의 침공과 두 번의 공화정, 프랑코 독재로 왕정이 세 번 폐지되기도 했다. 펠리페 6세는 1975년 프랑코 독재 정권이 붕괴한 뒤 왕위에 올랐다가 2014년 퇴위한 아버지 후안 카를로스 1세의 뒤를 이어 국왕에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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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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