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김창수(37·가명)씨가 읽은 『소년이 온다』점자도서. 김씨는 "점자책의 사각거리는 느낌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박종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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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에 6년째 살고 있는 시각장애인 김창수(37·가명)씨는 매일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30분씩 점자도서를 읽는 게 삶의 낙이다. 오디오북이나 시각장애인 도서관에서 제작하는 대체자료를 통해 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점자도서만의 매력이 있다고 했다. 김씨는 “사각거리는 점자책의 질감이 좋다”며 “손으로 학습할 때 기억에 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는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소규모 도서관이 있지만 관악구 소재 실로암 시각장애인 복지관까지 책을 읽으러 간다. 집 앞 도서관엔 김씨가 즐겨 읽는 소설책이 적기 때문이다. 김씨는 “복지관에서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도 점자로 읽었다”면서도 “집 앞 도서관에서도 다양한 신간 점자도서가 들어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4일로 ‘한글 점자의 날’이 제정된 지 98주년을 맞았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국내 점자도서관이 점점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은 일제 시대 시각장애인 교육자인 송암 박두성 선생이 6점식 한글 점자인 ‘훈맹정음’을 만든 날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 등에 따르면 국내 점자도서관은 2016년 39개에서 ▶2018년 33개 ▶2020년 30개 ▶2023년 29개로 줄었다. 지난 1월엔 노원구에 위치한 서울점자도서관이 운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문을 닫기도 했다. 지난해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 펴낸 ‘장애인 독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각장애인 독서율은 지난 2020년 34.6%에서 2022년 31.9%로 줄었다. 이는 같은 기간 발달·청각·지체장애인의 독서율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준 수치다.
한글 점자의 날이 지난 4일 98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도서관은 지난 2016년 39개에서 ▶2018년 33개 ▶2020년 30개로 줄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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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은 도서관마다 시설이나 장서량에 편차가 커서 읽을 권리를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점자도서관 대부분이 비영리 민간단체가 지방자치단체 예산과 후원금에 의존해 운영하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 박모(35)씨 역시 “집 앞 도서관에 있는 점자책은 순수과학이나 사회과학 등 오래된 전문 서적이 대부분”이라며 “최근 신간 도서를 점자책으로 읽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점자도서 제작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점도 시각장애인의 독서에 걸림돌이 된다고 한다. 평균적으로 점자도서(소설 기준) 1권을 제작하는 데에는 한 달 정도가 걸린다. 원본에서 글을 추출하고 점자로 변환해야 하는 등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 김모(43)씨는 “점자도서가 나올 때는 이미 유행이 시들해지는 경우가 많다”며 “점자책으로 읽고 싶지만 먼저 오디오북 등으로 읽고 아쉬움을 달래야 한다”고 말했다.
점자도서관 보존 및 활성화를 위해 예산 확대 등 정부의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시각장애인 도서관 관계자는 “현재 정부 지원 보조금은 2명 정도 인건비에 불과하다”며 “추가 인건비 등에 대해서는 각 도서관이 자체적으로 부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날 인천 연수구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한글 점자의 날’ 기념식을 열었다. 32년 동안 점자를 연구한 박중휘 유원대학교 교수와 시각장애 학생의 점자 교육 기회를 확대한 허병훈 서울맹학교 교사, 점자에 대한 지역 사회의 이해를 높인 천영옥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경기도지부 이천시지회 위원이 유공자로 선정돼 문체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점자는 시각장애인이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고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도록 새로운 세상과 연결해 주는 통로”라며 “시각장애인들이 문화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종서 기자 park.jongsu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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