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파병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국제전으로 확전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 역시 중국을 불편하게 한다. 동북아시아 안보 정세가 중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 파병을 계기로 미국이 한반도 주변에 군사적 영향력을 강화하거나 유럽이 대만·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리는 것은 중국이 극도로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지난 6월 19일 북한을 국빈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좌)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테이블에서 마주 앉은 모습. [사진=로이터 뉴스핌] 2024.0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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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파병 이후 국내에서는 중국을 끌어들여 북·중·러 연대를 흔들 수 있는 기회라는 인식이 강해진 듯하다. 정치권은 물론 정부 외교안보 핵심인사들도 이 같은 인식을 공개적으로 드러낸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중국은 아마 (북한군 파병 결정) 과정에서 배제됐을 것"이라며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31일(미국 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2+2(외교·국방) 장관회의 이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사태를 관망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중재와 같은 모종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며 "그 시점은 사태 악화로 중국의 이해가 침해된다고 판단하는 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약하면, 북한군 파병 등 북·러 군사적 결속은 중국을 불편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을 우리 편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북한을 견제할 수 있는 길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입장은 이처럼 단순하지 않다. 중국이 러시아를 통해 북한군 파병을 견제하고 북한을 중국의 통제 아래 두려고 시도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단편적 인식이자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다.
중국과 북한·러시아가 모든 사안에 대해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진행 중인 북·러 간 군사적 밀착은 분명 중국에 불편한 요소가 있다. 하지만 중국이 그보다 더 불편하게 인식하는 것이 있다. 바로 미국의 패권에 의한 국제질서가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러시아는 지금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정면 도전하고 있고 북한은 이를 돕고 있다. 북·중·러 3국은 이 부분에서 공통된 전략적 목표를 갖고 있다.
중국은 북한·러시아와 한배를 타지 않았을 뿐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패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러시아의 실패는 곧 중국의 실패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는데 가장 큰 버팀목이다. 지금 중·러 관계가 역사상 가장 우호적인 상태라는 점에서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함으로써 전쟁의 성격이 국제전으로 변하고 확전으로 치닫게 된다면 중국에게도 부담이 되겠지만 러시아가 3년째 이어지는 전쟁에서 얻은 것 없이 물러난다면 더 큰 부담이다. 이는 곧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가 확실하게 굳어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원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러시아가 승리했음을 선포할 수 있는 충분한 명분과 실리를 챙긴 뒤 더 이상의 확전 없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되는 것이다. 북한군 파병으로 이 시나리오가 완성된다면 중국이 마다할리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22일 러시아 카잔을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신화사=뉴스핌 특약] 2024.1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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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북한의 움직임이 장차 중국에게 우려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중국이 모종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원론적 입장이며 외교적 수사다. 미국이 실제 중국을 설득하려는 시도를 실행에 옮기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과의 전략경쟁으로 미·중 관계가 최악인 상태에서 중국이 미국의 요청을 수용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북·중 관계의 틈을 넓히고 중국을 한국 쪽으로 끌고 오려고 시도한다고 해도 성공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현재 한·중 관계는 역사상 최저점에 도달해 있고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높아진 상태다. 중국이 한국의 요청을 받아들이려면 한국이 미국·일본과 다른 외교적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줘야만 한다. 현 정부의 외교기조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북·중 관계가 과거처럼 친밀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는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한·미·일과 북·중·러'로 나뉘어 강력한 '진영화(陣營化)'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 역시 깊기 마련이다. 한·미·일 협력은 한국에게 전략적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그에 따라 감수해야 할 것도 있다.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찾으려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이 한·미·일 협력에 지나치게 빠른 속도와 높은 수준으로 앞서 나감으로써 지금과 같은 견고한 진영화 구축에 기초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opento@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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