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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 (수)

[이기수 칼럼] 저항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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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명품백 수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채 상병 의혹에 싸인 대통령 부인 김건희에겐 불법 관저 공사, 명태균 게이트가 더해졌다. 금 가고 물 새던 국정 지지율 20% 둑이 무너졌고, 촛불이 커졌다. 이 살얼음판에 쉬 넘지 못할 ‘대통령의 육성’이 빵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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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부러지게 뭘 했다 꼽을 게 없다. V1도 V2도 의혹투성이고, 큰 선거는 다 졌으니, 누굴 탓할 텐가. 대통령 말이 무게를 잃고, 인사는 길을 잃었다. 더 늦기 전, 임기 반환점 앞에, 대통령 부부가 답하고 결단하고 고개 숙일 게 한둘인가. 겸손하고 정직하고 협치하는 권력만이 국정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경구 열두 자가 스친다. 그때였음을, 늘 지나고서 안다.”(경향신문 8월7일자 ‘대통령다움, 그 무거움에 대하여’)

꼭 석 달 전, 여름휴가 중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 글이다. 그 후 달라진 것은 없다. 아니, 대통령도 나라도 더 나빠졌다. 그 8월 명품백,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채 상병 의혹에 싸인 대통령 부인 김건희에겐 불법 관저 공사, 명태균 게이트가 더해졌다. 금 가고 물 새던 국정 지지율 20% 둑이 무너졌고, 촛불이 커졌다. 이 살얼음판에 쉬 넘지 못할 ‘대통령의 육성’이 터졌다.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그거(창원의창 공천)는 김영선이 좀 해줘라 그랬는데.” 스피커폰이었나 보다. 2022년 취임 전날, 대통령이 정치브로커 명태균과 직통한 음성 파일이 폭로됐고, 그 직후 “선생님, 윤상현(공관위원장)이한테 전화했다. 보안 유지하시라”고 전한 김건희 목소리도 까졌다. 그날로부터다. 김건희·명태균 게이트는 대통령의 문제가 됐다. 대선 여론조사까지 조작한 정치브로커가 어떻게 집권당 공천을 사천으로 만들고, 5선 중진을 쥐락펴락하고, 산단 유치까지 활개쳤는지 그 ‘뒷백’과 의문이 풀렸다. 또 그날로 “명태균은 허풍”이니, 녹취록 속 오빠는 “김건희 친오빠”니, “경선 뒤 연락 끊겼다”던 용산 말은 헛껍데기가 됐다. 국감 내내 주목한 김건희 육성보다 한발 먼저 나온 윤석열 육성이 대한민국을 깨웠다.

2024년 김건희는 2016년 최순실과 닮았다. 공식 직함 없이, 둘 다 국사·인사에 개입한 막후 실세였다. 다른 것은 김건희의 ‘약점’이다. 임성근 해병대 사단장의 구명 로비를 운운한 이종호(블랙펄인베스트 대표)는 도이치 주가조작범이고, 김건희에게 공천·산단 로비를 한 명태균은 위법적 여론조사를 했었다. 채 상병 수사와 김영선 공천 개입에 실제 대통령도 반응한 것 아닌가. 그 점에선, 대통령 호가호위하며 재벌 돈 뜯은 최순실보다, 대통령도 몰아치는 김건희 ‘대통령놀이’가 더 위험했을 수 있단 뜻이다. 김건희가 엎지른 물은 한동훈식 ‘특감’ 타령이나 제2부속실로 덮을 수 없다. 변함없이, 국민 눈높이는 특검이다.

이 난국에도, 용산은 헛바퀴다. 국민이 들은 ‘대통령의 공천 지시’는 없었단다. 또 청력테스트인가. 그 말이 정치적·상식적으로도 문제없고, 대통령 지지율이 물러난 기시다 총리(13%)보다 높단다. 이게 말인가 막걸리인가. 사람들은 권력자의 과오와 태도를 함께 본다. 국민 울화 돋우고, 대통령을 더 늪에 밀어넣는 게 이런 ‘윤바라기’들이다. 믿음 잃은 검찰은 말할 것도 없다. 대통령은 알까. 이 가을 서초동 법조거리에선 조소(嘲笑)가 터진단다. “8년 전 ‘검사 윤석열’이면, 지금 ‘대통령 윤석열’은 끝”이라고.

10점 만점에 2.2점. 경향신문 질문에, 정치학자 30명이 작금의 윤 대통령에 매긴 점수다. 학교라면 ‘F’다. “2년 반 용산에서 소꿉놀이 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중앙일보·갤럽 여론조사엔, 74%가 대통령 잘한 일이 없다고 했다. 오마이뉴스·KSOI 조사엔 58.4%가 대통령 ‘중도하차’를 바랐다. 다 빨간불이다. 비단, 나라의 난맥이 이런 숫자뿐일까. 의료대란이 9개월째다. 무인기로 다투던 한반도엔 우크라 불씨도 심상찮다. 대파·사과·상추로 이어진 ‘금~’자 먹거리는 이제 김장 채소란다. 30조 세수 펑크 난 정부가 지방정부에 교부될 6조5000억을 자르겠다 한 다음날, “지방시대”를 선언하는 웃픈 일이 벌어졌다. 왜 2년째 부자감세 후폭풍을 지방의 서민이 겪어야 하는가.

“돌 던지면 맞고 가겠다.” 귀 닫았던 대통령이 7일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위기감일 게다. 해서, 묻는다. 대통령은 날아오는 돌이 뭔지, 왜 던지는지는 정말 아는가. 공사 구분 없던 혼군(昏君)의 시대를 진솔히 반성하겠는가. 예스맨·검사·뉴라이트 넘치는 공직사회 일신하고, 검찰·감사원·방심위·인권위도 제자리로 돌리겠는가. 골병든 국정 달라지겠다 할 땐, 획을 그어야 한다. 그러지 않는 대통령 말은 가볍고 무망(無望)해진다.

시민 저항은 시작됐다. 시국선언과 훈장 거부가 줄잇고, 촛불은 더 커질 것이다. 시민이 불복종하는 권력은 붕 뜬다. 레임덕 지나, 윤 대통령은 ‘식물대통령’ 앞에 섰다. 국민이 해보라는 특검 외에 진실을 가릴 방도가 있는가. 그 특검 후에라야 대통령 권위 회복도, 개헌도, 사퇴나 탄핵도 분기점에 설 게다. 참고 참고 참지만, 배를 띄우고 배를 엎을 수도 있는 게 민심이다. 그 요동이 커질 대통령의 겨울이 다가서고 있다.

경향신문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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