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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 (수)

[중앙시평] 러시아 용병 파견과 김정은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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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 경제학부


절박한 두 남자가 판돈을 합쳤다. 김정은은 러시아에 포탄을 팔다 이제는 사람까지 투자했다. 푸틴은 판돈을 키워 서방에 ‘너희가 물러나라’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타이밍도 맞췄다. 미국 대선 전에는 유권자의 표를 겨냥했고, 이제는 새롭게 선출된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한다. 푸틴의 도박은 성공할까. 만약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다면 휴전이나 종전이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유럽 나토 회원국이나 미국 내부의 반대에 부딪혀 의도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유럽 국가들이 방위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는 조건으로 타협되리라는 전망이 많다. 이 경우는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전쟁은 계속된다.



용병 파견으로 양극단 위험 증가

핵·경제 병진 성공할 수도 있지만

북한 체제 붕괴 가능성 또한 증가

지금은 신중히, 위험도 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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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평양에서 정상회담 뒤 서명한 조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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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지속된다면 푸틴은 러시아 청년 대신 북한 젊은이를 전쟁에 더 투입하고 싶을 것이다. 김정은도 이미 전쟁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에 푸틴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울 테다. 그렇다면 두 정상은 무엇을 주고받으려 할까. 현재 김정은의 일차적 관심은 외화다. 북한은 대중 무역에서 연 20억 달러 정도의 적자를 보고 있다. 이 중 절반은 다른 수단으로 충당할 수 있겠지만, 절반은 여기저기의 외환을 털어 메울 수밖에 없다. 올해 상반기 북한의 대중 수입액은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상반기 수입액의 3분의 2에 불과하다. 더욱이 코로나 기간에 필요한 재화를 수입하지 못했던 점을 고려하면 아주 적은 액수다. 그런데도 현재 달러당 원화의 시장 환율은 올해 초 수준의 2배로 폭등했다. 북한 정권이 쓸 수 있는 외화가 크게 부족하다는 신호다. 만약 한 명당 월 2000달러를 받고 4만 명의 군인을 전쟁터에 보낸다면 당분간 외환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김정은에게는 유혹적인 제안이다.

전쟁이 지속되면 김정은에게 최선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기회가 생긴다. 푸틴은 김정은과의 거래를 경제와 재래식 군사기술 분야로 국한하고 싶을 것이다. 첨단 군사기술을 전수한다면 남한과 서방뿐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큰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과 전쟁공동체 관계를 유지하려면 첨단 군사기술도 이전해 달라는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다. 더욱이 내년에는 푸틴의 군비 주도 성장에 한계가 올 것이다. 지금까지는 러시아의 국부펀드 적립금으로 전쟁 비용을 무리 없이 조달했다. 그러나 내년에는 현재 500억여 달러에 불과한 국부펀드의 유동자산이 바닥날 전망이다. 총 재정지출의 40%, 18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군사비와 치안 비용을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국채를 발행한다면 금리가 오르고, 통화를 증발한다면 인플레이션이 유발된다. 이쯤 되면 푸틴도 돈보다 첨단 군사기술을 주는 편이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돈과 첨단무기를 동시에 쥔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이 성공했다고 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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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공개한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모습. spravdi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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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김정은에게 최악의 시나리오가 벌어질 수도 있다. 사상자가 많아진다면 북한 내부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것이다. 전장에서 대규모 이탈자가 발생해도 큰 부담이다. 외부 세계를 경험한 젊은 군인의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도 걱정거리다. 큰돈이 들어오면 권력 간 이권 충돌도 증가한다. 푸틴과 운명공동체가 되어 같이 넘어질 수도 있다. 전황이 불리해지면 러시아에서 푸틴에 대한 반대 여론이 드세질 것이다. 푸틴이 핵을 사용한다면 확전이 불가피하다. 그러면 김정은의 미래도 푸틴과 연동된다. 또 푸틴은 북한을 전쟁에 묶어두기 위해 첨단 군사기술을 한꺼번에 주기를 꺼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둘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다. 그때는 자신의 운명이 폭풍 치는 바다의 작은 배 같음을 김정은도 알 것이다.

미국 대선 이후에 전쟁이 조기 종결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북한의 가치는 급락한다. 푸틴은 전후 재건 사업에 수십만 명의 북한 근로자를 고용하는 의리의 사나이가 될 것인가. 대러시아 제국이란 야망을 이루기 위해 북한과 전쟁공동체로 계속 남으려 할 것인가. 아니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북한을 버릴 것인가. 전문가의 의견은 나뉜다. 하지만 이때는 푸틴이 김정은의 미래를 좌지우지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한미와 우방국은 종전이나 휴전 협정 조항에 러시아가 기존의 유엔 결의를 준수한다는 내용을 삽입해 북한 근로자의 고용을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북 제재는 무력화된다. 북·중·러 중 가장 변동성이 큰 지각판은 북한이다. 이 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붙들어 매야 한다.

사방이 지뢰밭이다. 밤까지 짙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체성을 나침반 삼아 나아가야 한다. 지금이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를 한국이 직접 공급할 정도로 어두운 밤인가. 그렇다면 미국 및 유럽 우방국과 긴밀히 조율하고 같이 행동해야 한다. 동시에 아시아 우방국과의 안보협력을 제도화해야 한다. 그러나 빛이 있어 주변을 볼 수 있다면 방향을 잡되 지형을 확인하며 한발 한발 움직여야 한다. 아직은 밤이 아니다. 볼 수 있는 때다. 그러니 용감하기보다 신중해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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