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서울 서초사옥에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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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세계 1위’를 지켜온 삼성반도체 D램 개발실이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선다. 5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반도체 수장인 전영현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장(부회장)은 연말 인사와 조직개편을 앞두고 현행 D램 개발 방식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양산 중인 D램의 설계도 모두 재검토 대상이다. 지난 5년 동안 삼성 D램 개발의 실패를 인정하고, D램 설계부터 사실상 다시 시작하겠다는 뜻이다.
반도체연구소와 메모리사업부 등 차세대 D램 개발조직 역시 큰 폭으로 개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로 보냈던 D램 개발인력을 최근 다시 복귀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2019년 삼성은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 달성 목표를 세웠고, 이에 D램 개발 조직의 핵심 인력들이 파운드리 사업부로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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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기업 생사 좌우하는 D램 개발
불붙은 D램 공정 경쟁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테크인사이츠] |
D램은 데이터를 읽고 기록하는 대표적인 메모리 반도체다. 매출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주력 사업인 D램에서 부진하면서 삼성 반도체는 올해 처음으로 SK하이닉스에 연간 영업이익을 추월 당할 가능성이 커졌다.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선 공정 세대를 바꿀 때마다 집적도를 높여 더 작고 성능 좋은 D램을 만든다. 10나노급 첨단 D램 공정은 1x·1y·1z 세대를 넘어 최근엔 공정 1a·1b·1c로 접어 들었다. 세대를 거듭할 수록 미세한 공정이 적용돼 성능과 전력 효율이 좋아진다. 이런 D램으로 HBM(고대역폭메모리)을 비롯해 DDR·LPDDR 등 서버와 스마트폰 등에 탑재되는 주요 메모리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차세대 D램 개발 조직은 반도체 기업의 생사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전경. 사진 삼성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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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램 사업의 본질은 경쟁력 있는 제품을 제때 개발해 경쟁력 있는 가격에 양산하는 데 있다. 삼성은 독보적인 차세대 D램 개발 역량을 앞세워 30년 동안 전 세계 시장을 지배했다. 반도체연구소에서 차세대 D램의 설계·개발을 마치면, 메모리사업부가 이를 이어받아 생산 수율(양품 비율)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개발 초기 단계인 차차기 세대 D램이 쉼 없이 계속 투입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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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D램에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김주원 기자 |
하지만 2019년 3월 3세대 10나노급(1z) D램 개발을 끝으로 삼성의 ‘세계 최초’ 기록은 5년째 멈춘 상황이다. 1z 다음 공정인 1a D램 개발·양산 경쟁에서 2021년 미국 마이크론에 선두를 내준 삼성은 6세대(1c) 개발에서도 올해 SK하이닉스에 세계 최초 타이틀을 내줬다.삼성 메모리사업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 위기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지만 지난 5년 동안 실기했던 것이 본질”이라면서 “뿌리에 해당하는 D램 설계·개발에서 양산에 이르는 시스템에 탈이 났었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사진 삼성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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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지난 2020년 세계 최초 극자외선(EUV) 공정을 적용한 D램 양산 이후 설계와 수율 문제를 바로잡지 않은 데 대한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1a D램을 양산할 때 수율이 충분히 높지 않은 상태에서 EUV 장비를 경쟁사보다 더 쓰는 방식으로 땜질 처방했다”면서 “이제라도 기본으로 돌아가 제대로 개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HBM·DDR5 등 고부가가치 메모리 시장은 SK하이닉스가 주도하고 있고, 삼성 뒤에는 중국 창신메모리(CXMT)가 올해 1z D램을 양산하며 쫓아오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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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D램 개발실 대수술인가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부회장). 사진 삼성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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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차세대 D램은 물론, 이미 양산 중인 기존 D램까지 다시 설계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내부에선 D램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전 부회장이 초강수를 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조직문화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삼성 반도체 한 관계자는 “개발 과정에서 실패는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솔직하게 보고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라고 말했다. 전 부회장이 조직문화에 대한 대대적 쇄신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를 위해 전 부회장은 인사를 앞두고 지난주부터 반도체 부문별 임원들을 소집해 연쇄 토론회를 시작했다.
전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를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D램 개발조직이 설계는 물론 공정설계·양산까지 철저하게 책임지는, 삼성반도체 본연의 시스템을 복원하는 방식으로 개편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수천 단계의 반도체 공정에서 단 하나만 잘못돼도 정상에서 밀려날 수 있는 게 기술 산업의 냉혹함”이라며 “삼성전자가 얼마나 빨리 회복력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향후 반도체 산업의 지형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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