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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 (수)

“코인 채굴에 투자하라” 형사에 전화했다 모조리 쇠고랑 찬 사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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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비트코인 채굴기’ 투자사기 조직 등 80명 검거

투자 권유받은 형사 “사기범행 직감하고 정보 수집”

조선일보

경기남부경찰청 청사. /경기남부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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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채굴기 임대사업은 손해가 없는 투자입니다. 우리는 자본력이 있는 만큼 투자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지난 4월 경기남부경찰청 형사기동대 소속 김모 형사는 번호 ‘010′으로 시작하는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은 비트코인 채굴기를 임대하는 투자업체 상담원이라며 “원금을 보장하고 일정한 수익도 지급한다”고 했다. 그러나 김 형사는 투자사기임을 직감했다. 형사기동대가 악성사기 분야도 집중 수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 형사는 투자 권유에 솔깃하게 넘어간 것처럼 연기를 했다. 상대방은 “채굴기 공장을 운영하며 24시간 풀가동해 비트코인을 발행하고,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비싼 거래소에서 사고팔아 시세차익을 남긴다”고 했다. 또 “매일 1% 상당의 수익을 보장하며 수익금은 즉시 출금이 가능하다. 믿지 못하면 우선 무료체험 수익으로 매일 1만원씩 송금해주겠다”고 꾀었다.

김 형사는 상대방의 요구대로 은행 계좌번호 등을 불러주며 투자를 할 것처럼 안심시키고, 2~3주 동안 전화 통화로 접촉을 이어가며 필요한 정보를 얻어냈다. 이 과정에서 김 형사의 통장에는 이들이 말한 ‘무료체험 수익’이 며칠 동안 1만원씩 입금되기도 했다.

김 형사는 이런 과정을 거쳐 수집한 정보와 범죄 단서를 상부에 보고했고, 형사기동대는 집중 수사에 착수해 사기조직이 거점을 국내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약 한달 만인 지난 5월 인천의 사무실을 급습해 총책·팀장·상담원 등 16명을 검거했다.

경찰에 붙잡힌 총책 A씨(20대 후반)는 알고 지내던 지역 후배를 끌어들여 투자사기 범행을 벌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작년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이같은 수법으로 50명을 상대로 23억원 상당의 투자금을 받아 가로챈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의 연령은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했으며, 적게는 200만원에서 많게는 3억원까지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전화 등으로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무료체험 수익금’ 명목으로 1만~5만원을 입금해주며 소액 투자를 권유했다. 또 신뢰 관계를 형성한 뒤 기존 수익금의 10배 수익을 보장한다며 고액 투자를 유도한 뒤에는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이런 수법으로 3번이나 사무실을 옮겨가며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특정경제범죄처벌법 위반(사기), 범죄단체조직 혐의로 A씨 등 9명을 구속하고, 7명을 불구속 입건해 검찰에 송치했다. 또 이들에게 대포유심을 공급한 조직, 개인정보 유통책 등에 대한 수사도 벌여 줄줄이 검거하는 성과를 거뒀다. 김 형사가 우연히 받은 투자권유 전화를 단서로 모두 80명을 검거해 13명을 구속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조선일보

경기남부경찰청 형사기동대가 지난 5월 인천의 한 사무실을 급습해 비트코인 채굴기 투자사기 조직원들을 검거하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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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압수한 대포 유심의 공급로를 추적해 별정 통신사 대리점 6곳에서 외국인 명의의 1980개 대포 유심이 개통된 사실을 확인해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4명을 구속하고 2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저금리 대출 안내 음성광고를 불특정 다수에게 발송하는 수법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판매한 콜센터 5곳의 운영자 등 33명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투자사기 조직 피의자들이 범행에 이용한 개인정보 DB는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것으로, 이름과 전화번호만 있어 자신들이 전화한 상대가 현직 형사인 줄은 모르고 있었다”며 “수사가 끝난 지금도 자신들이 어떻게 검거됐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원=권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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