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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 (수)

새로운 EV, SUV, PBV까지 다양한 변화 이끌고 있는 ‘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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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팅어 같은 스포츠카 감성에도 집중할 계획”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단정하지만 스타일리시한 매무새가 도드라졌다. 질문을 건네면 한번 곱씹어 생각한 후 말문을 여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BMW, 메르세데스-벤츠, 인피니티를 거쳐 2019년 현대차그룹에 입사한 카림 하비브 기아 글로벌디자인담당 부사장을 만났다. 기아의 첫 픽업트럭 ‘더 기아 타스만’, 전기차 ‘EV4’, ‘PBV’(목적기반차량) 등의 공개를 앞둔 그는 “어제 독일에서 돌아왔다”며 “많이 바쁘지만 자동차 디자이너로서 지금 이 순간이 너무 만족스럽다”고 상황을 전했다. 인터뷰는 서울 압구정동에 자리한 ‘Kia360’에서 이뤄졌다. ‘EV3’ 앞에서 포즈를 취한 그를 알아보고 삼삼오오 모여 수군대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이채로웠다.

매일경제

카림 하비브 기아 글로벌디자인담당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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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is
1970년생.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태어났다. 1979년 이란 혁명이 발발하자 가족들과 프랑스, 그리스를 거쳐 캐나다에 정착했다. 캐나다 맥길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미국 아트센터 칼리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1998년 BMW 디자인팀, 2009년 메르세데스-벤츠 디자이너, 2011년 BMW 외관 부문 수석 디자이너, 2012년 BMW 브랜드디자인 총괄, 2017년 인피니티 디자이너를 거쳐 2019년 기아디자인센터에 부임했다. BMW 5시리즈, 6시리즈 그란쿠페, 7시리즈, 메르세데스-벤츠 F800 스타일 콘셉트, 인피니티 Q 인스피레이션 콘셉트카, 기아 K8, EV3, EV6, EV9 등이 그의 작품이다.

정의선 회장의 특명은 새로운 디자인
Q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A 부임 초기에는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살았는데, 현재는 독일에서 살고 있습니다. 2~3주에 한 번씩 한국으로 출장오고 있어요.

Q 비행기를 타고 출근하는 셈인가요. 디자이너는 때로 여행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하던데.

A 아, 어려운 질문이네요. 전 모든 곳에서 영감을 얻는 것 같습니다. 굉장히 다양한 장소에 다니길 좋아하는데, 과거엔 건축물을 보고 스케치하곤 했어요. 그래서 참 많은 건축물을 보고 다녔지요. 지금은 다른 분(디자이너)들을 가이드하고 있는데, 좀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브랜드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브랜드가 창의성과 영감을 주도하는 원천이라고 생각하거든요.

Q 기아는 어떤 영감과 원천을 갖고 있는 브랜드인가요.

A 저는 브랜드가 앞으로 되고자 하는 이미지를 생각합니다. 브랜드를 통해 저희가 만드는 제품이 어떤 특징을 갖게 되면 좋을지 생각하죠. 아마도 제 입장에선 좀 더 선이 굵고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닐까 합니다.

Q 2019년 10월에 기아로 적을 옮겼는데, 정확히 5년이 지났습니다. 당시와 지금은 많은 부분이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A 어제가 첫 출근처럼 느껴지는데 시간이 참 빠르네요.(웃음) 아무튼, 기아는 굉장히 멋진 브랜드에요.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참 시의적절한 시기에 입사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 브랜드를 재정의하고 있었고, 로고도 새로 디자인하면서 리론칭을 준비 중이었거든요. 뿐만 아니라 ‘EV3’에서 ‘EV9’까지 굉장히 많은 신기술이 도입됐습니다. 그래서 디자인도 새 브랜드를 대표할 수 있도록 창조하려고 노력했고요. 범위를 지난 20년으로 넓히면 변화되고 발전된 모습을 좀 더 확연히 알 수 있을 겁니다.

Q 그 시기에 분명 정의선 회장의 특명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A 당시 정의선 회장님께서 ‘플랜S’(전기차 사업 체제로의 전환, PBV,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란 전략을 세웠는데, 새로운 시대에 기아가 어떻게 변모해야 할지에 관한 계획이었어요. 이 계획에 맞춰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했고, 제가 그 역할을 했습니다. 돌아보면 우연치 않게 운이 좋았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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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5년간 자신의 색깔이 담긴 첫 차를 꼽는다면.

A ‘EV9’이 아닐까 싶네요. 입사 후 바로 시작한 차였어요. 기아의 디자인 철학인 ‘오퍼짓 유나이티드’(상반된 개념의 창의적 융합)가 가장 잘 접목된 차량입니다.

Q 기아 디자인의 중심에 EV9이 있다는 의미인가요.

A 중심 디자인이라기엔 무리가 있어요. 처음 개발할 때 구체적인 사항을 정한 건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라인이나 그래픽을 이렇게 구현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전 디자인이 가져야 할 단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EV9은 새로운 기아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EV3가 많이 닮아서 패밀리 디자인이란 말도 있는데, 너무 다르게 디자인하면 오히려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봤어요. 디자인의 일관성을 보여줌으로써 기아의 캐릭터를 살리고 소비자들이 도로에서 기아차를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게 첫 번째 의도였습니다. 두 번째는 ‘카니발’이나 ‘쏘렌토’ 부분 변경 모델의 라이트 시그니처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과하게 반복되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좀 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Q 다른 방향의 디자인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말인가요.

A 맞습니다. ‘EV4 콘셉트’와 ‘EV4’를 통해 곧 볼 수 있을텐데, 다른 방향의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또 다른 발전이죠.

Q 오퍼짓 유나이티드는 유지되는 것이겠지요.

A 네. 때로 일상생활에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합쳐져 놀라운 결과를 내기도 합니다. 이게 바로 오퍼짓 유나이티드의 원칙이에요. 결과에 따라 무수한 개수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원칙은 세우되 그것을 실행하는 데 있어 많은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Q 사실 이 디자인 철학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은데요. 좀 더 쉽게 설명해주신다면.

A 아, 그럴 수 있어야 할 텐데.(웃음) 전 20년간 독일에서 일하다 7년 전 일본(인피니티)을 거쳐 5년 전 한국에 왔습니다. 일반화하고 싶진 않은데, 서양에선 사물을 흑백논리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특히 독일은 모 아니면 도라는 인식이 강하죠. 일본을 거쳐 한국에 왔을 때 아시아 문화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는데, 사물에 대한 구분이 분명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예를 들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할 수 있고, 지금 창밖으로 보이는 아파트와 우리가 있는 빌딩의 구조는 전혀 다르지만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아시아에선 이처럼 대비가 주는 편안함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 같더군요. 이러한 경향을 디자인과 예술, 자동차에 접목하고 있습니다.

Q 이해가 쉽지 않지만 노력해보겠습니다.

A 아, 다시 말하자면 음과 양의 조화라고 할까요. EV9의 차 문은 표면이 굉장히 매끈한데요. 중간에 갑자기 구부러지면서 휠 아치로 이어집니다. 부드러움과 날카로움, 낮은 것과 높은 것, 서로 상반된 개념이 어우러지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EV9의 진가, 곧 알게 될 것
Q 기아가 달라졌다는 건 전 세계에서의 성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세계 각국 소비자들의 취향과 특징이 제각각인데, 어떤 점에 집중해 디자인하는 겁니까.

A 분명 그렇습니다. 다르죠. 저희가 디자인을 리론칭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한 건 새로운 고객이었어요. 새로운 것, 혁신적인 것, 특히 신기술에 대해 목말라하고 수용할 준비가 된 분들이 주 타깃이었습니다. 이런 얼리어답터는 사는 곳이 달라도 공통점이 많은데요. 남과 다른 차별화를 추구하고 리스크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습니다. 특히 새로운 기술의 시도를 좋아하죠. 초기 전기차 고객들의 성향이 그러한데, 그래서 일관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유연함을 보여주는 디자인이 중요했습니다.

Q 한국 소비자의 특징이라면.

A 이것도 어려운 질문인데…. 한국은 소비자층이 다양합니다. 근거는 없지만 개인적으론 한국 소비자들이 좀 더 영(Young)하고 프레시한, 혁신적인 느낌을 받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Q 그런데 사실 EV9은 호불호가 강했습니다.

A 물론 저희 디자인이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길 원하고 많이 팔리길 바랍니다. 전 세계 어디서든 저희의 자동차를 봤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박물관에 전시하거나 디자인상을 받기 위해 디자인하는 건 아니거든요. 사람들이 직접 운전을 하고 그 차와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디자인합니다. 그런데 창의적인 품질이란 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더군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첫 구절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계속 그 노래를 듣다 보면 다양한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어쩌면 바로 그런 점이 좋은 디자인이겠지요. 사실 EV9은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를 모두 수상한 현대차그룹의 첫 모델이에요. 왜 아직 호불호가 갈리는지 모르겠는데, 많은 분들이 진가를 알아보길 기다리고 있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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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부산 모빌리티쇼에 전시된 EV6, EV9, EV3(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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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내년 상반기에 출시될 첫 픽업트럽 ‘더 기아 타스만’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는데요.

A 타스만을 디자인할 때 의도한 건 ‘눈에 띄는 자동차’였어요. 아시다시피 픽업트럭 시장은 경쟁자도 많고 로열티가 굉장히 강하거든요. 후발주자로서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새로움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저도 시장 반응이 궁금합니다.

달라진 자동차, 내 딸도 PBV 더 좋아해
Q 자동차는 이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디자인도 달라져야 한다는 의미인데.

A 내년에 출시될 저희 PBV 차량을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사용성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사용성은 좀 더 신나게 일할 수 있는 분야예요. 사용성이 높을수록 다양한 아이템을 디자인할 수 있거든요.

Q 한국에선 어떤 차를 타십니까.

A 지금은 고맙게도 기사가 있는 차량이 나왔어요. 직접 운전하고 다니진 않습니다. 처음 입사했을 땐 ‘모하비’를 몰았습니다. 저보다 아내가 정말 좋아한 차에요. 다시 유럽으로 이사를 갔을 때 아내가 모하비를 다시 사면 안 되냐고 말할 정도였어요. 지금은 EV9을 운행하는데, 이 차도 꽤 좋아하고 있습니다.

기아에는 ‘스팅어’라는 모델도 있습니다.이러한 차량이 주는 운전의 즐거움,그란투리스모적인 감성과 경험은그간 비교적 덜 집중한 부분인데요.다음번엔 이런 부분에 좀 더 포커스를맞추려고 합니다.
Q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의 워너비카도 궁금한데요.

A 전 1960~1970년대 이탈리아 클래식카를 좋아합니다. 너무 비싸긴 하지만 ‘마세라티’나 ‘페라리’처럼 그란투리스모 콘셉트의 오래된 차량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드라이빙을 떠올리면 이런 멋진 차를 타고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긴 도로를 여행하는 상상을 하곤 하죠.

Q 어려운 환경을 딛고 성공한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디자이너가 안 됐다면 어떤 직업을 가졌을까요.

A 네. 어린 시절은 그랬지요.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건축가가 됐을 것 같아요. 그 꿈을 가졌던 적도 있거든요.

Q 궁극적으로 디자인하고 싶은 차는.

A 전 지금 자동차 디자이너로서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25년 전에 처음 디자인을 했는데, 그에 비하면 디자인 분야도 많은 변화를 겪어왔어요. 처음 BMW에서 일을 시작했을 땐 ‘럭셔리’ ‘프리미엄’ ‘스피드’가 키워드였지요. 기아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요즘은 ‘편안함’ ‘유틸리티’ ‘사용자 경험’ ‘커뮤니티’에 중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전 이러한 변화가 정말 만족스러워요. 지난 CES에서 PBV 콘셉트 차량을 선보인 후 제 딸들에게도 보여줬는데 너무 좋아하더군요. 커뮤니티와 사용성, 차 안에서 캠핑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인지 제가 좋아하는 올드카보다 훨씬 쿨하다고.(웃음) 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 좋습니다.

Q 기아 디자인의 지속적인 변화를 말씀하셨는데, 소비자 입장에선 어떤 방향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A 조금 힌트를 드리자면 저희는 EV나 SUV, PBV 등 여러 차량을 디자인했습니다. 그런데 기아에는 ‘스팅어’라는 모델도 있습니다. 이러한 차량이 주는 운전의 즐거움, 그란투리스모적인 감성과 경험은 그간 비교적 덜 집중한 부분인데요. 다음번엔 이런 부분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추려고 합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인터뷰를 안하는 걸로 유명한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A 아니요. 전혀 의도한 건 아니에요. 인터뷰의 중요성을 몰라서 그런 것도 있고. 어릴 때는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0호 (2024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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