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서울대 공학관에서 67세 청소노동자가 사망했다. 35도 폭염 속에서 창문, 에어콘도 없는 1평 휴게실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산업안전보건법에 노동자의 휴게시설에 대한 명확한 조항이 없었고, 그나마 고용노동부가 정하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근로자 휴게시설’이 명시되었으나 구체적 기준과 처벌규정이 없어 사실상 노동자 휴게시설은 제도 밖에 방치되어 있었다. 이에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2021년 산업안전보건법에 휴게시설 의무화가 명문화되고 시행령 등에 구체적 요건과 위반 과태료도 담겼다. 마침내 노동자 휴게시설이 의무화된 것이다.
그러면 지금 아파트 청소노동자들은 휴게시설에서 제대로 쉬고 있을까? 상당수 청소노동자들이 그러하지 못하다. 나는 근래 청소노동자 휴게시설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렇게 휴게시설이 열악할 줄은 몰랐다. 올해 청소 일을 시작한 어느 노동자는 처음에 휴게시설을 보고 내가 이곳에서 일할 수 있을까 망설였다고 말했다. 어느 아파트 단지 경로당 회장님도 휴게시설을 살펴보고 이 상태를 그냥 둘 수는 없다고 통탄하였다. 더 놀라운 것은 아파트단지에서 핵심 인물인 회장님도 이번에 휴게시설을 처음 보셨단다. 그렇다. 아파트 청소노동자 휴게시설은 입주민들은 아예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설령 알더라도 접근할 수 없는 성역, 아니 사각지대인 것이다.
청소노동자 휴게시설은 어디에 있을까? 대부분 아파트 동 지하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늘 닫혀 있는 철문을 열면 어둑한 통로를 따라 천장에 오·배수관이 달려 있고, 전기 배전판과 물을 모으는 집수정까지 있는 지하공간 한편에 청소노동자 휴게시설로 지정된 방이 있다. 노동자 휴게시설이 법령으로 의무화되고 면적, 높이, 온도, 습도, 환기, 식수 등 기준이 정해졌는데도 휴게시설이 노동자 쉼터로서 적당하지 않은 이유는 이처럼 아파트 동 지하실에 있기 때문이다. 이 방만 보면 법이 정한 기준을 충족할 수도 있지만 노동자가 휴게시설 방으로 가기 위해선 지하 통로를 거쳐야 하고, 지하공간에 놓인 탁자에 앉아 밥도 먹는다. 바닥에서 세수도 하고 걸레도 빤다. 사실상 전체 지하공간의 음침함, 습도, 냄새와 함께 지내야 한다. 휴게시설 방이 지하실에 있는 한, 넘을 수 없는 벽이다.
결국 아파트 청소노동자의 휴게시설이 제 역할을 하려면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와야 한다. 현행 법령은 휴게시설 의무화를 요구할 뿐 위치까지 정하지는 않는다. 지상이든 지하든 모두 가능하므로 많은 아파트들이 배관이 얽혀 있는 지하 공간에 휴게시설 방을 두고 있다. 휴게시설이 당장 입주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아니기에 형식적 요건만 갖추면 된다는 입주민들의 판단, 그리고 이를 용인하는 현행 법령이 만든 결과다.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죽음으로 휴게시설이 법적으로는 의무화되었지만 지하실에 있는 한 실질적인 쉼터로서 휴게시설은 아직도 마련되지 못한 셈이다.
인식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우리 동을 청소하는 노동자도 아파트 구성원이기에 입주민들의 편의시설만큼이나 노동자 휴게시설도 아파트 단지에서 필수 공간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실제 이를 구현하는 모범 사례들이 있다. 내가 사는 고양시에서 관리사무소 공간 일부를 휴게시설로 나누거나, 단지 내에 가건축물을 지어 휴게시설을 설치한 아파트들을 찾을 수 있다. 이 길을 따라야 한다. 단, 지금처럼 입주자대표들의 선의에만 기대해서는 이룰 수 없다. 앞으로는 아파트 청소노동자 휴게시설은 ‘지상’에 두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정해야 한다. 의지만 가지면, 구축 아파트에서도 입주자대표 회의실, 경로당, 관리사무소, 입주민 문화센터 등 일부 공간을 휴게시설로 나눌 수 있고, 단지 내에 간이 가건축물을 지을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 정부와 국회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아파트 청소노동자의 휴게시설 지상화를 선택이 아니라 의무 사항으로 명시하고, 입주민들은 휴게시설을 아파트 단지의 기본 시설로 받아들여야 한다. 돈이 드는 일이기에, 소규모 공동주택에선 정부의 비용 지원도 필수이다.
바로 생활에서 시작하자. 내가 사는 아파트의 청소노동자 휴게시설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지부터 살펴보자.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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