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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광화문에서/김상운]고구려-발해사 중국사라는 中 정부의 자가당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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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김상운 문화부 차장


약 10년 전 중국 홍산(紅山)문화 중심지인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츠펑(赤峰)시 발굴 현장을 취재했을 때 일이다. 홍산문화는 기원전 4700년∼기원전 2900년경 요하(遼河) 서쪽 일대에서 번성한 신석기 문화. 그런데 시내에서 차로 2, 3시간 거리의 아오한치(敖漢旗) 박물관에서 기묘한 광경을 목격했다. 홍산문화 유적에서 출토된 옥과 채문토기(彩陶·채색 안료로 무늬를 그린 토기)만 집중적으로 전시돼 있을 뿐, 한반도와 교류 흔적을 보여주는 빗살무늬토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옥과 채문토기는 중원 문명의 영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당시 동행한 국내 고고학자는 “홍산문화가 중원 문명의 원류로 선전되면서 예외적으로 출토되는 채문토기가 요하 지역을 대표하는 선사 유물로 둔갑했다”고 말했다. 민족이나 영토 관념조차 없었던 선사문명마저 중화민족의 역사 속에 끼워 넣은 것이다.

최근 중국의 동아시아 고대사 왜곡 시도가 지성의 요람인 대학 교육에까지 손길을 뻗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올 3월 발간해 대학교재로 보급한 ‘중화민족 공동체 개론’이 대표적이다.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시진핑 집권 이후 최근까지 중국 내 소수민족들의 수천 년간 역사를 정리했다. 이 중 “당나라 당시 동북방에 고구려, 발해 등 변방 정권이 연속해 있었다. 이들은 모두 한자를 썼고 역대 중원 왕조의 책봉을 받았다”는 내용이 문제시되고 있다. 고구려와 이를 계승한 발해를 한반도가 아닌 중국의 변방사로 규정한 것이다.

책은 한 발 더 나아가 고려의 고구려 계승까지 전면 부정하고 나섰다. 본문에 “918년 왕건이 한반도에 신라인을 주체로 고려 왕조를 세웠는데, 약칭이 마찬가지로 ‘고려’이지만 이전의 고구려나 당나라 번속이던 발해와는 계승 관계가 전혀 없다”고 주장한 것. 고려 문신 서희가 993년 자국을 침공한 거란의 소손녕에게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천명한 사실과 배치된다. 이는 고려사뿐 아니라 중국 송사(宋史)에도 기술된 역사적 사실이다. 시진핑이 주창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원’의 선조들이 남긴 역사 기록마저 스스로 부정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역사 왜곡 아닌가.

최근 세계 역사학계는 고대로부터 중원과 변방 민족의 상호작용이 수평적으로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중원의 고급 문화가 변방에 일방적으로 흘러간 게 아니라, 서로 이점을 주고받으며 상호 발전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크 에드워드 루이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에서 북위, 북주, 북제 등 변방 유목민족의 문화가 중원 왕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썼다. 예컨대 당나라 측천무후가 황제에 오를 때 전륜성왕(轉輪聖王)을 자처한 것은 군주를 신의 화신으로 본 유목민족들의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 이처럼 수당 왕조는 5, 6세기 북중국을 지배한 변방 민족들로부터 많은 제도와 관행을 흡수했다는 것이 세계 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함을 앞세운 ‘중국몽’에서 깨어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중 갈등에 이어 한국 등 주변 동아시아 국가들과 불필요한 역사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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