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07 (목)

[시론] 영국처럼 수사와 기소 융합은 세계적 추세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륙법 체계에서 출발한 검찰 제도는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장치로 자리 잡았다. 유럽도 과거엔 재판관이 수사·기소·심판·처벌까지 모두 담당한 규문주의(糾問主義)를 채택했으나 폐해가 많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재판관 권한에서 수사와 기소를 떼어내 형사사법기관으로 검찰 제도를 도입했다.



경찰이 수사와 기소 맡아온 영국

독일처럼 ‘중대비리검찰청’ 도입

수사권 폐지하는 법은 맞지 않아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검찰 제도를 비롯한 사법 시스템의 개편을 논의하는 과정에는 선진 외국 사례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검찰 제도는 각국의 역사적·문화적 배경과 법률 체계에 따라 다르게 운영되기도 한다. 따라서 외국의 제도를 한국의 관점에서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이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오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유사한 제도를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운영하는지 외국 사례들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우리 현실에 잘 맞는 개선 방향을 마련해 가야 한다.

프랑스·독일·미국 등 대부분의 사법 선진국들이 가입한 대표적 국제기구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보자. OECD의 38개 회원국 중 34개국이 검사에게 수사권을 부여하고 있다. 34개국 중 30개국은 수사지휘권까지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OECD 회원국 대부분은 헌법·법률·판례를 통해 검사의 수사권과 수사지휘권을 명확히 인정하고 있다.

영국을 비롯한 보통법(Common Law) 전통의 국가들은 과거의 사인(私人) 소추 제도에 근거해 수사와 기소가 모두 경찰을 통해 이뤄져 왔다. 경찰에 의해 수사와 기소가 결합한 시스템을 운용한 것이다. 미국을 제외하고 영미법 체계의 국가들에 대륙법 체계의 검찰 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다. 그 이유는 법률 전문가에 의한 경찰의 통제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들 국가에서 검찰의 기능과 역할은 계속 확장되는 과정에 있다. 보통법 전통의 캐나다·호주·아일랜드·이스라엘에서는 아직 검사에게 수사권과 수사지휘권이 도입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대표적으로 보통법 체계의 국가인 미국에서는 프랑스·네덜란드 이민자들의 영향으로 이미 18세기에 검사에 의한 공적 소추제도가 확립됐다.

현재 미국 검찰은 직접 수사권을 통해 활발하게 수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미국 검사는 수사기관인 연방수사국(FBI)·마약수사국(DEA) 등과 원팀을 구성해 서로 협조한다. 검사가 수사 초기 단계부터 관여하고 있는데, 이는 수사·기소의 전형적인 융합 형태다. 복잡한 사건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보통법 체계의 기원인 영국의 최근 상황이다. 이미 1986년 왕립소추청(CPS)과 1988년 중대비리검찰청(SFO) 등을 설립했다. 법률전문가인 검사에 의한 소추제도를 도입하고 그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독일의 중점검찰청 제도를 모델로 도입한 SFO를 통해 영국은 수사와 기소를 융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요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어 매우 인상적이다. 결국 법체계를 불문하고 법률 전문가인 검사의 수사 관여 확대를 통해 법치 국가로서 합법적 통제를 강화하고 시민들을 범죄로부터 효율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적 추세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범죄도 갈수록 국제화하고 지능화하고 있다. 사이버범죄, 조세포탈 및 금융 범죄, 인신매매와 마약 밀매 등은 국경을 넘어 발생한다. 이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개별 국가로는 역부족이고 범세계적인 공조가 필요하다. 검사 제도가 없던 영국마저 빠르게 진화하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수사·기소를 융합한 검찰청을 만들어 전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다. 수사·기소의 융합은 법치국가의 전통을 따르는 국가들이 형사사법 시스템을 신속하고, 일관되며,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개발한 다른 어떤 제도보다 우수하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물론 검찰 수사는 필요한 정도를 넘지 말아야 한다. 설령 그렇더라도 여러 나라에서 실증적으로 확인되는 세계적 추세를 무시하는 것은 문제다. 한국만 검사의 수사권을 법령으로 폐지하는 것이 과연 옳은 방향인지 숙고해봐야 한다. 아픈 곳을 정확하게 도려내고 치료할 전문적인 진단과 대책을 무시하면 진정한 법치국가도 선진국도 될 수 없을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