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리 이사장은 “사법체계에서 소외된 피해자 자녀와 가해자 자녀를 동시에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재 더버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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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떠밀려 위원장을 맡게 됐어요. 경험도 없고 능력도 안 된다고 사양했는데 말이죠. 그런데 대형 모금 캠페인을 맡고 나니까 제대로 성공시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윤세리(71) 온율 이사장은 변호사 경력 40년의 공정거래와 국제조세 분야 1세대 전문가다. 법무법인 율촌의 공동창립자로 정년 이후엔 공익사단법인 온율에서 공익법 전문가를 키우고 비영리 관련 법제를 개선하는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월드비전의 ‘피니시 더 잡(Finish the Job) 캠페인’ 위원장 자리를 맡았다. 지난달 22일 서울 강남구 율촌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특정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자는 목표로 위원들이 한데 모였다”며 “기부자 공동체가 형성되면 가늠할 수 없는 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Q : 위원회를 출범한 지 벌써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A : “이미 여러 국가에서 문제 해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들을 성공시키려면 새로운 기금을 일으켜야 합니다. 돌파구는 유산기부에 있다고 봅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부를 축적한 세대들이 유산을 다음 세대에 남기는 시기를 맞았잖아요. 소액기부도 소중하지만, 고액자산가들의 유산기부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Q : 유산기부요?
A : “세계 최대 기부 시장인 미국을 보면 유산기부가 대장입니다. 유수의 대학이나 자선단체들에서도 유산기부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해요. 우리나라도 그럴 때가 됐습니다. 자산가들이 많아졌고 이에 따라 유산기부가 늘어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Q : 이번 캠페인에 범죄피해아동과 수용자 자녀 지원사업을 제안했다고 들었습니다.
A : “월드비전 사업은 해외 사업 위주인데 국내의 복지 사각지대 문제도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외국에서는 범죄피해아동에 대한 지원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거든요. 특히 수용자 자녀는 사회적 낙인으로 고통받지만, 본인 책임은 전혀 없는 아이들이잖아요.”
Q : 피해자 지원도 부족한데, 가해자 가족을 지원해야 하나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A : “법적으로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구분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일도 많지요. 공동체의 문제가 개인에게 투영되고, 여러 형태의 범죄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배가 고파서 절도하는 사례가 있죠. 낮은 고용률이라는 문제가 빈곤으로 이어지고 절도라는 범죄로 나타나는 겁니다. 범죄만 놓고 보면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배경이 있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더구나 아이들은 피해자 자녀나 수용자 자녀나 사회문제의 피해자라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상반된 개념으로 볼 수 없다는 거죠.”
Q : 어떻게 지원해야 합니까.
A : “요즘 ‘회복적 사법’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존의 민형사법 체계에서는 ‘응보적 사법’이 기본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상반된 양자 관계로 보고, 처벌하든지 변상하든지 결론 냅니다. 그런데 응보적 사법으로는 완전한 문제 해결이 되질 않아요. 피해 아동을 보듬고 재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건 빠져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수용자 자녀의 경우에도 부모가 범죄로 인해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회복시킬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치유적 사법’이라는 말을 쓰고 싶어요.”
Q : 치유적 사법은 뭔가요.
A :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치유를 받아야 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겁니다. 가해자를 처벌한다고 피해자 치유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처벌을 통해 사회 정의를 세우고 다른 범죄를 막는 효과는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범죄로 인한 모든 피해를 복구할 수 없습니다.”
Q : 법률을 개정해야 하나요.
A : “형사소송 절차에서는 피해자의 신청을 받아 법원이 배상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해놨어요. 그런데 별로 활용되지 않고 있어요. 새로 법을 만드는 방법도 있겠지만, 현행법 안에서도 개선할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는 법조도 있고, 수사기관도 있고, 교정기관이나 법원도 있습니다. 여러 기관이 공조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 이번 캠페인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A : “캠페인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기부자 공동체 형성입니다. 쉽게 말해 네트워크죠. 단순히 기부를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자들이 함께 모여 서로 격려하고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갈 모임을 만드는 겁니다. 캠페인 전문위원들이 프로젝트의 기안자이자 실행자, 후원자가 된다면 캠페인은 성공할 수 있어요.”
Q : 잠재적인 기부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 “‘피니시 더 잡’이라는 캠페인 이름이 프로젝트를 완료한다는 뜻인데, 개인의 입장에서 인생도 하나의 프로젝트라고 보면, 인생의 사명을 잘 마무리하는 것도 ‘피니시 더 잡’이라고 부를 수 있을 거 같아요.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기부가 아닐까 싶어요. 많은 사람이 ‘피니시 더 잡’에 동참하길 바랍니다.”
문일요 더버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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