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드라마 <재벌 3세 남편을 주웠습니다>. 올웨이즈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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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의 빚 때문에 나이 든 남자에게 팔려 가듯 결혼하게 된 가을. 우연히 길에 쓰러진 잘생긴 남자를 줍는다. 알고 보니 이 남자는 승계 경쟁 중 습격을 당해 기억을 잃은 재벌 3세 은석이다. 가을은 은석과 하룻밤을 보내는 척하며 강제 결혼 위기에서 벗어난다. 별안간 머리를 얻어맞은 은석은 기억을 되찾고, 복수를 계획한다. 가을과 결혼해 확실한 후계자가 되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놀랍게도 12분. 드라마 <재벌 3세 남편을 주웠습니다> 10회까지의 전개다.
회당 러닝타임 2분 이하의 ‘숏드라마’는 침체된 콘텐츠 업계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제작비 수백 억원의 대작에 자원이 쏠리며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하는 가운데 저비용의 숏드라마 제작 움직임이 활발하다.
전용 플랫폼 줄줄이 출시···유명 배우도 합류
숏드라마는 쇼트폼 형태의 드라마를 가리키는 말로, 모바일 감상에 유리하게 세로 형태로 찍었다고 해서 ‘세로형 드라마’로도 불린다. 드라마 하나가 1분30초~2분 길이의 에피소드 50편 내외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무료 제공되는 드라마 초반부(4~10회) 이후 편당 300~500원씩 결제해 감상하는 방식이 가장 흔하다. 국내에서 웹툰, 웹소설이 소비되는 형태와 유사하다.
요즘 숏드라마는 콘텐츠 업계의 블루오션이다. 지난 3월 국내 첫 숏드라마 전용 플랫폼 탑릴스를 시작으로 관련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온라인 오디오 플랫폼 스푼라디오가 ‘비글루’를 론칭했고, 8월에는 커머스 플랫폼 올웨이즈가 서비스를 시작했다. 토종 OTT 서비스 왓챠는 지난 9월 전용 플랫폼 ‘숏차’를 출시했다. 웹툰, 웹소설을 제공하는 콘텐츠 플랫폼 리디 역시 숏드라마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최근 숏드라마 여러 편을 쓰고 연출한 A씨는 “요즘 제작 의뢰가 가장 많은 것이 숏드라마”라며 “영화·드라마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라오는 게시물도 대부분 숏드라마 관련”이라고 말했다.
열풍이 거세지면서 유명 배우와 연출진의 참여도 잇따르고 있다. 배우 이동건과 박하선은 내년 1월 공개되는 숏드라마 <아무짝에 쓸모없는 사랑>의 출연을 최근 확정지었다. 이웃 사촌인 남녀가 실수로 하룻밤을 보내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로맨스로 <제빵왕 김탁구>(2010) 의 이정섭 PD가 연출에 나선다. 드라마는 내달 출시 예정인 전용 플랫폼 펄스픽에서 공개된다.
왓챠가 지난 9월 론칭한 숏드라마 전용 플랫폼 ‘숏차’. 왓챠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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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부터 ‘세로’로···저비용·고효율로 ‘뚝딱’
숏드라마는 만드는 과정부터 다르다. 가장 큰 특징은 ‘세로형’이라는 점이다.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화면 비율을 위해 애초부터 카메라를 ‘세로로 돌려’ 찍는다. 화면에 잡히는 인물의 숫자는 자연히 줄고, 동선이나 액션 시퀀스도 세로 화면에 맞게 짠다. 소재도 다르다. 짧은 시간 안에 시청자를 사로잡아 결제까지 유도해야 하는 만큼 불륜이나 복수 같은 자극적 소재가 주를 이룬다. 서사와 등장인물의 감정에 기승전결을 담기에 1분30초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막장 드라마’를 아주 짧게 압축시킨 버전이라 생각하면 편하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저비용·고효율이라는 점이다. 기획부터 제작, 공개까지 서너 달이면 충분하다. A씨가 연출자로 참여한 숏드라마 B의 경우 8회차 촬영 만으로 50부작을 완성했다. 그는 “예산 때문에 8회차 안에 끝내야 회수가 가능하다”며 “업계에서는 50부작 드라마 한 작품을 최소 5000만원 예산으로 만들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국내 상륙은 올들어 시작됐지만, 중국에서 숏드라마는 이미 주류다. 틱톡으로 시작된 쇼트폼 콘텐츠 붐이 드라마 장르로 확장된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숏드라마 시장 규모는 약 373억9000만 위안(약 7조 2566억원)으로 전년 대비 267% 상승했다. 지난해 중국에서 만들어진 숏드라마만 1000편이 넘는다. 최근에는 중국발 숏드라마 열풍이 북미로도 번지고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숏드라마 플랫폼 릴숏은 지난해 말 미국 iOS 엔터테인먼트 부문에서 틱톡을 제치고 다운로드 1위에 올랐다.
콘텐츠 트렌드가 롱폼에서 미드폼, 쇼트폼으로 옮겨왔듯 드라마 소비 습관도 바뀔 수 있을까. 아직은 ‘물음표’다. A씨는 “아직 초기 단계라 예측이 어렵다”면서도 “웹소설, 웹툰의 성공 공식과 유사하기 때문에 특정 작품이 ‘빵’ 뜨면 사용자가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왓챠 관계자는 “아직 대중적인 단계는 아니지만 짧고 강렬한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라며 “K 콘텐츠의 글로벌 인기를 바탕으로 숏드라마 형식의 한국 콘텐츠가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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