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6일 새벽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의 컨벤션센터에서 승리 연설 무대에 올라 지지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웨스트팜비치/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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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248년 역사상 보지 못한 독재적 형태의 정부로 가는 벼랑 위에 서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6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 기사가 묘사한 미국의 지금 상황이다. 트럼프를 반민주적 지도자로 보는 진영의 실망과 위기감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난다. 이미 4년간 트럼프의 통치를 경험했는데도 이번에 긴장감이 더욱 올라간 것은 ‘트럼피즘 2.0’ 시대에는 더 거센 폭풍이 휘몰아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이런 예측에는 근거들이 있다. 우선 트럼프가 미국과 세계의 질서와 안정을 크게 흔들 수 있는 내용의 공약을 다수 내놨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시위나 ‘내부의 적’ 진압에 군대를 동원할 수 있고, 연방정부 공무원들을 대거 해고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 자신을 수사하고 기소하는 데 간여한 인사들을 비롯한 정적들에 대해 “가끔은 복수가 정당화될 수 있다”며 처벌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취임 첫날 미등록 이민자 대량 추방에도 나서겠다고 했다.
인터넷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선거용으로 강경한 표현을 남발했을 뿐 실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최측근들 중에서도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들이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1·6 의사당 난동 사태’ 재판과 관련해 연방대법원이 지난 7월 대통령의 면책권을 폭넓게 인정한 것에 고무된 상태로, 충성파를 법무부 장관에 앉혀 보복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다. 조 바이든 대통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리즈 체니 전 공화당 하원의원, 잭 스미스 특별검사 등이 보복 대상으로 거론된다.
대외 정책에서도 한층 더 강경하고 일방적인 행태가 예고되고 있다. 트럼프는 중국 상품에 관세 60%를 부과하고 모든 국가로부터 오는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매기겠다고 위협해왔다. 트럼프가 ‘관세 전쟁’을 촉발하면 세계 경제에 1930년대 같은 혼란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는 방위비 문제를 놓고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한국 등을 비난하며 압박을 예고한 상태다. 최근에는 미국으로 넘어오는 월경자들을 차단하지 않으면 멕시코에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고 경고했다. 트럼프의 당선에 멕시코 페소화 가치가 2년 만의 최저로 떨어지는 등 ‘트럼피즘 2.0’은 벌써 힘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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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를 제어할 인물이 없을 것이라는 점도 그의 집권 2기가 더욱 거칠어질 수 있다는 예측을 낳는다. 정치 경험이 없이 2016년 대선에서 당선된 그는 공화당원인 엘리트들을 중용했다.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은 ‘어른들의 축’으로 불리며 트럼프의 비합리적인 지시와 충동을 무마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제 트럼프는 직언하는 부하들보다는 충성파가 낫다고 판단하고 그런 사람들로 고위 공직을 채우려 한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예상 외로 큰 승리를 거둔 점도 트럼프를 더욱 대담하게 만들 수 있는 이유로 꼽힌다. 그는 6일까지 개표 상황에서 경합주 7곳을 모두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전국 득표수에서 500만표 이상 앞섰다. 2004년 이래 공화당 후보가 전국 득표수에서 앞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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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로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 지위를 탈환한 데 이어 하원 선거 집계에서 앞서가는 점도 주목된다. 트럼프가 자신을 따르는 당으로 변모시킨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면 입법 등 의회의 주요 기능을 통해서도 자신의 의제를 구현하기가 쉬워진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대표적인 트럼프 충성파다. 트럼프가 첫 임기 때 지명한 대법관 3명이 포진한 연방대법원은 이미 보수 6 대 진보 3으로 균형이 무너진 상태다. 입법·사법·행정 3부가 트럼프의 손아귀에 모두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6일 새벽 승리 선언 연설에서 “미국은 우리에게 전례 없고 강력한 권한을 줬다”며 “난 약속을 했고 그것을 지킬 것이라는 단순한 좌우명을 갖고 통치하겠다”고 말했다. 강경한 공약들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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