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앞에 산적한 트럼프시대 악재들
국익 지키려면 국민적 지지기반 필수
국가 위기에도 부인문제는 끝내 외면
국익 지키려면 국민적 지지기반 필수
국가 위기에도 부인문제는 끝내 외면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열린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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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에게 남은 건 딱 두 가지 결단밖에 없다고 썼다. 김건희(여사) 특검 수용과 임기 1년 단축을 전제한 4년 중임제 개헌이라고 못 박았다. ‘마지막 결단’이란 제목을 달았지만 사실은 마지막 당부였다. 국가 미래를 위해 또 역사적 퇴행기를 만들어선 안 된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였다. 우회로는 전혀 없었다.
윤 대통령은 이번에도 비껴갔다. 일단 임기단축 개헌은 좀 더 고민의 시간을 양해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부인 문제만큼은 그가 주도적으로 이 지긋지긋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봤다. 그런데 특검을 정치적 선동이자 인권유린으로 규정함으로써 스스로를 더는 갈 곳 없는 벼랑길에 세웠다.
질의응답에 시간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했을 때 ‘그럼 한번 따져보자’는 항변 모양새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느낌이 현실화했다. 3분의 2 이상의 국민이 기대하는 ‘결단’을 염두에 뒀다면 회견 메시지는 애당초 길 필요가 없었다. 이러면 추후 특검발의는 재의결 형식으로 통과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고 봐야 한다. 결과는 같되 선제적으로 받는 특검과 떠밀려 하는 특검의 정치적 차이는 아주 크다. 전자였다면 지지율 하락세를 얼마간 반전시키고 국정동력도 적으나마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 허망한 기대가 됐다.
이전과 하나 다르지 않은 윤 대통령의 회견 내용에 대해 더 왈가왈부할 건 없다. 사실 그동안 부인 문제의 해결을 요구해온 데는 국내 정치의 정상화에 비중을 둔 측면이 크다. 하나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트럼프 시대의 재도래로 세계가 돌연 예측불가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대미의존도가 특히 높은 한국은 안보와 경제 등 전 분야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하고 시시각각 변화의 추이에 신속 적응해야 하는 비상상황에 돌입했다. 국내 정치는 한가한 문제가 됐다.
트럼프 정권 2기가 위기도, 기회도 될 수 있다는 얘긴 하나마나다. 얼추 꼽아도 거의가 우리에겐 치명적 악재들이다. 안보 문제로는 핵 보존을 전제한 김정은과의 빅딜 가능성, 주한미군 방위비 10배 인상, 미군 철수 으름장 등이다. 북한이 화성18호 같은 고도의 ICBM 투발능력으로 미 본토도 위협할 수 있음을 또 과시한 마당이다. 현상유지 수준에서의 우크라이나전 종전 공언으로 바이든 정부와 발맞춘 우리의 가치·이념에 기반한 안보외교도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됐다. 경제적으로도 미국의 대폭적 관세 인상과 국제적 관세전쟁으로 인한 수출경쟁력 하락, 기존의 대미투자 실효성 악화, 미중 택일 요구에 따를 대중무역 피해 등 어느 하나 만만한 문제가 없다.
국가 리더십이 정말로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기라는 뜻이다. 최우방국 정상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트럼프 당선자는 자국우선주의에 관한 한 막무가내인 데다 푸틴 김정은 같은 강성 독재자에게는 묘한 경외감마저 품고 있는 인물이다. 거꾸로 윤 대통령처럼 권력기반이 취약한 지도자에 대해선 강압적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거래에 능한 장사꾼에게 약점 가진 이처럼 다루기 쉬운 상대는 없다. 어떻게 국민적 지지기반 없이 입장을 설득하고 국익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윤 대통령 기자회견의 목표는 다른 무엇보다도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방향에 온전히 맞춰져야 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지금이야말로 “지지율을 올리는 꼼수”라도 써서 국가 리더십을 시급히 회복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그러자면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가장 큰 원인인 부인 문제만큼은 눈물을 머금고라도 내려놓았어야 했다. 그는 끝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위기상황의 국가지도자로서 대체 어쩌려는 것인가.
이준희 고문 jun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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