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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 (금)

트럼프도 '칩 없이' 살 순 없다...중국 시장 제재 정도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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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즌2’를 앞두고 국내 반도체 업계의 긴장감도 커진다. 최대 관심사는 ‘칩스법(반도체지원법)’ 혜택 축소 여부와 중국 수출 제재 수준이다.



삼성·SK 공장 짓는 지역, 트럼프 지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 칩스법을 겨냥, “나쁜 거래”라고 말하며 당근(보조금) 대신 채찍(관세)을 시사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칩스법 보조금과 세액공제 등 예고된 혜택이 축소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7일 경희권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트럼프 2기는 강한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한국 등 동맹국 지원을 축소하고 투자 확대 같은 요구 조건을 높일 수 있다”라고 중앙일보에 말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칩스법 관련 보조금 총 390억 달러 가운데 300억 달러 이상에 대해 지급이 예정됐으나, 미국 폴라반도체를 제외하고는 보조금 지급을 확정받은 업체가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에 공장을 짓고 각각 64억 달러, 4억5000만 달러를 받기로 예비 거래 각서를 체결하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바이든 정부 임기 내에 협상을 끝내려 기업들이 서두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대만 TSMC가 보조금 관련 구속력 있는 계약 협상을 마무리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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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당선인이 6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컨벤션 센터에서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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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입장에서도 자국에서 반도체를 만들게 함으로써 얻는 일자리 창출 등의 이익을 고려하면 칩스법을 무력화하는 등 급진적 변화 가능성은 낮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 시각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삼성과 SK하이닉스가 공장을 짓기로 한 텍사스, 인디애나 지역은 공화당 지지가 강하다”라며 “트럼프 정부도 이곳 지역 민심을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CNBC는 전문가들을 인용, “새 정부가 보조금 배분을 바꾸고 싶을 수는 있지만 칩스법을 철회할 가능성은 낮고 대부분은 유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인텔이나 마이크론 같은 미국 기업에 보조금을 몰아주기 위해 재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일각의 전망에 대해 가능성이 낮다고 본 것이다. 산업연구원은 트럼프 취임 이후 제2의 반도체지원법이 추진될 수 있다고도 전망했다. 미 하원은 지난 7월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 대상 25% 세액 공제를 도입하겠다는 법안을 내놨다.



관세, 메모리엔 '위험', 스마트폰엔 '기회'?



트럼프 당선인은 모든 수입품에 10~20%, 중국에 60% 이상 관세를 매길 수도 있다고 했다. 관세 때문에 중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면 국내 제조기업이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 마냥 호재만은 아니다. 중국산 컴퓨터·휴대전화·TV 등 완제품의 미국 수출 물량이 줄어들면, 한국이 중국에 파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중간재 수요도 감소하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반도체의 중국 수출 비중은 점차 하락 추세이지만 지난해 기준 55.4%로 여전히 1위를 차지한다.

게다가 보편 관세를 부과하면 우리 기업이 미국 내 공장에 보내는 원재료 값도 오른다.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연구위원은 “삼성과 SK하이닉스가 미국에 패키징 공장을 짓는데, 보편 관세 때문에 여기로 보내는 원재료에 10, 20%가 더 붙는다면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당선인의 발언이 정치적 수사로 강조됐을 뿐, 실현되기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7일 국회에서 열린 ‘미 대선 후 기정학적 변화와 대한민국의 전략’ 토론회에서 유회준 KAIST 인공지능반도체대학원장은 “인텔 등 미국 반도체 기업의 가장 큰 고객이 중국”이라며 “양국이 갈등 중에도 많은 걸 주고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관세에 중국이 보복관세로 대응하면 미국 반도체 산업에도 타격이 클 거라는 얘기다. 유 교수는 “반도체 연구개발(R&D) 역량에서 한국의 보완적 역할을 트럼프 정부에 부각해서, 반도체 보조금이나 관세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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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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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에 대한 고관세는 삼성·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에서 만드는 D램과 낸드플래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대체로 중국에서 만드는 건 완제품 형태가 아니라 다시 국내로 들여온 뒤 패키징을 거쳐 국내서 판매된다”라며 “논외로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 제재 수위 따라 韓 공장 타격



트럼프 정부에선 중국 배제 움직임이 더 노골화하면서 첨단 반도체 관련 기술에 대한 대중국 규제가 세질 수 있다. 바이든 정부의 첨단 장비 판매 규제는 주로 반도체 제조장비(전 공정)나 데이터센터향 GPU(그래픽처리장치) 등 AI 반도체용 장비를 통제하는 데에 집중됐다. 그런데 트럼프 시대에는 한국 기업이 주도하는 그래픽 D램,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GPU 관련 소자와 모바일 기기 등에 들어가는 고사양 메모리 제품군까지 수출 통제 품목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중 제재가 강화하면 국내 업체들의 중국 생산 기지에 들어갈 첨단 반도체 장비 반입이 막히고 공정 업그레이드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앞서 바이든 정부는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을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로 지정, 미국산 장비 반입을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그러나 트럼프 2기에서 수출 통제 기조가 강화하면 이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희권 연구위원은 “우리 기업들이 장기적으로는 중국 내 설비 투자를 서서히 줄여가는 ‘페이드아웃’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첨단 장비·반도체를 차단해 중국을 수세로 몰면, 중국은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반도체 자립 속도를 높일 거라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한국에 유리하다는 해석도 있다. 지난 2019년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화웨이를 무역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등 중국의 핵심 반도체 수요 기업을 압박했고, 이는 한국-중국 간 반도체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시각이다.

황수연·노유림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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