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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 (금)

[정지아의 할매 열전]할매가 되지 못한 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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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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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한 남자가 학교로 나를 찾아왔다. 잘생기진 않았던 모양이다. 학교가 발칵 뒤집히지 않았던 걸 보니. 처음 보는 남자가 깔깔거리며 지나가는 여학생들 앞에서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교문 옆에 서 있었다. 내 운동화가 시야에 들어오자 그는 번쩍 고개를 들고는 환하게 웃었다. 처음 보는 남자의 속절없이 환한 미소가 기이해서 그 장면이 각인되었을 것이다.

“못 알아보겄냐? 나는 단박에 알겄는디. 외삼촌을 쏙 빼닮았다이.”

아버지를 외삼촌이라고 부른다면 필시 고모의 아들일 터였다. 내가 아는 고모는 셋, 그 자손들 중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문득 할머니가 말끝마다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던 죽은 고모가 기억났다. 나는 그 고모를 아주 어려서 딱 한 번 보았다. 대여섯 무렵, 여느 때처럼 할머니 모시고 살던 작은집에 놀러 갔다.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틈만 나면 작은집으로 달려갔다. 몇살 터울 나지 않는 애들이 셋이나 있어 작은집은 늘 활기찼다. 할머니가 매번 내 손에 쥐여주던 고구마나 밤이 탐나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산촌이라 그런 것들이 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지. 우리 집에서 나 혼자 먹는 마마비스킷보다 사촌들과 쌈박질하며 먹는 감이나 앵두, 파리똥(보리수) 같은 것들이 훨씬 더 맛있었다.

여느 때처럼 할매, 소리치며 작은집에 들어서던 나는 끼이익,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달음박질을 멈췄다. 마루 위에 커다란 풍선 같은 낯선 여자가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꺼칠꺼칠한 손으로 상현달같이 불룩한 그 여자의 손을 쓰다듬으며 꺼이꺼이 소리내 우는 중이었다. 할머니의 굽은 허리를 와락 끌어안고는 나도 대성통곡했다. 할머니가 슬프면 무작정 나도 슬펐던, 천사 같은 그런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낯선 여자는 처음 봤지만 둘째 고모였다. 여순사건이 난 뒤 아버지는 입산하고 할아버지는 경찰에게 총살당하고 나머지 식구들은 집에서 쫓겨나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살았다. 아무나 빨갱이로 몰아 때려죽여도 뒤탈이 없던 시절, 누군들 빨갱이 식솔을 귀히 여겼겠는가. 그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자기 집 대문과 곳간을 활짝 열어준 유씨 집안 같은 데는 흔치 않았다.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입 하나라도 덜 요량으로 장성한 딸을 아무에게나 시집보냈다. 알고 보니 제 밥벌이도 하지 못하는 남자였다. 밑의 여동생 둘도 같은 처지였지만 둘째 딸을 시집보내고 대오각성한 할머니는 적어도 밥벌이는 하는 남자를 찾았다. 거기서 거기, 셋 다 박복한 인생을 살았지만 둘째 고모의 인생사는 박복의 끝판왕이라 할 만했다.

떠돌며 산 탓에 소식조차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고모가 퉁퉁 부은 몸으로 걷고 또 걸어서 친정 반내골을 찾은 건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을 예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모는 넷째를 낳다가 목숨을 잃었다. 갓 태어난 아기도 죽었다. 얼마 뒤였는지 아들 하나도 죽고 고모부도 죽었다. 왜 죽었는지는 모른다. 고모는 퉁퉁 부었던 걸로 미루어 임신중독증에 걸린 게 아니었을까 싶다. 어떤 병이었던들 굶기를 밥 먹듯 하는데 병원 갈 여력이 있었으랴. 어떤 병이라도 그 가족을 죽음으로 이끄는 데 어려움이 없었을 테다.

살아남은 아이 둘은 순천 고아원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시절 나를 찾아온 오빠는 두 아이 중 위였다. 동생이 공부를 잘한다고 오빠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이가 몇이었을까? 오빠는 어른처럼 의젓하게 외가의 안부를 물었다. 공부 잘해 오빠의 자랑이었던 동생은 기대대로 명문대에 입학했다. 서울에 올라가 방을 얻고 처음 불을 피운 날, 그는 연탄가스에 중독돼 세상을 등졌다. 오빠는 아우슈비츠 같은 세상에서 홀로 살아남아 목사가 되었다. 오빠에게 하나님이라도 계셔서 참말 다행이다. 부모도 없고 외가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오빠는 천지사방 비빌 데 하나 없었다. 하나님이라도 든든한 동산이 되어주셨으니 수백 번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다.

고모라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을까? 세상을 잘못 만나 엄마도 되어보지 못하고 할매도 되어보지 못한 내 고모의 이름은 정운식. 이제 그 이름을 살아 있는 고모 둘과 오빠, 나밖에는 기억하지 못한다.

경향신문

정지아 소설가


정지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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