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09 (토)

[광화문에서/이유종]하버드대 기금 수익률 9.6%… 수익만으로 예산 37% 채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동아일보

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매년 이맘때가 되면 성적표를 하나씩 발표한다. 대학 기금 회계연도는 매년 7월 시작해 이듬해 6월 종료되는데 연간 실적이 10월경 공개되는 것이다. 올해 최고 수익률을 기록한 대학은 컬럼비아대로 11.5%에 달했다. 이어 브라운대(11.3%), 하버드대(9.6%), 코넬대(8.7%) 순이었다.

미국 명문대의 운용 자산은 수백억 달러, 한국 돈으로 수십조 원에 달한다. 올해 6월 기준으로 하버드대는 532억 달러(약 73조 원), 예일대는 414억 달러(약 57조 원), 프린스턴대는 341억 달러(약 47조 원)를 운용하고 있다. 하버드대의 기금 규모는 인구 1170만 명인 튀니지의 국내총생산(GDP)과 비슷하다. 수익만 해도 한화로 조 단위다. 하버드대는 기금 운용으로 지난해 25억 달러(약 3조4000억 원)를, 예일대는 23억 달러(약 3조2000억 원)를 벌었다. 이 돈으로 하버드대는 올해 예산의 37%를, 예일대는 예산 34%를 마련했다.

그들도 시작은 미약했다. 하버드대는 1974년 하버드매니지먼트컴퍼니(HMC)를 설립하고 종잣돈 3억 달러(약 4000억 원)로 처음 기금 운용을 시작했다. 예일대는 1985년 월스트리트 출신 데이비드 스웬슨을 영입해 10억 달러(약 1조4000억 원) 규모로 출발했다. 스웬슨이 활약한 35년 동안 예일대 기금은 연평균 13%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고 대학 예산 기여도는 10%대에서 30%대로 늘었다. 릭 레빈 전 예일대 총장은 스웬슨을 가리켜 “예일대 역사상 가장 큰 기부자”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대학들은 어떻게 돈을 굴릴까. 보통 HMC처럼 운용 회사를 따로 두고 주식, 채권, 헤지펀드, 기업 인수합병(M&A), 부동산 등에 투자한다. 여느 사모펀드와 다를 바 없다. 월가 출신 동문 등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이 운용역으로 참여한다. 기금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상당한 성과를 내는 대학도 많다. 미국 텍사스주 베일러대는 20억 달러(약 2조8000억 원)의 기금을 운용하는데, 최근 5년간 연평균 수익률이 10.9%로 브라운대(13.3%)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비리그 대학보다 높았다. 편중되지 않은 투자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도모한 결과다. 기금 운용도 대학이 간섭하는 대신 운용 회사에 최대한 독립성을 보장하고 그 대신 운용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평가한다.

지난해 국내 사립대 291곳의 교비회계 적립금은 총 11조2931억 원에 달했다. 대부분 투자금을 예금 등 안전자산에 맡겼고 61개 대학만 주식에 1조6506억 원을 투자했다. 100억 원 이상 목돈을 투자한 대학은 26곳에 그쳤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1원이라도 수익을 낸 대학은 7곳뿐이었다. 같은 기간 증시 호황으로 국민연금 운용 수익률은 13.59%에 달했다.

국내 대학들은 최근 학령인구 감소와 등록금 동결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급여가 적어 우수 교원들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 물론 대학 자산은 부동산이 많아 쉽게 수익을 내기 어렵고 당국 규제로 대부분 안전자산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도 엄연하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교육당국과 대학이 백년대계를 위한 기금 운용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하는 게 아닐까.

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pen@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