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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 (토)

프로 레슬링 제국의 설립자… ‘정치인 트럼프’ 탄생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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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를 만든 사람들] [2] 빈스·린다 맥마흔 부부

조선일보

2007년 프로레슬링 무대에서 맞붙은 도널드 트럼프(왼쪽)와 빈스 맥마흔(가운데) 월드레슬링엔터테인먼트 창업자. 맥마흔 쪽이 경기에서 지자 벌칙으로 트럼프가 그의 머리칼을 깎고 있다. 맥마흔은 1980년대 트럼프를 프로레슬링 무대에 등장시키면서 그와 인연을 맺었고, 2016년 대선부터는 트럼프에게 막대한 선거 자금을 후원해 왔다.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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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질 프로레슬러들이 무대에서 대결하는 사이 링 밖에서는 양복 차림의 두 남자가 맞붙는다. 바닥에 쓰러져 맞는 쪽은 월드레슬링엔터테인먼트(WWE) 창업자 빈스 맥마흔(79). 그 위에 올라타 주먹을 날리는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다. 2007년 이벤트 경기 ‘레슬마니아 23′에서 트럼프와 맥마흔이 벌인 ‘억만장자 대결’의 한 장면이다. 두 억만장자가 각자 선택한 레슬러들을 통해 대리전을 벌인다는 줄거리의 이 경기는 ‘삭발 내기’였다. 당시 승리한 트럼프는 링 위에서 직접 바리캉과 면도기를 들고 맥마흔을 삭발시키는 굴욕을 안겼다. 지금까지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명장면으로 유튜브 조회 수 3600만 회가 넘는다. ‘기존 권력에 도전해 마침내 굴복시키는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면모가 엿보이는 장면이기도 하다.

맥마흔은 트럼프를 프로레슬링의 세계로 이끈 인물이다. 1988년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의 트럼프 플라자 호텔에서 맥마흔이 WWE 행사를 연 뒤로 트럼프는 프로레슬링 무대에 종종 등장했다. 이는 사업가 트럼프가 대중의 열광에 눈뜨는 계기가 됐다. 문화비평가 파블로 더 돈은 “모든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트럼프가 정치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트럼프는 한때 WWE 시나리오 기획에도 참여하며 청중을 열광시키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맥마흔과의 인연을 통해 ‘정치인 트럼프’로서 기본기를 닦은 셈이다. 레슬링 저널리스트 브라이언 알바레즈는 “사람들이 좋든 싫든 관심을 갖게 만들고, 상대를 공격하는 트럼프의 방식은 완전히 프로레슬링”이라고 했다.

맥마흔은 군소 레슬링 단체였던 WWE에 오락 요소를 적극 도입해 세계적 인기를 얻었다. 사업 수완이 뛰어난 수십억 달러 자산가라는 점을 비롯해 트럼프와 공통점이 많다. 둘 다 키 190㎝ 안팎의 거구에 유달리 애국심을 강조한다. 트럼프가 성인 배우와의 성관계를, 맥마흔이 여직원에 대한 성범죄를 돈으로 무마하려다 추문에 휩싸인 점도 비슷하다. 트럼프보다 한 살이 많은 맥마흔은 언제든 트럼프에게 전화할 수 있는 막역한 사이라고 한다. 2013년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트럼프는 맥마흔에 대해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놀라운 남자”라고 했다.

맥마흔은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다. 트럼프 출마 이전부터 여러 차례 사재를 털어 공화당과 보수 인사들에게 정치 자금을 후원했다. WWE는 2016년 대선 당시 정치권의 아웃사이더에 불과했던 트럼프를 후원했고, 맥마흔이 과거 트럼프 재단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한 적도 있다. 이라크 전쟁 중이던 2003년 맥마흔은 테러 위험을 무릅쓰고 WWE 선수들과 미군 기지를 방문해 위문 공연을 했다. 이를 연례행사로 정착시킬 만큼 애국심을 중시한다. 현재 성 착취와 인신매매 등으로 연방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오른 상태여서, 워싱턴 정가에선 트럼프가 대통령이 돼 오랜 친구인 맥마흔을 사면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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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정권 인수팀을 맡고 있는 린다(왼쪽) 맥마흔과 배우자 빈스.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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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마흔 부부는 ‘트럼프 2기’ 시대의 파워 커플로 꼽힌다. 배우자 린다는 투자은행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하워드 루트닉과 함께 지난 8월부터 정권 인수팀을 이끌고 있다. 린다는 지난 6일 트럼프가 플로리다에서 승리 선언을 할 때도 트럼프 일가와 함께 무대에 오른 최측근 인사다.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캠프 내부에서 덕망이 높아 린다가 정권 인수를 총괄하길 원하는 직원들도 꽤 있다”고 했다. 맥마흔과 린다는 어머니들이 같은 직장에서 일한 덕에 소꿉친구로 인연을 맺었다. 과거 WWE 전성기에 린다도 ‘젊은 여성과 바람난 맥마흔에게 골머리 앓는 사모님’ 같은 역할로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린다는 WWE 본사가 있는 코네티컷에서 2010·2012년 두 차례 상원 의원에 출마했지만 1억달러(약 1400억원) 넘는 돈을 쓰고도 고배를 마셨다. 트럼프 1기 때인 2017~2019년 중소기업청장을 지냈고, 이후 트럼프 재선을 위한 선거 자금을 모았다. 린다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AFPI)는 현재 미국 정가에서 가장 주목받는 친(親)트럼프 싱크탱크로 꼽힌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무역대표부(USTR) 대표, 래리 커들로 전 백악관 국제경제위원장 등 전직 트럼프 정부 관리들과 협업해 트럼프가 임기 첫날부터 발표할 행정명령 초안을 이미 수백 개 이상 작성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무장관 후보로 거명되는 린다는 지난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는 잊힌 남성과 여성의 챔피언으로, 미국 노동자들이 백악관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친구이자 일자리 창출자”라고 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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