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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순정만화 그리는 할머니 작가, 민애니[왓츠인마이백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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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만화는 ‘사회악’이었던 1970년대 민애니 작가는 혼자 힘으로 시행착오 끝에 만화책을 완성해 만화가로 데뷔했다. 82세인 그는 여전히 펜과 연필을 놓지 않고 있다. 그림을 그릴 때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기 때문이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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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데뷔한 국내 1세대 만화가이자 만화 유튜버인 82세 ‘신식 할머니’ 민애니(본명 민신식) 작가를 만났다. 그는 ‘안광’부터 남달랐다. 시력을 물으니 “2.0”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백내장 수술을 받은 것 빼고는 눈 건강은 자신 있다고 말을 이었다. 고령에도 그의 펜 선은 무너지지 않았고 연필 터치도 매우 섬세하다.

82세 할머니 작가 ‘퀴어’를 그렸다

민애니 작가는 요즘 순정만화 마니아들에게는 ‘백합 그리는 할머니’로 유명하다. 백합은 만화나 웹소설에서 여성 간의 동성애를 모티프로 하는 서브컬처 장르를 일컫는 용어다. GL(Girl’s Love)이라고도 불린다. 무려 1970년대 국내에 백합 장르 순정 만화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시 출간된 그의 <하얀 돛배>가 펀딩을 통해 반세기 만에 재출판되기도 했다.

<하얀 돛배>는 부잣집에 식모살이를 온 소녀 ‘숙아’가 어떤 묘약을 마시고 주인집 아가씨 ‘란이’와 불가항력적인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를 담았다. 문화계에 동성애라는 개념조차 희미했던 시절, 여성 간 퀴어 작품을 그린 건 어떤 연유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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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애니 작가의 데뷔시절과 남여상열지사 검열을 피하기위해 여성간 퀴어 요소를 넣은 작품 <하얀돛배>.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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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정권 시대였어요. 작품 검열이 심했죠. 여자 캐릭터가 앞머리만 내려도 ‘사치 조장’이라며 붉은 펜으로 원고에 크게 X자가 그어졌어요. 또 만화 한 컷에 남성과 여성이 함께 나와도 부적절한 유해 매체로 분류되던 시절이었어요.”

민 작가는 ‘묘안’을 냈다. 남녀 사랑이 안 된다면 ‘여자들의 사랑’을 그리겠다! 검열은 어이없을 정도로 무난하게 통과됐고 그렇게 숙아와 란이의 절절한 러브 스토리가 빛을 본 것이다.

“여자가 등장하면 그 뒤로 엑스트라로 남자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도 안 되는데, 여자들끼리 껴안고 너무 좋아 죽고 못 사는 건 또 괜찮은 거예요(웃음). 그 시대에 그들이 퀴어를 어떻게 알아요? 내가 그걸 살살 이용해서 골탕 좀 먹였지.”

민애니 작가는 중고등학교 시절 개봉한 모든 영화를 섭렵한 영화 ‘덕후’였다. 해외에서 건너온 한계 없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는 창작의 기본이 됐다.

당시는 여학생이 시내 극장 근처에서 발각만 돼도 정학을 피하지 못하는 엄혹한 시절이었다.

“영화가 너무 좋아 목숨 걸고 가는 거죠. 당시 여학생은 시내도 나가면 안 되고 혹여 나가더라도 땅만 보고 다녀야 하는 시대였어요. 나쁜 짓만 안 하면 되지, 왜 영화를 못 보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퇴학 맞을 각오를 하고 몰래 갔죠.”

수업 시간에는 영화에 본 유려한 할리우드 배우들을 스케치북에 그렸다. 그러다 선생님에게 들켜 출석부로 ‘빵빵’ 머리를 얻어맞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만화나 웹툰이 하나의 대중문화로 자리 잡았지만 당시 만화는 ‘사회악’이었어요. 만화책 빌려온 걸 걸리면 부모가 만화책에 불을 지르고 야단을 치던 때죠. 스무 살 때 만화가가 되고 싶어 집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할머니 친구들이 오시면 ‘시집이나 가지 뭐 하는 짓이냐’ 곧잘 호통을 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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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애니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 요즘 감각 못지 않은 섬세한 스케치가 인상적이다. 본인 제공


민애니 할머니의 가방 속에는…

만화를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열정만으로 민 작가는 가족들 눈을 피해 골방에서 나무로 된 사과 상자를 놓고 먹을 갈아 그림을 그렸다.

“처음 그린 만화 <꿈을 파는 소녀> 3권을 품고 을지로에 있는 자율위원회(심의실)로 찾아갔어요. 그곳에서 만난 출판사 사장이 제 그림을 보더니 ‘어느 집 문하생이었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문하생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집에서 혼자 했다’고 하니 ‘소질은 있으나 처음이니, 내가 써준 스토리로 그림을 그리라’고 제안하더라고요.”

그때 그의 옆구리를 찌르며 몰래 손가락으로 X자를 그려 보이며 만류한 한 남성이 있었다. 만화 <삼국지>로 유명한 고(故) 고우영 작가였다. “고 작가님께서 문하생으로 일하면 이용만 당한다며 이 정도 실력이면 자작으로 데뷔하라고 조언해주셨어요. 그렇게 첫 작품 <꿈을 파는 소녀>로 데뷔할 수 있었어요. 정말 고마운 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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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식으로 살아라”고 아버지가 지은 이름(본명 민신식)처럼 민애니 작가는 유튜브 ‘원로 순정만화작가 민애니’ 채널을 운영하며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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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장 즐거운 순간은 여전히 ‘그림 그리는 때’라고 말한다. 고령으로 출판 만화가의 삶을 접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엄마의 행복을 혼자 보기 아깝다며 미대 출신 딸이 만든 유튜브 채널이 ‘원로 순정만화작가 민애니’다.

“유튜브로 옛날 독자들을 다시 만난 것이 참 기뻐요. 한 포도농장 사장님이 초등학교 때 내 그림을 즐겨봤다며 포도를 보내주셨어요. 자신의 ‘최애’ 캐릭터를 그려달라는 젊은이들의 요청도 반가워요. BTS, 뉴진스, 이세계 아이돌 등을 그리면서 덩달아 나도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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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수첩과 펜은 늘 가방 속에 챙긴다. 생각이 날 때마다 긍정 메시지를 적어놓는다. 그의 심신 건강의 비결이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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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가방 속에는 작은 수첩과 펜이 들어 있다. 늘 옆에 두고 긍정의 메시지가 떠오를 때마다 적는다. 10월2일 자에는 AI 그림에 대한 그의 생각을 담았다.

‘AI 시대, 수작업 그림 연필과 수채화가 점점 더 인정받고 귀한 작품이 될 거라 믿는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기술적으로 잘 그린다고 해도 따뜻한 온기는 느껴지지 않아요. 영혼이 없으니까요. 예술이라는 것은 영혼의 공감대잖아요. AI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손 그림의 매력에 이끌릴 거예요.”

외출 시에는 눈 건조를 막기 위해 인공눈물약을 비롯해 휴지, 손수건, 손거울, 빗, 핸드크림 정도 단출하게 챙긴다. 건강 체질인 그는 유일하게 호흡기가 좋지 않아 환절기에는 휴대용 네뷸라이저를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닌다. 오랜 시간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데도 허리나 목에 이상이 없는 이유를 묻자 평소에 하는 두 가지 운동을 언급했다.

“허리협착증이 있었는데 재활의학과 정선근 교수님의 신전 운동을 하루 10분씩 수시로 하면서 저절로 치유됐어요. 그리고 스쾃을 30번씩 3세트를 꼭 빼놓지 않고 해요.”

두 장의 수건을 돌돌 말아 허리에 받치고 누워 허리 척추를 견인하는 것도 건강을 위해 빼놓지 않는 민 할머니의 루틴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스트레스 없는 마음’을 강조했다.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나는 캐릭터 손 그림의 세계 1인자’라고 생각하면서 작업해요. 행복한 감정이 넘치면 심장 박동마저 힘차게 느껴지고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나는 느낌이에요. 살아보니 건강은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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