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제주 메밀 재배 면적 중 21.1%에서 수발아 피해
"씨앗 맺힌 시기 고온다습하면 발생 가능성 커져"
종잡을 수 없는 날씨로 파종 시기 늦춰지면서 확산
제주 빙떡 |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제주는 국내 메밀 생산량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최대 주산지이지만, 많은 사람이 이를 잘 모른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부터 떠올리기 쉬운 탓이다.
메밀은 제주 농경의 신 '자청비' 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예부터 제주인의 삶과 밀접한 곡물이었다.
척박한 제주 땅에서도 잘 자랄 만큼 강인한 생존력을 지닌 데다 생육기간도 75일 내외로 짧고, 이모작도 가능해 벼농사가 어려웠던 제주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식량 자원이었다.
2019년 제주도 농업기술원이 발간한 책자 '제라진(최고를 뜻하는 제주어) 제주메밀음식'에 소개된 메밀로 만드는 음식만 해도 100가지가 넘는다.
가장 널리 알려진 메밀 향토음식 중 하나는 '빙떡'이다. 메밀가루를 물에 개어 만든 반죽을 팬에 얇게 부쳐 만든 전에 소금 등으로 간을 한 무나물 볶음을 넣어 말면 완성된다.
빙떡은 '빙빙' 돌려 전을 부쳐 빙떡이란 이름이 붙은 것으로 전해진다. 맛이 심심한 터라 짭짤한 옥돔구이와 먹으면 찰떡궁합이다.
최근 방영된 MBN 예능프로그램 '전현무계획2'에 등장한 접착뼈국이나 제주를 찾은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맛봤을 고사리육개장 국물을 입에 착착 붙게 만드는 비법도 '메밀가루'에 있다.
고깃국에 들어가는 메밀가루는 느끼한 맛을 잡아줄뿐더러 국물을 진하게 우린 듯한 식감까지 느끼게 한다.
꿩메밀칼국수 |
10일 제주도에 따르면 올봄 제주지역 전체 메밀 재배 면적 1천145㏊ 중 242㏊(21.1%)에 '수발아' 피해가 발생했으며 이 중 196.6㏊에 대한 피해 지원 신청이 접수됐다.
수발아는 수확 전 메밀에 맺힌 종실(씨앗)에서 싹이 트는 현상으로 수발아 피해를 본 메밀은 식용은 물론, 종자용으로도 사용할 수 없다. 따뜻할 때 비가 자주 오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농민과 전문가는 이러한 수발아 피해가 최근 2∼3년 전부터 눈에 띄게 늘었다고 입을 모은다.
서귀포시 안덕면에서 38년째 메밀을 재배하고 있는 고성효씨는 "지난해 인근 다른 농가 메밀밭에서 수발아 피해가 발생하더니 올해는 우리 밭도 피해 가지 못했다"며 "결국 재배 면적 중 10% 수준인 0.5㏊를 수확하지 못한 채 갈아엎었다"고 말했다.
제주도 농업기술원 이성문 농업연구사는 "수발아 현상은 예부터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 발생 규모가 커졌다"며 "늦어지는 봄 메밀 파종 시기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봄 메밀은 보통 3월 말부터 4월 초께 파종해야 5월 중순께는 종실이 맺혀 장마 전에 수확할 수 있다.
이 농업연구사는 "최근 들어 4월에도 서리가 내리면서 파종을 늦춘 농가가 많았고, 메밀 종실이 맺히는 시기도 5월 말∼6월 말로 늦어졌다"며 "문제는 메밀 종실이 물에 젖은 상태에서 하루라도 기온이 25도 이상이 되면 수발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제주는 지난 5월 중순부터 낮 최고기온이 평년보다 높은 22∼26도까지 올랐다. 6월 들어서도 평년보다 높은 기온을 보였으며, 6월 18∼20일은 일 최고기온이 30도 넘게 올랐다.
게다가 5월 한 달에만 408.1㎜의 비가 쏟아지면서 5월 기준 제주도 역대 1위 강수량 기록을 경신했다. 6월 강수량도 432.9㎜로 역대 6월 강수량 2위를 기록했다.
수발아 피해당한 메밀 |
양절 메밀 씨앗 |
봄 메밀뿐 아니라 가을 메밀도 예측이 어려운 날씨 탓에 파종 시기 조절이 어려워졌다.
제주도 농업기술원 강지호 농촌지도사는 "메밀은 충매화로 벌이나 파리 등 곤충이 수정시켜줘야 종실을 맺는다"며 "파종 후에 한 달이 지나면 절반가량 꽃이 핀다. 8월 말∼9월 중순에는 파종을 마쳐야만 곤충이 활동할 때 꽃을 피울 수 있다"고 말했다.
강 농촌지도사는 "하지만 최근 여름철 강하고 많은 비가 자주 내리면서 메밀 파종이 늦어지거나, 재파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메밀은 특히나 토양에 물이 많으면 재배가 어려운 작물"이라며 "하지만 파종 시기를 놓치면 곤충이 활동을 안 해 생산량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상 기후로 전통적으로 생산해 온 작물을 키우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물에 젖은 메밀을 말리는 건조제 등록이 추진되고 더위에 강한 품종 개발도 이뤄지고 있지만, 메밀이 기상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재배를 권장하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는 다시 메밀꽃 필 무렵 |
dragon.m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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